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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해, 짐승같은 피아니스트···알고보면 고니

등록 2019.01.07 15: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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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박종해 ⓒBonsookKoo

박종해 ⓒBonsookKoo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사실 테크닉적인 것도 고민을 많이 해요. 뭐든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게 너무 싫어요. 예를 들어 어려운 곡을 연주하는데 제가 어려워하는 것이 청중에게 전달이 안 됐으면 하는 거죠. 그냥 음악 자체가 전달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수면 위를 우아하게 가로지르면서 물 밑에서 쉼 없이 발장구를 치는 고니 같은 이 남자, 야생에 풀어놓은 짐승으로 통하는 '피아니스트계의 짐승남'이다. 학교 다닐 때는 "들판의 야생동물 같다"는 소리도 들었다. 

즉흥 연주를 즐기는 자유분방함으로 피아노를 놀 듯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박종해(29)가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가 됐다. '강한 타건' '남성적인 연주' '묵직하고 강렬한 레퍼토리' 등의 수식이 따른다.

박현진 영아티스트 포럼 이사는 박종해에 대해 "피아노를 굉장히 어렵지 않게, 쉽게, 약간 친구처럼 그렇게 피아노를 가지고 논다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박종해는 7일 금호아트홀에서 "'피아노를 가지고 참 잘 논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도 피아노로 장난치는 것을 많이 좋아해서요. '이왕 이렇게 한거 제대로 놀아보자'라는 마음가짐이 있어요"라고 밝혔다.

그래서 금호 상주음악가 프로그램의 부제가 '플레이그라운드'다. 5번 연주하는 동안 '한번 제대로 놀자'는 뜻에서 지었다.
박종해, 짐승같은 피아니스트···알고보면 고니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는 '젊은 예술가들의 요람'으로 불린다.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이 한해동안 젊은 음악가와 손잡고 그들의 음악세계를 심층적으로 소개하는 제도다. 2013년부터 피아니스트 김다솔과 선우예권, 바이올리니스트 박혜윤·조진주·양인모, 첼리스트 문태국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를 거쳤다.

일곱 번째 금호상주음악가가 된 박종해는 지난해 유럽의 유서 깊은 피아노 콩쿠르인 2018 제14회 게자 안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블루칩 연주자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취리히 톤 할레 등 유럽에서 협연 등이 예정됐다.

비교적 또래보다 늦은 나이인 일곱 살 때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가족이 갑자기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박종해는 외로움을 겪어야 했다. 영어를 못해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말이 안 통했다. 게다가 집은 외곽이라 마땅히 놀 만한 거리도 없었다. 결국 박종해는 피아노 친구를 택했다. 부모에게 피아노를 사달라고 졸랐고, '그냥'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가 장난감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냥 피아노를 치다 보니까 피아노가 너무 좋고 '피아노를 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주가 어떤 건지도 몰랐어요. 피아노를 치면 좋을 것 같아서 막연하게 피아노만 치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이어져왔네요. 하하."

박종해는 2005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하노버 국립음악대학에서 아리에 바르디를 사사했다. 2008 나고야 국제 음악 콩쿠르 최연소 2위 입상과 실내악 특별상, 홍콩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더블린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2위 등을 차지했다.
박종해, 짐승같은 피아니스트···알고보면 고니

금호아트홀과는 꾸준히 인연을 맺어왔다. 영아티스트 콘서트, 라이징스타 시리즈,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 등이다. 2017년에는 독주회에서 즉흥 연주도 선보였다.

"실험까지 시도했던 홀이네요. 2년마다 무대에 서면서 저한테는 '검증의 장' 같은 장소가 됐어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내가 어디까지 왔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장소죠."

금호아트홀 운영이 4월30일 중단됨에 따라 5월 이후 세 번의 연주는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하게 된다. "광화문 금호아트홀은 제가 데뷔하고, 어린시절부터 여러 무대를 함께했던 터라 좀 더 애틋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금호아트홀 연세에서도 앞으로 많은 연주를 하게 될 것 인만큼 또 애틋함이 생기게 될 것 같습니다."

박종해의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프로그램은 훑어만 봐도 알차다. 10일 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를 겸하는 첫 무대 '뉴 이어스 그리팅'를 시작으로 3월28일 금호아트홀에서 '리얼 소나타'라는 제명으로 CPE바흐의 건반 소나타부터 베토벤의 소나타까지 소나타의 발전과정을 들려준다.

5월9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는 '세상의 모든 변주'라는 타이틀로 브람스-헨델의 변주곡, 베토벤의 에로이카 변주곡, 한예종 음악원 동기인 작곡가 전민제의 위촉곡 등 피아노 음악 주제와 변주의 확장성을 선보인다.
박종해, 짐승같은 피아니스트···알고보면 고니

8월29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삼중주 1번, 차이콥스키 피아노 삼중주 a 단조 등 애잔한 삼중주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12월5일 '2019라스트 시퀀스'에서는 리스트 피아노 곡들을 전달한다.

박종해는 "다섯 번의 연주를 통해서 훨씬 더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여드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60분 프로그램 안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내기에는 항상 모자란 느낌이었어요. 이번 5번의 기회를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품을 하나하나씩 파헤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하나의 독주무대를 준비할 때 하나의 연주에 100이라는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고 한다면, 이번 다섯 번의 연주회는 좀 다른 식의 에너지를 100씩 쏟아내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박종해는 지난해 상반기 슬럼프를 겪었다. 올해 서른살을 맞은 그는 '어릴 때 그려온 서른살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게자 안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 출전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이후 연주 일정이 많아지면서 스스로 치유 받고 슬럼프에서 빠져나왔다.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마지막 무대가 끝나면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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