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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검찰인줄 알았는데…' 보이스피싱 발신번호 변작 '시민 낚시질'

등록 2011.11.27 06:00:00수정 2016.12.27 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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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최창현 기자 = 경찰은 최근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을 막기 위해 캠페인과 전단지 배부 등 다양한 예방 홍보 활동을 하고 있지만 날로 수법이 지능화 되고 다양해 져 피해가 끊이질 않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와 관련 대구경찰은 23일 전화금융사기을 사전에 예방하고, 시민들의 소중한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전담수사팀을 구성, 운영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DB)  chc@newsis.com

【서울=뉴시스】배민욱 기자 = 주부 정모(40)씨는 지난 8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검찰청 금융특별수사과 김홍렬 수사관입니다. 개인정보가 침해돼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고 당황한 정씨는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정씨는 전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낮선 남성의 목소리가 시키는데로 몸은 움직여졌다.

 "대검찰청 사이트에 들어가 개인정보침해신고라는 아이콘을 클릭하세요. 거기 안내하는 대로 입력만 하면됩니다."

 정씨는 순간 보이스피싱(전화사기)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 의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남성의 말투와 억양이 조선족 같지 않았고 특히 휴대전화 발신번호가 검찰청 번호였기 때문이었다.

 정씨는 검찰청 홈페이지를 사칭한 피싱사이트에 들어가 은행명, 계좌번호, 보안카드번호(1~35), 신용카드 번호, 은행사이트 접속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을 입력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2000여만원이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일고보니 보이스피싱 업체가 발신번호를 검찰청 전화번호로 조작한 것이었다. 발신번호 임의 조작은 국내에 있는 별정통신업체가 돈을 받고 피싱 업체에 발신번호 조작 관리자 권한을 부여해 가능했던 일이었다.

 보이스 피싱 전화사기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112처럼 경찰과 검찰, 은행, 금융감독원 등의 전화번호가 뜨도록 발신자를 조작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발신자 번호까지 조작되자 시민들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모르는 국제전화 번호가 뜨면 곧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보이스피싱 사기는 국내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법무부 장관실, 검찰청, 경찰청, 금감원, 은행의 실제번호를 발신번호로 띄우고 있다. 근무 중인 현직 경찰관의 이름까지 파악해 사칭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경찰도 2009년 국제전화 수신시 '국제전화입니다'라는 문자가 휴대폰에 표시되도록 하는 '국제전화 표시서비스'를 시행했다.

 최근 경찰이 범죄전화번호를 분석한 결과 서울지역번호인 '02-'로 시작하는 번호가 61%로 가장 많았다. 휴대폰 번호인 '010-' 10%, '070-' 7%, '000-' 4%, '082-'와 '050-' 각각 2% 등이었다. '국제전화입니다'라고 표시되는 번호는 6%에 불과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같은 현상은 '국제전화 표시서비스' 제도 도입 이후 전화금융사기범들이 인터넷 전화로 발신번호를 변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지난 21일 발신번호 변경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통신업체를 중국 사기 조직 콜센터에 연결해준 이모(37)씨에 대해 사기방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이씨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국내 통신업자 유모(47)씨 등 6명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중국 옌지(延吉)에서 인터넷 전화회선 제공업체를 운영하면서 지난 3월부터 6개월간 중국인과 재중동포가 주로 이용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원하는 번호로 발신 가능, 번호 수시로 변경 가능' 등의 광고를 내 중국 사기조직 콜센터를 모집했다.

 이씨는 중국의 보이싱피싱 조직이 이 광고를 보고 인터넷 전화를 신청하면 보이스피싱 콜센터에 전화를 설치하고 유씨 등이 운영하는 사설 통신업체의 발신번호 변경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이를 활용해 국내 법무부장관실, 검찰청, 경찰청, 금감원 번호로 국내에 전화를 걸어 지난 8월 한달간 145명으로부터 모두 20억여원을 챙겼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7월17일 발신 전화번호를 바꿀 수 있는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제공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도운 통신업체 대표 송모(51)씨 등 2명을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별정통신업체 A사의 대표 송씨는 중국 포털사이트에 발신번호 변경이 가능한 인터넷 전화기를 판매한다는 광고 글을 올려 인터넷 전화기를 대당 9만원에 1000여대를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사 대표 박모(40)씨는 무등록 별정통신업체를 운영하면서 중국 통신사와 인터넷 전화 중개계약을 맺어 중국에서 변경된 발신번호를 국내에 그대로 연결되도록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업체를 통해 조작된 발신번호는 최근 10개월 동안 520만여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경찰·검찰 등 국가기관과 금융기관을 사칭한 전화번호는 47만여건이었다.

 서울 송파경찰서도 지난해 11월17일 인터넷 전화 회선을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빌려줘 수억 원을 챙긴 무등록 별정통신사업자 C씨(47)에 대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C씨는 2007년 8월부터 지난달 11일까지 인터넷 전화 기간통신사업자인 D사에서 빌린 수신전용 전화 회선 1800개를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다시 임대해 2억3500만원의 상당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02로 시작하는 서울시내 전화번호가 찍혀 국내 경찰서나 금융기관으로 생각한 피해자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등 범죄조직과 연계되는 별정통신업체가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 전화 서비스업의 경우 비교적 작은 자본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이다. 소규모 무등록 별정통신업체가 난립하고 이로 인해 인터넷 전화 통신료 경쟁이 가열화되면서 손쉽게 수익을 내기 위해 보이스 피싱 등 범죄조직과 연계되는 것이다.

 범죄와 관련된 전화회선의 신속한 차단도 이뤄지지 않은 점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별정통신업체를 통해 발신번호가 변작돼 통화가 연결된 경우 별정통신사업자에게 회선을 임대해 준 기간통신사업체에서는 발신번호 변작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특히 일부 보이스피싱 콜센터는 자체 인터넷 전화 교환기를 이용해 발신번호가 변경된 상태로 국내 별정통신사를 통해 통신연결을 한다. 금융사기 전화회선의 실제 가입자 식별이 어렵다.

 전문가들은 진화화는 보이스피싱은 중국과의 공조 수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감독기관의 행정지도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 피싱 조직을 도와 국내로 전화를 연결해 주는 통신업체에 대한 직접적인 단속과 감독기관의 행정지도가 필요하다"며 "보이스피싱 전화가 확인된 경우 감독기관 과 통신업체를 통해 해당 회선에 대한 신속한 차단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 걸려온 인터넷 전화에 대해서는 발신 IP 확인으로 일반 유선전화와 마찬가지로 '국제전화입니다'와 같은 안내 메시지를 표시하도록 통신업체에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국내 공공·금융기관 전화번호로 조작된 해외 발신번호는 통화 연결 자체를 차단키로 했다. 국제전화 수신시에는 이용자에게 '국제전화입니다' 등의 문구가 발신창 표시 또는 음성으로 안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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