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리스 조각상같은 몸짓 황홀...'위대한 조련사'
【서울=뉴시스】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 '위대한 조련사'. 2017.10.01. (사진 = Julian Mommert·스파프 제공) [email protected]
여성의 몸통과 남성의 네 다리로 만든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보티첼리·렘브란트·달리의 그림 같은 모습들, 외계와 지구의 평화로운 만남을 그린 영화 '미지와의 조우'의 정서가 극에 녹아들어가 있다.
그리스 출신 공연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53)의 '위대한 조련사'는 무대 위에 써내려간 시(詩)였다.
알몸으로 누워 있는 남자 배우에게 다른 배우가 하얀 천을 덮어주고, 다른 배우가 패널로 생기는 바람을 이용해 천을 걷어내는 장면이 거듭되는 등의 반복과 순환은 극의 내용뿐만 아니라 구조 자체가 시를 떠올리게 했다.
각종 상징과 은유가 넘치는 장면들은 특정 서사의 맥락 위에 놓여 있지는 않다.
하지만 파파이오아누가 지난달 29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삶과 죽음·밤과 낮·무거움과 가벼움(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아니 자신의 '의견'이라고 강조했다)에 대해 언급했듯, 인간과 삶 그리고 시간을 톺아본다.
하나의 제대로 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표현했다. 우주인이 돌무더기를 걷어내고 땅 속에서 성인 남성을 꺼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약 3년 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소년에 대한 뉴스가 극의 모티브가 됐다. 그 소년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사라진 얼굴이 됐고 시체로 발견됐으며 죽음의 원인이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었다고 했다.
파파이오아누는 인류애에 대해 고민했다고 했다. 남성의 배를 갈라 내장기관을 계속 꺼내는 장면은, 빵과 포도주의 성찬식이 아닌 예수의 실제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듯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로테스크한 이런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인간 나아가 역사에 대해 새롭게 환기시키는 마법을 부렸다.
역사는 부정합이다. 퇴적이 중단된 뒤 다시 퇴적이 진행돼 시간의 공백이 있는 부정합과 같다. 파파이오아누는 이 부정합의 역사를 물리적으로 실체화했다.
【서울=뉴시스】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 '위대한 조련사'. 2017.10.01. (사진 = Julian Mommert·스파프 제공) [email protected]
무용수라고도 부를 수 있는 배우 10여명도 호연했다. 대사 없이 배우들의 신체 그리고 무용을 연상케 하는 몸짓으로 극이 진행되는데, 두상, 흉상, 반신상, 전신상 그리고 토루소 등 마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케 하는 몸의 활용은 오랜 기간 훈련의 흔적이 역력했다. 9개월 동안 일주일에 6일, 하루 8시간씩 연습한 결과다.
2015년 캐나다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의 대표 연출작 '바늘과 아편'은 디지털 미장센으로 관객을 무아지경으로 끌고 갔다면, 파파이오아누는 아날로그 미장센으로 비슷한 경지를 보였다. 실험극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현대극이었다.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스파프)를 통해 지난달 28일~3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아시아 초연했다. 스파프는 오는 15일까지 대학로 일대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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