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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속 갤러리, 갤러리 속 정원 [이한빛의 미술관 정원]

등록 2024.03.3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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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 파운데이션③·끝

[서울=뉴시스] 반스 파운데이션의 거울 연못 앞에 설치된 엘스워스 캘리 작 ‘반스 토템’(2012). (사진=반스 파운데이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반스 파운데이션의 거울 연못 앞에 설치된 엘스워스 캘리 작 ‘반스 토템’(2012). (사진=반스 파운데이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현재의 반스 파운데이션 건물은 2012년 개관했는데, 미국 필라델피아 메리온에 있던 앨버트 C. 반스(1872~1951)의 집 내부를 거의 복제해 지었다. 심지어 앙리 마티스에게 의뢰한 거실 천정 벽화도 가져왔다. 필라델피아 시내로 옮긴 것은 원형 그대로를 고수하라는 반스의 유지에는 어긋나는 셈이지만, 대중이 접근하기는 쉬워졌다.

건물 공사는 TWBTA(Tod Williams Billie Tsien Architects)가 맡았다. 2007년 건축가가 선정되고, 최종 완성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새로 지어진 반스 파운데이션의 콘셉트는 ‘정원 속의 갤러리, 갤러리 속의 정원’이다. 미술관 근처에 도착하면 관람객이 가장 먼저 발견하는 건 미술관 건물이 아니라 대로변의 작은 공원이다. 길쭉한 사각형의 분수대가 자갈이 깔린 산책로에 자리 잡았다. 열린 공간 뒤로는 미술관이 있는데, 키가 큰 풀과 나무로 시야가 가려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구중궁궐 담을 따라 돌다 보면 전각이 나오듯, 초록 담을 지나가면 직각이 똑 떨어지는 회색의 모던한 건물과 그 앞에 조성된 얕은 연못이 나온다. 건물을 담아내는 ‘거울 연못’ 풍경은 어딘가 익숙하다. 한국 강원 원주의 ‘뮤지엄 산’이 절로 연상된다. 풀과 나무가 소음차단막 역할을 해서인지 복잡한 대도시, 대로변의 소리도 데시벨이 낮아진다.

원래 미술관이 있었던 메리온은 거대한 정원과 갤러리로 구성됐다. 반스의 아내인 라우라 반스(Laura Barnes)가 조경에 관심이 많아 수목원을 겸하기도 했다. 그만한 야외 정원을 조성하진 못했지만, 얕은 연못과 직선의 건물 덕택에 차분하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난다. 그 앞을 지키는 작품은 미국 미니멀리즘 작가 엘스워스 켈리(1923~2015)의 ‘반스 토템’(The Barnes Totem)이다. 2012년 이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이다. 높이 40피트(12.2m)로, 길쭉한 스테인리스 스틸 기둥 2개가 엇갈리듯이 붙어 하늘로 솟은 형태다.

군더더기 없이 강렬한 시각적 자극으로 시선을 붙잡는 켈리의 작업은 자신의 안목을 믿고 컬렉션을 구성한 반스의 그것과도 닮아있다. 미술관에서도 “선, 형태, 색상, 공간 관계에 중점을 둔 켈리의 작품은 반스 미학과 교육이론의 핵심인 형식적 요소(빛, 선, 색채, 공간)과 공명한다”고 설명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원을 채운 마로니에 나무, 목련, 프랭클리니아 등 정원을 채운 다양한 나무와 관목, 덩굴식물은 메리온 수목원에서 옮겨왔다. 조경을 맡은 OLIN사는 “메리온과 연결고리를 유지하고자”했다고 밝힌다. 세심한 고려 끝에 옮겨진 미술관은 원 모습의 향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앙리 마티스 작 ‘춤’(The Dance(La Danse), 1932~1933). 메리온 건물의 천정에 어울리도록 의뢰한 벽화를 그대로 옮겨왔다. (사진=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앙리 마티스 작 ‘춤’(The Dance(La Danse), 1932~1933). 메리온 건물의 천정에 어울리도록 의뢰한 벽화를 그대로 옮겨왔다. (사진=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겉모습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파운데이션의 핵심 콘텐츠인 반스의 철학도 계승되고 있다. 유명 학자의 말이나 해석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빛과 선, 색채, 공간을 중심으로 자기 스스로 작품을 감상하는 ‘반스 감상법’은 지금도 학생을 모집 중이다. 뿐만 하랴, 소장품은 물론 20세기 초반 미국과 유럽의 미술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기획전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그렇다. 반스는 자신이 해석해낸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걸고 있는 셈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이냐’고.

(다음 주 새로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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