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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농구선수 홍경기의 '아름다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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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2-20 07:00:00  |  수정 2019-12-20 08: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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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박지혁 기자 =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의 홍경기(31·184㎝)는 2011년 국내선수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0순위(전체 20번째)로 원주 동부(현 DB)에 입단한 데뷔 9년차 선수다.

낯선 이름이다. 프로 무대에서 코트를 밟은 건 39경기(20일 현재)가 전부일 정도로 출전 경험이 부족하다. 이름마저 '세용'에서 '경기'로 개명했기 때문에 더 그렇다.

파란만장한 삶이다. 군산고~고려대를 거친 홍경기는 청소년 대표 출신으로 전도유망한 가드였다. 최진수(오리온), 김현호, 유성호(이상 DB), 변기훈(SK) 등과 함께 아시아대회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넘치는 세상이다. 홍경기는 드래프트를 앞둔 4학년 졸업반 때, 진로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초조했다.

어깨 부상과 발목 수술로 대학 4년 중 2년을 환자로 지냈고, 동기생들과 비교해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배운 건 농구가 전부인데 이걸로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어렵게 프로 문턱을 통과했지만 더 무서운 현실이 기다렸다. 팀의 선수 구성 때문에 입단 1년 만에 군에 입대했다. 뚜렷한 기록이 없어 국군체육부대 입대는 불가능했다. 강원도 고성에서 장갑차 조종수로 병장 만기 전역했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부대 야외코트에서 공을 던지며 복귀를 꿈꿨지만 2014년 전역 후, 그를 기다린 건 은퇴였다. 전력 외로 분류됐고, 그를 찾는 구단은 없었다.

파트타임 농구 강사로 지내다가 부산 KT의 입단 테스트를 거쳐 다시 프로무대를 노크했지만 공식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정규리그 마지막 54번째 경기에서 12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지만 코트를 밟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2015~2016시즌만 보내고 두 번째로 은퇴했다.

상처가 컸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 

포기할 만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실업팀 '놀레벤트'에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박성근 감독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참여 의사를 밝혔다. 프로 진출에 실패했거나 도중에 운동을 그만둔 이들이 주를 이룬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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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자랜드 홍경기 (사진 = KBL 제공)
2016년 전국체전 8강전에서 연세대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시 연세대는 허훈(KT), 최준용, 안영준(이상 SK) 등이 포진한 대학 최강이었다. 홍경기는 이 경기에서 양 팀 최다인 36점을 퍼부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해 12월 부모님의 권유로 개명했다. 세용에서 '빛날 경(炅)'과 '터 기(基)'를 써 경기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이후 약 2개월 동안 몽골리그를 경험했고, 2017년 7월 김승환 전자랜드 코치의 제안으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었다.

복귀 세 시즌 만인 이번 시즌 마침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0경기에서 평균 15분19초를 뛰며 평균 5.6점 0.8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지난 7일 서울 SK와의 경기에서는 13점으로 자신의 한 경기 최다 득점도 기록했다.

해가 바뀌면 한국나이로 서른셋. 은퇴가 빠른 선수들에게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시기다.

누군가의 눈에 홍경기의 삶과 도전이 무모해 보일 수 있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말까지 있지 않나.

홍경기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끝까지 도전해보고 싶을 뿐이다. 하고자하는 것, 가고자하는 길을 걸을 뿐이다"고 했다.

도전하든 포기하든 선택은 본인의 몫이고, 그에 따른 책임과 후회도 마찬가지다. 옳고 그름을 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인생 사는데 정답은 없다. '내가 가야할 길'을 걷고 있는 홍경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공감언론 뉴시스 fgl7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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