진영 구분없는 재개발·재건축 속도전…세입자도 배려해야[기자수첩]
등록 2026.08.31 16:20:40수정 2026.08.31 17:30:24
서울시장·자치구청장 여야 막론 재개발·재건축 올인
서울시민 53%는 세입자, 정비사업 시 재정착 난망
![진영 구분없는 재개발·재건축 속도전…세입자도 배려해야[기자수첩]](https://img1.newsis.com/2016/08/01/NISI20160801_0011978671_web.jpg?rnd=20160801150738)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서울시 출입 기자로서 처리해야 하는 기사 중 3할 가량은 부동산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과거에도 부동산 기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처음 서울시청을 출입했던 2017년이나 다른 출입처를 거쳐 복귀한 2년 전과 비교하면 그 수치나 중요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복지나 교통, 문화 등 다양한 시정 뉴스 속 정비사업 이슈는 기존의 공식을 깨고 완전히 주류로 자리잡았다.
6월 지방선거는 이같은 현상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는 부동산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울 시내 아파트 부족을 둘러싸고 후보들 간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후보들은 앞 다퉈 아파트 공급 대책을 내놓기 바빴다. 신속통합기획, 착착개발 등 각종 공약이 난무했다. 급기야 몇 년 안에 30만호가 넘는 아파트를 새로 짓겠다는 '눈치 게임'까지 벌어졌다.
자치구청장 선거에서도 화두는 부동산이었다. 아파트 부족이라는 상황에 유권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다 보니 각 당은 후보자 면접 때부터 부동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더불어민주당 모 자치구 구청장 경선 과정에서는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잡기 위해 구청장으로서 어떤 부동산 정책을 펼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부동산을 둘러싼 충돌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세제 개편에 대한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 급등을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와중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공급만이 아파트값 급등을 막을 수 있다며 각을 세우고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청장들은 오세훈 시장의 이 같은 노선에 동의하는 모양새다. 구청장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재개발·재건축 인허가 속도를 올리겠다는 입장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관내 집주인인 유권자들의 표심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내비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향후 수년간 정비구역 지정과 조합 결성,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 재개발·재건축 관련 행정이 자치구 최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서울시와 자치구들이 선보이고 있는 속도전의 이면에는 공백도 존재한다. 서울 시민의 절반이 넘는 '세입자'들의 존재다. 고층 아파트 공급이 우선시 되는 상황에서 세입자들이 겪을 둥지 내몰림과 전월세 급등 등이 도외시될 우려가 있다. 공급하는 아파트 수에만 집중할 경우 사람이 아닌 집 자체가 주택 정책의 목적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서울시민 53.4%가 세입자이며 이 중 25.4%는 전세로, 나머지 28%는 월세로 살고 있다. 세입자가 돌아와 입주할 수 있는 임대 주택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재정착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재개발·재건축이 세입자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2024년 국내 이동 통계를 보면 서울시민 중 살고 있는 곳에서 이주한 이는 126만명이며 계약 만료나 재개발 등 사유로 이주한 이는 35.6%인 45만명이다. 이 중 71.7%인 32만명은 서울 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18만명은 서울 밖으로 이주한다.
새 아파트가 지어지면 떠났던 세입자들이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다. 새 아파트 가격과 전월세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르게 된다. 부유한 새 집주인들이나 자금 여유가 있는 세입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초고속 재개발·재건축이 공급을 늘려 집값은 안정시킬 수 있지만 사업이 빨리 진척되는 만큼 기존 세입자들이 내몰리는 속도도 높아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비사업 구역에 사는 주민의 70% 이상이 세입자인데 이들은 사업 추진과 의사 결정에서 배제된다. 소유권을 중심으로 마련된 현 도시정비법 제도는 해당 지역에서 다수인 세입자들의 동의 여부는 묻지 않는다. 동네에 살지 않는 소유자가 사업을 결정하고 추진하며 개발 이익을 얻는 것이 재개발·재건축이다. 재정착에 성공하는 비율은 15~20%로 알려져 있다.
재개발·재건축 후 마련된 공공임대주택에 재정착할 기회를 얻는 세입자들도 있지만 이들은 사회적 낙인을 견뎌야 한다. 임대동에 다른 색을 칠하거나 출입구를 따로 내는 등 차별을 참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재개발·재건축이 자금 여유가 있는 시민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형편이 좋은 사람들을 위한 집을 짓기 위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내쫓는 사업이 정의로운지 따져봐야 한다.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여야와 보혁을 막론하고 벌이고 있는 재개발·재건축 속도전에 문제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후보 시절 남발했던 정비 사업 공약이 성급하지 않았는지, 선거 승리에 매몰돼 지역 유지와 집주인들 목소리만 듣지 않았는지, 침묵하는 세입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는지 차근차근 되짚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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