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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몰카(?) 찍는 디자이너, 황민철 토마스브라운 대표

등록 2013.11.06 11:09:19수정 2016.12.28 08: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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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황민철 토마스브라운 대표(31)가 지난달 30일 진행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토마스브라운 제공)

【서울=뉴시스】황민철 토마스브라운 대표(31)가 지난달 30일 진행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토마스브라운 제공)

【서울=뉴시스】정의진 기자 = "재미있게, 즐겁게, 행복하게."

 2009년 말 입사한지 고작 3개월 된 신입사원이던 황민철씨.  

 당시 그는 마치 한 공장에서 찍어낸 듯 검은바탕에 지퍼, 손잡이 등등 천편일률적인 자태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서류가방이 몹시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내 가방 정도는 혼자 만들어봐야지' 이 사소한 관심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

 황민철 토마스브라운 대표(31). 그가 이끄는 회사의 한 달 매출은 1억원. 내년까지 오픈 예정인 백화점 입점 매장 수만 20개에 달한다.

 "10~15년 뒤 제 모습을 그려보니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계신 부장님이 떠오르더군요. 톱니바퀴 같은 회사 생활을 접고 '남성 가방 분야의 플레이어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4개월만에 사직서를 내고 향한 곳은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하청 공장. 30~40년 묵은 기름때가 가득한 이 공장에는 50대 중후반의 베테랑 미싱사 3~4명이 가방 제작에 여념이 없었다.

 "이 분야에는 문외한이니 가방을 제작하는 방법부터 알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월급 같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 열심히 청소하겠다. 많이 가르쳐달라'고 사정했죠."

 4개월 남짓한 당시의 경험이 황 대표에겐 큰 자산이 됐다. 가방의 구조설계가 가능해지면서 원가까지 고려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하나. 사람을 얻었다. 가죽 공방을 차리는 게 꿈이었던 청년 조정호(29)씨를 만난 것이다. 현재 토마스브라운의 팀장으로 있는 조씨는 황 대표의 든든한 조력자다.

 토마스브라운의 첫 작품은 2011년 탄생했다. 사업자 등록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본인이 만든 가방을 올렸다. 반응은 기대 보다 폭발적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자신도 똑같은 가방을 만들어 달라며 주문이 들어왔다.

 "처음엔 40개였던 댓글이 '새로고침' 한 번에 수백명씩 늘어났습니다. 죄송하지만 선착순 50분께만 만들어 드렸는데, 고객마다 소재와 색상에 옵션을 제공하다 보니 제작기간이 길어졌죠. 가방을 만드는게 재미있어 20일을 꼬박 새서 만들었거든요."

 2011년 8월, 면목동 지하방에 사무실을 차렸다. 황 대표의 세례명 '토마스'와 가방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색 '브라운'의 합성어 '토마스브라운'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고향에 있던 친구 최하림(31)씨도 불러 셋이서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사업을 개시했다.

 하지만 2012년은 수습기간(?)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제작하는 형편에 신제품을 내놓을 여유가 없었다. 우선 황 대표는 외주 생산을 통해 가방 제작기술 습득에 매진했다. 이 덕분에 여타 다른 가방 브랜드와는 다르게 토마스브라운 삼총사는 각 개인이 모든 가방 공정을 꿰뚫는 강점을 갖게 됐다.

 아이디어는 매일 출퇴근길 지하철과 버스에서 만나는 잠재적 소비자들을 통해 얻는다. 때로는 시장 조사를 위해 몰래(?) 사진을 찍을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황 대표는 차기작으로 남성 구두, 자동차의 곡선 라인 등에서 착안한 가방 라인을 준비중이다. 올해 말 부터는 서류가방 뿐 아니라 백팩, 여성 가방에도 도전장을 내민다.

 멋진 가방, 재밌는 가방, 즐거운 가방을 만들고 싶다는 황 대표는 "좌우명은 따로 없다. 한쪽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 재미있게, 즐겁게, 행복하게 일하는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고 미소지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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