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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리랑, 일본으로 건너가 이츠키 자장가 되다

등록 2011.05.28 08:31:00수정 2016.12.27 22: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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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뉴시스】  제주도와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가 공동 주최한 제1회 세계인의 날 기념식이 20일 오전 11시 제주시 한라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결혼이민자 네트워크 총무인 아요야마 치요꼬씨가 일본 전통현악기인 고토 연주를 하고 있다. /정재환기자 jungjh@newsis.com <관련기사 있음>

【서울=뉴시스】윤소희의 음악과 여행<50>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알게 모르게 적과의 동침이 돼버린 우리네 유행가 트로트.  

 일본의 엔카와 미국과 영국의 사교댄스 스텝인 폭스 트로트(fox-trot)가 접목된 리듬에 일본의 미야코부시 음계로 된 노래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와 문화적 고리로 얽힌 일본과 한국이기에 두 나라의 민요에서도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지진과 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에 끊임없이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하는 일본이라서 그럴까? 미야코부시 음계가 있는 일본의 민요들은 한국 민요에 비해서 노골적으로 슬픔을 드러낸다. 외부의 침입이 없으면 큰 걱정이 없는 한국이라 그럴까? 우리네 민요는 슬픔을 드러내더라도 너울거리는 장단에 흥겨움과 역동성이 있다. 민요의 이러한 성격을 볼 때, 한국의 정서를 ‘한(恨)’이라고 말했던 것은 적절한 풀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 민요들이 반음이 없는 오음음계인 것에 비해서 일본의 미야코부시 음계는 다섯 음 중에 ‘미파’와 ‘시도’의 반음이 연달아 두 개나 있으니 이 음계로 된 노래는 간드러지면서도 심하게 애조를 띄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다양한 민요들을 보면 우리네 민요와 같이 ‘솔라도레미’, ‘미솔라도레’의 오음 음계에다 떨고 꺾고 흔드는 발성법이 더 많다.  

 재미난 것은 한국은 호남지역, 경상도 지역 등 각 지역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는 것에 비해서 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본은 전국의 민요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니 일본 사람더러 “너희 나라는 남도, 서도, 동부민요의 특징이 어떠냐?”고 물으면 “오키나와 지방과 같이 독특한 곳 빼고는 전국의 민요가 거의 비슷해서 일본에는 ‘토리’라는 개념이 없다”고 답한다. 대신 어떤 지역에서 축가로 불리는 것이 다른 지역에서는 노동요로 불리고, 같은 선율에 가사가 약간씩 다르다든가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고 굳이 음악적 차이를 든다면 유박절 노래인 야기부시(八木節)조의 노래와 무박절로 부르는 오이와케(江差追分)조의 노래가 있다.  

 한동안 일본 야마구치현의 민요와 한국의 경남지역 민요를 비교한 적이 있는데 이때 그 친구의 말을 실감하기도 하였거니와 구성지게 넘어가는 일본 민요 가락이 한국과 너무도 닮아서 놀랐던 적이 있다. 이런 모습들을 대할 때면 한국 민요만이 꺾거나 떨며 애조를 띈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민요의 이런 성격은 한국뿐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 티베트 등 아시아 어디를 가나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이라면 짐짓 사무라이 같이 반듯하고 엄한 모습을 떠올리지만 민속풍의 놀이는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면이 많다. 야마구치현의 어느 어촌 마을의 한 어부가 바닷가에서 망태를 들고 노래하는 것을 봤다. 바지가랑이를 말아 올리고, 머리에는 수건을 동여매고는 고기 잡는 시늉, 물고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허우적대는 동작, 고기를 잡고 좋아하는 표정들이 얼마나 익살스럽고 재미나던지 일본사람들도 저렇게 흐드러지게 놀 줄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말로 반공 사상이 한창일 때 어린 아이들이 “북한 사람들도 눈이 두 개네”하는 것과 같은 꼴이 아닌가.  

 야기부시와 오이와케 외에 대표적인 일본의 통속 민요를 들자면 ‘이츠키 자장가’와 ‘사쿠라 사쿠라’를 들 수 있다. 이츠키(五木) 자장가는 조선 유민들이 부르던 아리랑이 일본화된 것이란다. 흔히 자장가라면 여인들이 아기를 재우는 소리라고 여기지만 때로는 아기를 재우면서 신세타령을 하기도 한다. 아기는 이미 잠들었는데 엄마의 넋두리가 끝이 없는 것이다. “내가 죽거든 길가에 묻어주오. 지나는 이가 꽃을 던져 줄거야”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츠키 자장가의 가사를 보면 김소월의 진달래를 연상하게 된다.  그 곡조를 들어보면 한국의 민속조 아리랑과 유사한 데다 박절도 3소박이라 친숙하게 다가온다.   

 사연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온 유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숲속에 숨어 살며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했는데 그것이 에도시대 말기부터 가난한 여인들에 의해서 신세 한탄조의 자장가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다 1945년 일본이 전쟁에 패한 후에 NHK라디오를 통해 이츠키자장가가 빈번하게 방송되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으니 이 노래의 슬픈 가락이며 가사가 당시 일본 사람들의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일본의 지배를 당하면서 엔카풍의 트로트로 슬픔을 달래던 한국 사람이나 패망의 설움을 아리랑조로 노래한 일본 사람이나 희로애락을 풀어가는 데는 국경이 없어 보인다. 하기는 흘러가는 강물이 국가가 바뀐다고 되돌아 갈 수가 있는가. 노래란 흘러가는 강물과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따라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일렬로 줄지어 춤추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무박절 계통인 야기부시조의 민요에 맞춰 남녀가 모여서 춤추는 봉오도리를 보면 너울너울 자유롭게 춤추는 것이 우리네와 달리 일렬로 줄을 지어 형식화된 춤을 추는 경우가 많아 개인주의 적인 한민족과 집단주의적인 일본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건 그 마을의 정형화된 춤이 있는데 마을 여인네들이 기모노를 입고 일렬로 줄을 지어서 손짓 발짓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일본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이름 없는 시골 마을에 가더라도 가지런히 똑 같은 동작으로 일정한 패턴의 마스게임을 하듯이 춤추는 사람들을 보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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