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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馬이야기] 제례에서 축제로…목축문화의 맥을 잇다

등록 2026.09.04 08:00:00

백중제·마불림제에 남은 제주 목축공동체의 기억

고려·조선시대 국가도 말의 안녕과 무사 항해 기원

말축제·승마대회 활발…관광·스포츠로 영역 확대

사라지는 테우리·전통 목축기술…보전·활용 필요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8월27일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궷물오름에서 열린 장전공동목장 백중제. 공동목장 관계자들이 우마의 무병과 번식, 목축의 평안을 기원하며 제를 올리고 있다. 제주 중산간 목축공동체에서 이어져 온 전통 목축의례의 하나다. 2026.09.04.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8월27일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궷물오름에서 열린 장전공동목장 백중제. 공동목장 관계자들이 우마의 무병과 번식, 목축의 평안을 기원하며 제를 올리고 있다. 제주 중산간 목축공동체에서 이어져 온 전통 목축의례의 하나다. 2026.09.04. [email protected]


제주는 오랜 세월 '말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제주마는 섬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제주인의 삶과 함께해 왔다. 농경과 운송, 군사와 교통의 수단이었던 말은 마을 공동체의 생활문화와 풍속, 지명과 언어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시대가 바뀌면서 말의 역할과 사육 환경이 달라졌다. 제주마는 이제 역사적 유산을 넘어 생물자원과 문화콘텐츠, 승마·관광·교육산업을 연결하는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주인의 삶 속에 이어져 온 말문화와 제주마의 생태적·산업적 가치를 조명하면서 보존과 활용 현장을 찾아 제주마와 말문화 유산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편집자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궷물오름 자락. 오래된 돌담 앞에 제상이 마련됐다. 돼지머리와 떡, 과일, 술이 차려지고 도포를 입고 유건을 쓴 제관들이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동안 숲 안은 잠시 고요해졌다.

지난 8월27일 장전공동목장에서 열린 백중제다. 음력 7월15일 백중을 맞아 공동목장 관계자들이 궷물오름에 모였다. 한때 이 일대 목장을 오가며 소와 말을 돌보던 사람들이 우마의 무병과 번식, 목축의 평안을 빌었던 의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제상 뒤편 돌담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처럼 이끼가 두껍게 내려앉았다. 주변에는 목축에 없어서는 안 됐던 물인 '궷물'과 공동목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숲과 돌담, 물, 제단이 한 공간에 겹쳐지면서 이곳이 단순히 제를 지내는 장소가 아니라 제주 중산간 목축생활의 시간을 간직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목축문화 맥을 잇는 민간제례

백중제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졌다. 과거에는 목장에서 마소를 돌보던 테우리들이 백중 무렵 음식을 마련해 목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제를 올리고 자신이 다니던 방목지의 지명을 부르며 우마의 안녕을 기원했다. 오늘날 장전공동목장에서는 공동목장 관계자들이 제관이 돼 유교식 제례를 올린다. 의례의 형식은 변했지만 '마소의 평안을 기원한다'는 공동체적 의미는 남아 있는 셈이다.

이보다 이틀 앞선 25일 제주시 구좌읍 송당본향당에서도 오래된 의례가 펼쳐졌다. 송당리 마불림제다. 장마철이 지나면서 당 안의 신물과 신의(神衣)를 꺼내 햇볕과 바람에 말리고 묵은 기운을 털어내는 의례지만, 그 안에는 한 해 농사의 풍요와 함께 소와 말의 번식과 목축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송당의 목축신앙은 마을의 당신본풀이와도 맞닿아 있다. 송당본향당의 신화에서 소로소천국은 수렵과 목축을 상징하는 신으로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농사만큼이나 소와 말을 키우는 일이 중요했던 흔적이 신화와 당굿에까지 스며든 것이다.

장전 백중제와 송당 마불림제는 같은 제주 중산간 목축문화를 보여주지만 모습은 다르다. 장전 백중제가 공동목장에서 실제 마소를 관리했던 사람들의 생업과 직접 연결된 '목장 의례'이고 송당 마불림제는 본향당을 중심으로 마을의 안녕과 농경·목축의 풍요를 함께 비는 '마을 신앙 의례'에 가깝다. 장전에서는 공동목장조합 중심으로 유교식 제례가 이어지고 송당에서는 심방이 주도하는 무속의례의 전통이 남아 있다.

[제주=뉴시스] 김수환 기자 = 25일(음력 7월13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송당본향당에서 송당리마을제의 하나인 마불림제가 봉행된 가운데 양승건 심방이 신들을 모시는 초감제를 주관하고 있다. 2026.08.25. notedsh@newsis.com

[제주=뉴시스] 김수환 기자 = 25일(음력 7월13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송당본향당에서 송당리마을제의 하나인 마불림제가 봉행된 가운데 양승건 심방이 신들을 모시는 초감제를 주관하고 있다. 2026.08.25. [email protected]

그러나 두 의례가 향하는 곳은 같다. 소와 말이 병들지 않고 새끼를 잘 낳기를 바라고, 한 해 목축의 무사안녕을 염원한다.

백중제와 마불림제 외에도 민간에서는 다양한 생활밀착형 목축의례가 있었다. 넓은 중산간 목장에 여러 집의 소와 말을 함께 풀어놓았던 제주에서는 가축의 주인을 구별하기 위해 낙인을 찍고 귀 일부에 고유한 표시를 하는 귀표를 했다. 낙인을 찍다가 가축이 다치지 않도록 기원하는 낙인고사가 있었고, 귀표를 하기 전에도 고사를 지냈다.

밭농사와 목축이 하나로 연결된 의례도 있었다. 씨앗을 뿌린 밭에 소와 말을 몰아 땅을 밟게 하면서 고사를 지내고 노래를 불렀다. 우마를 잃어버렸을 때는 당을 찾아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으며 백중 무렵에는 목장에 올라 우마의 번식과 무사함을 기원했다.

민간 목축의례는 방목하고, 낙인하고, 가축을 찾고, 밭을 밟고, 계절에 따라 목장을 옮기던 실제 노동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제주 목축문화의 바탕에는 우마를 키우며 형성된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있었던 셈이다.

국가도 중시한 제주의 말 제사

제주에서 말과 관련한 제사는 민간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국가와 지방관아에서도 말을 위한 제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제주지역의 관 주도 목축의례로는 마조제(馬祖祭), 마제(禡祭), 공마해신제(貢馬海神祭) 등이 있었다.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폭염이 이어지는 22일 오전 제주시 용강동 제주마 방목지에서 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마들이 태양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6.07.22.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폭염이 이어지는 22일 오전 제주시 용강동 제주마 방목지에서 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마들이 태양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6.07.22. [email protected]

말은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국가의 군사력과 교통, 통신을 떠받치는 자산이었다. 조선의 '국조오례의'에서는 마조를 비롯해 선목·마사·마보·마제 등 말과 관련한 제사를 국가 제사체계에 포함했다. 말의 번식과 질병, 군사적 활용까지 국가가 제사의 영역에서 관리할 정도로 말의 가치가 컸던 것이다.

특히 전국적인 말 생산기지였던 제주는 그 의미가 더 컸다. 마조제는 말의 조상으로 여긴 별인 방성(房星)에 제사를 지내 우마의 안녕을 기원한 의례다. 제주에서도 관아가 주체가 돼 마조제를 지냈으며, 19세기에는 제주읍성 안에 마조단도 설치됐다.

마조제와 함께 공마해신제도 제주 지방관아에서 행한 말 관련 의례로 분류할 수 있다. 공마해신제는 제주라는 섬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제주에서 선발된 말, 즉 공마를 배에 실어 바다를 건너는 것은 말과 사람 모두에게 위험한 항해였다. 공마선이 출항하기에 앞서 해신에게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이유다. 말을 생산하는 것뿐 아니라 육지까지 무사히 보내는 과정 역시 국가 마정(馬政)의 중요한 일이었다.

'말의 고장' 잇는 축제·행사 다채

오늘날 말이 생업의 중심에서 멀어진 대신 말은 축제와 관광, 스포츠의 소재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올해는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그 움직임이 더욱 활발하다. 지난 4월18일부터 19일까지 5·16도로변 제주마방목지에서는 제주마 입목문화축제 '히잉 페스티벌'이 열렸다.

겨울 동안 방목하지 않았던 제주마를 봄이 되면 목장으로 올려보내던 전통적인 입목에서 착안한 행사다. 약 100마리의 제주마가 초원을 달리는 입목 퍼포먼스를 비롯해 천연기념물 퍼레이드와 잣성 트레킹 등이 마련됐다. 전통 목축의 계절적 풍경을 현대적인 축제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주=뉴시스] 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마가 19일 제주시 용강동 마방목지 초원 위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이날 100여마리의 말들이 수개월 만에 다시 마방목지에 방목되면서 '고수목마(古藪牧馬)'가 재현됐다. (사진=제주도 제공) 2025.04.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마가 19일 제주시 용강동 마방목지 초원 위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이날 100여마리의 말들이 수개월 만에 다시 마방목지에 방목되면서 '고수목마(古藪牧馬)'가 재현됐다. (사진=제주도 제공) 2025.04.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오는 10월9일부터 11일까지는 제주시 신산공원 일대에서 제11회 고마로마문화축제가 열린다. 조선시대 국영목장이 있었던 고마장의 역사를 배경으로 거리퍼레이드와 문화공연, 체험행사 등이 진행된다. 과거 말을 길러내던 공간의 역사를 현재 도시축제로 연결하고 있다.

10월24일부터 25일에는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제주마축제가 예정돼 있다. 제주마 경주를 비롯해 경주로 마라톤과 공연·체험 프로그램 등이 열린다.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말 문화축제다.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서도 제주의귀 말축제가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사설 목장을 운영하며 국가에 말을 바친 '헌마공신 김만일'의 고향이라는 역사와 옷귀마테마타운을 연결해 승마공연과 말 경주, 승마체험 등을 선보이는 마을축제다. 제주 도내 말축제를 생산의 역사와 연결하는 지역 사례다.

승마대회는 더욱 많다. 제주도는 올해 5월부터 11월까지 10개의 승마대회와 축제를 지원하고 있다. 유소년 승마대회와 쇼점핑대회, 몰테우리승마대회, 지구력승마대회, 헌마공신 김만일배 전도승마대회, 제주승마축제, 제주도지사배 전국승마대회 등이 잇따라 열린다.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6억원이 투입된다.

제주의 말은 이제 생업의 영역을 넘어 스포츠와 관광, 축제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쉬움도 있다. 제주 사람들이 오랫동안 우마를 키우며 만들어 온 전래의 목축문화는 사라지고 있다.

마을공동목장의 매각과 축산업 포기, 목축민의 고령화로 마소를 돌보던 테우리(소와 말을 돌보는 목자를 뜻하는 제주어)의 전통지식은 세대 간 전승이 끊기고 있다.

목축문화 연구가인 강만익 박사는 "윤환방목과 상산방목, 방앳불 놓기, 낙인과 귀표, 진드기 구제, 목축민요 등 생활 속에서 이어지던 문화가 말 사육 방식이 바뀌면서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목축의례를 비롯해 사라져가는 전통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보전·활용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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