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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백제 '타임캡슐' 열렸다…화장실서 나온 '왕궁 피리'와 '인사 장부'(종합)

등록 2026.02.05 14:14:02수정 2026.02.05 14: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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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관북리 유적서 백제 궁중 악기·목간 329점 출토

삼국시대 실물 관악기 최초 발견…224㎜ 가로 피리

왕궁 화장실서 발견…백제 음악·악기 연구길 열려

목간 최다 발견…사비 천도후 국가 운영 실태 담겨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뉴시스]이수지 기자 = 약 1500년 전 백제는 동아시아 문화 중심 허브이자 문화 강국이었다.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신하들의 인사 기록 장부부터 국가 재정 문서, 그리고 당시 궁중 음악의 실체를 보여주는 희귀한 악기가 이를 증명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부여군과 진행 중인 관북리 유적 제16차 발굴조사에서 백제 사비 시기 목간(木簡) 329점과 7세기 실물 관악기인 대나무 횡적(橫笛·가로 피리)을 공개했다.

2024년부터 지난해까지 진행된 부여 관북리 제16차 발굴 결과, 사비 천도 직후 1단계 건물과 수로가 먼저 조성됐고, 6세기 중후반의 2단계 건물, 7세기의 3단계 건물 순으로 조성된 사실이 확인됐다. 1단계 수로에서는 국내 최대 수량의 목간이 출토됐고, 2~3단계 남북으로 긴 건물지에서는 태극문 수막새와 연화문 전돌이 다수 출토됐다.

황인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장은 이날 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서 "사비기 백제는 고구려, 신라, 가야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과 교류하며 동아시아 문화 네트워크의 중심 허브로 자리했고, 예술과 문화가 절정에 이르렀다"며 "일본과도 더욱 활발하게 건축·공예·불교 문화를 교류하며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사비기 백제의 힘을 이번 발굴 조사를 통해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을 설명하는 황인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장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을 설명하는 황인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장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화장실에서 발견된 7세기 피리…백제 소리 복원할 단서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대나무 '횡적'이다. 이 구덩이에서는 인체 기생충 알이 함께 검출돼 당시 왕궁 조당(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논하고 의례를 행하던 공간) 인근의 화장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덩이는 조당 서편 건물지에서 동쪽으로 약 3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으며, 규모는 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정도다. 조당은 고대 왕궁 정전 앞에 있다.

황 소장은 "조당 건물은 중앙에 빈 공간을 두고 좌우 대칭으로 배치되는 구조로, 일본 아스카부터 나라시대 난파궁의 조당원과 유사해 백제와 왜의 교류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며 "이번에 서편 건물 일부가 확인됐고, 앞으로 전체 범위가 밝혀지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덩이 내부 유기물 분석 결과, 벼과 등 초본류 화분과 편충·회충·간흡충란 등 기생충란이 다량 검출돼 악기 유물이 버려진 구덩이 유구는 조당 건물에 부속된 화장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 구덩이에서 발견된 악기는 대나무 소재로, 오늘날의 소금(小笒)과 유사한 형태의 가로 피리다. 길이는 약 224㎜ 정도며 구멍 4개가 뚫려 있다. 엑스레이 분석 결과, 입김을 불어넣는 구멍이 있는 한쪽 끝이 막힌 가로 피리로 확인됐다.

그동안 백제 금동대향로 등에 조각으로만 알 수 있었던 백제 악기가 실물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7세기를 통틀어 삼국시대 관악기 실물이 발견된 유일한 사례다. 백제의 음악과 소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유물로 평가된다.

황 소장은 "이번 발견은 삼국시대 실물 관악기가 확인된 첫 사례"라며 "현장에서 수습된 대나무 악기는 상태가 좋지 않아 앞으로 유물의 보존 처리와 복원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목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목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공적 4개 쌓은 '도족이'를 소장군으로…백제의 인사 행정 기록

함께 발견된 329점의 목간은 단일 유적 기준 최대 수량이다. 특히 백제가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긴 직후인 540년(경신년)과 543년(계해년)의 기록을 담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황 소장은 "사비 천도에 관한 기록이 단 한 줄뿐이어서 사비 백제 초기의 실제 모습은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며 "이번 관북리 유적 발굴에서 이러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자료인 목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에 출토된 목간은 수로에서만 328점, 악기가 출토된 구덩이에서 1점이 확인돼 모두 329점"이라며 "이는 국내 단일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 가운데 가장 많은 수량"이라고 말했다.

329점 가운데 목간은 82점, 삭설(削屑·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은 247점이다. 이외에도 묵서가 없는 목간형 목제품 192점, 삭설과 유사하지만 묵서가 없는 목설 1459점이 함께 출토됐다.

출토된 목간과 삭설에는 인사 행정, 국가 재정 운영, 관등·관직 체계가 기록돼 있다. 이는 해당 공간이 백제 중앙 행정 관청인 22부사(部司)와 관련된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편철 목간 가운데 '공사위소장군도족이(功四爲小將軍刀足二)'가 적힌 목간은 '공적이 네 개인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삼다'는 뜻의 인사 문서다.

인사 관련 문서 외에 출토된 목간 대부분은 월 단위 식량을 기록한 국가 재정 운영 관련 장부 목간이다. 사비 도성 5부 체계와 지방 행정 단위인 방(方)·군(郡)·성(城)의 명칭이 적힌 목간도 여러 점 출토됐다.

도성 행정 단위인 '상·전·중·하·후부(上·前·中·下·後部)' 5부를 기록한 목간과 지방 행정 단위 '웅진·하서군(熊津·河西郡)', '나라·요비성(那羅·徼比城)' 목간에서는 새로운 지명이 확인됐다.

이 밖에도 '입동(立冬)', '인심초(人心草)', '현곡개(玄曲愷)' 등 절기·약재 명칭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알려졌던 ‘전(畑)’ 자가 적힌 목간도 확인됐다.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목간을 설명하는 황인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장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목간을 설명하는 황인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장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황 소장은 "백제는 문서 행정이 매우 발달한 나라였으며, 이러한 백제의 서사 문화는 대외 교류를 통해 고대 일본의 문자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백제는 활발한 국제 교류를 바탕으로 당시 중국의 첨단 지식을 수용하고 이를 일본에 전달하는 거점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연구소는 향후 백제사 복원을 위해 이번 발굴 조사와 연구 성과를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맞춰 개최되는 국제학술대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을 살펴보는 허민 국가유산청장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뉴시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열린 '부여 관북리 유적 출토 악기와 문자 성과 공개회'에 공개된 백제 횡적을 살펴보는 허민 국가유산청장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2.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백제는 문화 중흥의 든든한 토대였던 웅진기를 거쳐 사비에서 문화와 정치의 최대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사료가 부족해 늘 아쉬움이 있었다"며 "이번에 출토된 궁중 악기와 목간은 그 존재만으로도 실로 위대한 발견"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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