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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헌강왕릉.정강왕릉 호석 추정 석재발견

등록 2013.02.06 11:03:43수정 2016.12.28 06: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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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락

【경주=뉴시스】김재원 기자 = 경북 경주시의 위덕대학교 이진락 겸임교수는 “경주시 남산에 있는 헌강왕릉(신라49대)과 정강왕릉(신라50대)에서 새로운 고고학 발견을 했다”고 6일 밝혔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에도 다른 신라왕릉 처럼 갑석이 발견돼 신라왕릉 호석구조의 전형적인 양식이 밝혀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헌강왕릉에서 13점의 호석 추정 석재를 발견하고 정강왕릉에서는 10점의 호석 추정 석재를 발견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가 민애왕릉과 비슷함이 밝혀져 두 왕릉의 실제 조성시기에 대한 연구도 새로운 활기를 띠게 됐다”는 것이다.

또 “요석의 층수도 각각 4단과 2단이 아니고 원래는 두 릉 모두 3단 요석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무너지고(정강왕릉) 일제시대 잘못된 복원으로 헌강왕릉은 4단으로 바뀐 것을 밝혀냈다”는 것.

이 교수는 관련 연구논문을 지난달 30일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의 신라문화 학술지에 투고했으며 31일에는 경주시청 문화재과와 경주문화재연구소에 유물발견을 신고했다.

통일신라 왕릉 중에는 봉분 외부에 화감암으로 호석을 두른 왕릉이 경주지역에 14기가 전해지는데 호석은 맨 아랫단에 지대석(기단석), 중간에 요석(腰石), 상부에 갑석을 얹는 구조이다.

한편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오랫동안 누구의 왕릉인지 모르다가 조선 영조때인 1730년 경주김씨 문중에 의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헌강왕과 정강왕은 보리사 동남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을 참조해 보리사 남쪽에 있는 두 왕릉 중 월성에서 가까운 것을 헌강왕릉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을 정강왕릉으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삼국사기 기록에 나오는 통일신라시대의 보리사가 조선조의 보리사 사찰과 일치하는지 여부가 증명되지 않았고 무덤들이 왕릉급인 것은 인정하지만 무덤의 주인은 누구인지 모른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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