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이야기⑨]"나는 자본가 아닌 '뇌'동자"

【서울=뉴시스】1975년 8월 현대건설 신입사원 하계수련회 당시 정주영 회장의 모습. (제공=아산정주영닷컴 캡쳐) [email protected]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수리 중인 자동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사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나오세요.”
“내가 도와야 일이 빨리 되지요. 내가 제대로 못 고칠까 봐 그래요?”
자동차 밑에서 고개를 내민 사장이 기름 때가 낀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청년 정주영이었다.
그는 사장이었지만 주문을 받고 수리비 수금을 하는 일 외의 시간에는 공장 종업원들과 똑같이 일했다. 자동차를 분해해서 고치고, 기름 치고, 다시 조립해서 조이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그는 모든 기계 원리가 담긴 자동차엔진의 구조를 완벽하게 터득했다. 작업복과 기름 때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는 진정 성실한 노동자였다.
50년이 지나 현대그룹의 총수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직원들이 호랑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만큼 일할 때는 무섭게 몰아붙였지만, 일과가 끝나면 격의 없이 직원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팔씨름을 하며 어울렸다.
“남들은 나를 세계 수준의 대기업을 경영하는 한국인이라고 평가하지만, 나는 스스로 자본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열여덟 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줄곧 나는 스스로를 ‘뇌’동자라고 여겨왔습니다. 옛날과 달라진 거라면 단지 부유해졌다는 것뿐입니다. 나는 아직도 부유한 ‘뇌’동자일 뿐이며 노동을 해서 재화를 생산해내는 사람입니다.”
정주영 회장은 사투리가 섞인 발음으로 스스로를 ‘뇌동자’라고 불렀다.
그는 쌀가게 점원을 하면서 ‘뇌동자’인 자신이 주인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수많은 계열사를 둔 거대 그룹을 운영하면서도 자신이 다른 직원보다 잘나서 회장이 되었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서울=뉴시스】1970년대 현대차가 생산한 코티나가 서울 시내를 주행하고 있는 모습. (제공=현대기아차) [email protected]
“내가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 검게 그을은 얼굴, 작업복에서 나는 땀냄새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노동 자체가 삶의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카펫과 엘리베이터
중동 사막의 한 철도 부설 공사장. 회장님이 오셨다며 관리직 사원들이 부랴부랴 새 카펫을 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정주영 회장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도대체 현장 사무실에 카펫이 뭐요? 기능공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소?” 혼비백산한 직원들이 새 카펫을 부랴부랴 치우는 사이, 정 회장이 다시 일갈했다.
“우리 회사 사훈이 ‘검소’입니다. 그런데 검소라는 사훈을 떡 하니 써 붙여놓고 노동자들은 중동의 땡볕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회장이 왔다고 새 카펫을 깐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혹독한 질책에 직원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후 현장에서 ‘회장님에 대한 특별 대우’는 영원히 볼 수 없었다. 정 회장은 집에서도 카펫을 깔아본 적이 없었다.
사치의 종착역은 부패이고, 사치하고 부패한 사람들이 많은 회사는 반드시 망하고 만다고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카펫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대 건설 현장이었던 주베일 산업항 공사 현장에서도 사건이 있었다.

【서울=뉴시스】1967년 현대자동차 설립 당시 무교동 사옥의 모습. (제공=현대기아차) [email protected]
“원인이 뭐야?”
“그게 저… 다른 건설사보다 임금이 적다고… 자기네랑 똑같이 일하고 남들은 두 배를 받는다고 저럽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당시 근처 다른 건설 회사 현장에서는 덤프트럭 기사들에게 개인이 일하는 만큼 임금을 주었다.
사기가 오른 덤프트럭 기사들이 흙을 퍼올리는 짬짬이 밥을 먹어가며 일하니, 하루 16시간씩 일해서 금액으로만 따지면 그쪽 임금이 두 배가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정주영 회장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현장에서 근로자들을 직접 만나보니,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인근 다른 건설 회사의 임금과 차이가 있다면서 불만을 터트렸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현장 직원 하나가 사기가 떨어진 덤프트럭 기사와 말다툼을 벌이다 헬멧으로 기사 의 머리를 내리친 일이었다.

【서울=뉴시스】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1970년대 야유회 당시 모습. (제공=아산정주영닷컴 캡쳐) [email protected]
고향을 떠나와 힘들게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격까지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덤프트럭 운전기사 40∼50명이 사무실에 돌을 던져 유리를 깨고 기물을 부수기 시작했다. 여기에 놀란 담당자가 대화는커녕 도망치는 바람에 곧 기능공들까지 가세했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고, 폭동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사건의 내막을 전해 들은 정주영은 2시간 만에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협상장에서 나온 그는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리고 해외주재원들에게 곧 지침을 내렸다.
“첫째, 모든 관리자와 직원은 평등하다. 근로자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고운 말을 쓸 것. 둘째, 근로자이기 전에 나와 같은 기분, 감정을 가진 평등한 인간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 셋째, 인간은 누구나 자기발전과 자기실현 욕구가 있다. 명령만 하기보다 동기부여를 해서 작업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유도할 것. 넷째, 항상 성실한 대화를 하고 근로자들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일 것. 다섯째, 관리자가 근로자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지시하며 근로자에게 자신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시켜줄 것. 여섯째, 관리자의 인격적 결함이 작업장의 분위기를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기개발에 노력할 것.”

【서울=뉴시스】1978년 중동 방문 당시 기능직 사원들을 위한 운동회에 참가한 정주영 회장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공=아산정주영닷컴 캡쳐) [email protected]
관리자와 기능공 서로가 각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힘을 돋워줘야 한다 는 것이다.
그 결과, 기능공들과 관리직들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난무하던 험악한 욕설도 사라졌다. 정주영 회장은 매일 출근하는 서울 사무실에서도 차별을 용납하지 않았다.
“회장님 중역용 엘리베이터를 1대 놓으시죠!”
언젠가 회사 안에 임원용 엘리베이터를 따로 놓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도 정주영 회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했다.
“엘리베이터야 기다리면 누구나 탈 수 있는데, 왜 전용 엘리베이터가 필요합니까? 중역이 사원들과 다른 게 뭐가 있습니까? 임원이니까, 사장이니까 자신은 특별 대우를 받고 엘리베이터도 일반사원과는 다른 것을 타야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이 회사가 누구 혼자서 일군 회사입니까?”
정주영 회장에게 직위란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책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젊은 사원이 차례를 양보해서 먼저 탈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임원 엘리베이터인 거요.” 정 회장의 말에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성공한 인생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뜻도 숨겨져 있었다. 그는 경영자도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사람일 뿐이라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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