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류재준 "펜데레츠키, 내한무산···음악으로 대신 인사"

등록 2019.10.24 19:01:42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사진 =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사진 =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2019 서울국제음악제'의 하이라이트로 통하던 폴란드 출신 거장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86) 내한이 무산됐다.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인 작곡가 류재준(49)은 24일 신사동 풍월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펜데레츠키 선생님이 고령이라 여행을 하시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의 청중에게 대신 인사를 전달해달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펜데레츠키는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서울국제음악제 공연이자 한국 폴란드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 '사람의 길을 묻다'에서 지휘봉을 들 예정이었다.

자신의 작품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다지오'와 '성누가 수난곡 – 사람의 길을 묻다'를 직접 지휘해 한국에서 초연한다는 계획이었다. 펜데레츠키의 내한이 무산됨에 따라, 그를 대신해 폴란드 지휘자 마쉐 투렉이 포디엄에 오른다.

1966년 작곡된 '성누가 수난곡'은 제2차 세계 대전 등 전쟁과 냉전을 겪은 펜데레츠키의 고통이 세계적 아픔으로 승화한 곡이다. 이번 음악제의 '인간과 환경'이라는 주제에도 수렴한다.

류 감독은 "1960년대는 2차 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강력한 '철의 장막'이 쳐져 있었고, 모든 것이 양분법으로 나눠진 시대였다"면서 "펜데레츠키 선생님은 이 곡을 쓰실 때 목표로 '사람으로서 걸아야 할 것'을 담고자 하셨다. 비극으로 끝나도 걸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세기 중반의 중요한 작곡가로 통하는 펜데레츠키는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실험적인 곡 '히로시마를 위한 애가(threnody)'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류 감독이 그의 제자다. 1992년 우리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선율을 인용한 교향곡 5번 '한국'이 KBS교향악단 연주로 세계 초연되기도 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85)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 펜데레츠키에게 이 곡을 위촉했다.

이 곡의 초연 당시 객석에 앉아 있었던 류 감독은 "'한국'을 듣고 펜데레츠키 선생님을 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어령 장관님이 저의 길을 닦아주신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 '한국'과 류 감독의 '피아노 협주곡' 등이 실린 앨범이 한국과 폴란드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워너클래식을 통해 25일 발매된다.

류재준 예술감독 (사진 =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류재준 예술감독 (사진 =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류 감독은 "2주 전에 펜데레츠키 선생님을 뵙고 왔어요. 이번이 마지막 내한일지도 몰랐는데 아쉽게 됐죠.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선생님 집에 큰 정원이 있는데 20만 그루가 심어져 있어요. 선생님 삶에서 나무와 음악이 가장 중요했습니다"라고 전했다.

11월8일까지 류 감독이 애정하는 실내악을 비롯 서울 곳곳에서 예정된 이번 서울국제음악제 자체는 순항 중이다. 지난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진 개막 공연 '다뉴브강의 촛불'이 호평을 들었다. 지난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사건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공연으로 열렸다. 

칼만 베르케스가 지휘하는 헝가리 죄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내한해서 연주했다. 특히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듣고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들은 건 버르토크가 아니었다"는 말을 했다고 류 감독은 전달했다.

하지만 서울국제음악제의 운영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류 감독은 작년에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로부터 3억원가량 지원받았으나 올해는 70%가 넘게 삭감, 8000만원만 지원받았다고 했다. 죄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헝가리 정부 지원이 없었으면 섭외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털어놓았다.

류 감독은 고분고분한 예술가가 아니다. 할말을 하고 행정 등에도 쓴말을 아끼지 않는다. 전 정부에서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 2017년 예술위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자 '외압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류 감독은 "서울국제음악제를 꾸려나가면서 위촉료를 비롯 특별한 받은 금액이 없어요. 많은 부분을 감내하고 예산의 일부분을 스스로 책임지며 지금까지 왔죠"라고 돌아봤다. 그 과정에서 "친분, 직위에 상관 없이 음악가를 초청하고 새로운 음악을 소개해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도 했다.

"한계가 온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더 걸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그런데 제가 한 발자국 더 움직이면, 다른 음악가들이 저보다 더 많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살기가 힘들어지는 환경이지만 음악제 프로그램도 비극으로만 채우고 싶진 않았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이야기를 되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