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토끼 인터뷰 "우리가 바람둥이라고?"

토 생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토끼의 수명은 10년 전후라고 하는데, 토생원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삼천갑자 동방삭'에 속하지도 않으면서 수백년을 내리 살고 있다. 풍문에 이 토끼는 원래 지구 토끼가 아니라 달나라에서 방아 찧던 토끼인데 지구로 놀러와 낮잠을 자다가 달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주저 앉았다고 한다.
"토생원님, 신묘년을 맞이해 인터뷰 좀 하려고 왔습니다."
토생원은 껄껄대면서도 "토끼한테 물어볼 게 뭐가 있다고? 혹시 내 간이 탐나서 온 별주부 빙의가 아니신가?"라며 눈이 더 빨개졌다.
"그럴리가요? 우리나라 용궁은 주변국 잠수함 때문에 더 깊숙이 들어가서 이젠 용궁발 공포에서 벗어나셔도 됩니다."
"그래요. 잘됐군요. 그럼 인터뷰란 걸 해보시죠."
"생원님이 멀리 달에서 오셨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정말 달에 토끼가 살았나요?"
"에이, 말 같지도 않네요. 달에는 공기도 없고 물도 없는데 어떻게 토끼가 살겠어요. 개미도 못 살죠. 달 표면의 바다부분은 어둡게 보이고 대륙부분은 밝게 보이잖아요? 지구에서 보름달을 보면 어두운 부분이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떡방아 찧는 모양으로 보인다더군요."
'대당서역기'라는 책에는 토끼가 여우, 원숭이와 제석천(하느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걸인으로 변장한 제석천이 먹을 것을 청하자 여우는 물고기, 원숭이는 도토리를 가져온다. 토끼는 제 몸을 불 속에 던져서 보시했다. 감동한 제석천이 달에 토끼를 그려 영원히 사람들의 귀감이 되도록 했다.
"그 얘기가 세월이 흐르면서 토끼가 달에서 산다는 얘기로 비화됐군요."
"그렇죠. 그래도 우리 토끼들의 희생정신은 대단하지 않나요? 하하하." 토생원은 손, 아니 앞발로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토끼는 착한 동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그렇죠. 그런데 왜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진짜 평화로운 동물은 우리 토끼 일족인데…. 토끼한테 피해본 사람 봤나요? 비둘기 탓에 골치아픈 도시사람들이 앞장서서 평화의 상징을 바꿔주세요."
"대신 토끼는 에로티시즘의 상징이죠?"
"그게 다 미국의 플레이보이 잡지 때문이죠. 1953년에 휴 헤프너가 시카고에서 창간한 잡지에 뜬금 없이 바니걸을 등장시켜서…."
"도그걸, 카우걸, 호스걸, 좀 그렇잖아요?"
"캣걸도 좋잖아요? 바니걸이 뭡니까."
"아마도 토끼의 다산이 섹스와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네. 저희가 좀 많이 낳죠. 워낙 착한 동물이다 보니 이 동물, 저 동물한테 잡아 먹히다 보니, 두 달에 한 번은 새끼를 낳을 수 있죠. 하지만 그건 종족보존 본능이지 쾌락주의나 섹스지상주의는 아니잖습니까. 억울하죠.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우리가 얼마나 건전한 성생활을 하는지? 집토끼랑 산토끼는 같이 살아도 새끼를 낳을 수 없어요. 집토끼는 굴을 파는 굴토끼(rabbit)이고, 산토끼는 굴을 안 파는 멧토끼(hare)거든요. 유전자 염색체가 달라서 임신이 불가능하죠. 그런데도 바람둥이라니…."
말은 안 했지만, 서양에서 토끼를 정력이 좋은 바람둥이로 여기는 데는 근거가 있다. 서양 만화영화에서도 토끼는 이따금 힘센 동물로 등장한다. 토끼가 즐겨 먹는 풀의 효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약재로 사용되고 있는 토끼풀, 토사자(兎絲子), 토아산(兎兒傘) 등이다.
토아산은 갑자기 비가 올 때 토끼가 비를 피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또 다쳤을 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먹는다. 한방에서는 관절염, 요통, 타박상, 종기 등의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토사자는 성 기능 감퇴로 남성이 발기가 안 되고 허리가 아프며 소변을 찔끔거리거나 정액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증세에 유효하다. 토끼풀은 한방에서 삼소초(三消草)라고 하는데 여성호르몬을 함유해 자궁 수축작용을 하고 자궁을 성숙시켜 무게를 증가시키므로 여성의 정력을 보강한다.
이처럼 토끼는 남성용 강정제와 여성용 강정제를 모두 먹는 셈이다. 바람둥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토끼고기가 그렇게 맛이 좋나요?"
"나 참….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쩌자는거요? 황당한 질문이지만 우리 고기 자랑 좀 할게요. 한국에서는 토끼고기가 별로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고급육류로 인정받죠. 소, 돼지, 닭고기에 비해 지방질이 매우 적은 반면 단백질, 미네랄 함량이 높아 저지방 고단백 육류로 각광을 받고 있어요. 소화율이 높아 환자의 식사로 아주 적합하죠. 연하고 맛이 좋아요. 콜레스테롤이 적은 건강식품, 다이어트 미용식품, 병후나 산후 요양, 허약체질과 정력감퇴 개선, 당뇨와 신경통 등에도 효험이 있답니다."
3일부터 진짜 신묘년 토끼띠 해다. 토끼 집안의 어른인 토 생원을 찾아 뵈러 산 넘고 물 건너 토굴로 향했다.
토굴 앞에는 수많은 토 생원 일가가 새해 인사를 드리러 와 있었다. 암토끼는 한 번에 4~12마리까지 새끼를 낳는다. 1년에 새끼를 6번이나 낳을 수 있다고 하니, 그 식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람이 다가가자 토끼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좀 더 가까워지자 뒷다리로 힘차게 땅을 박차고 사방으로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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