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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의 그늘] ②스스로 치유되지 않는 상처

등록 2014.01.13 07:55:22수정 2016.12.28 12: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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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유재형 기자 = 2007년 5월 어린이집 원장부부의 학대로 숨진 23개월된 성민이 아버지 이상윤(46)씨. 법원 앞에서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 '성민이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모임 제공)  photo@newsis.com

【울산=뉴시스】유재형 기자 = 2007년 5월 어린이집 원장부부의 학대로 숨진 23개월된 성민이 아버지 이상윤(46)씨. 법원 앞에서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 '성민이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모임 제공)  [email protected]

【울산=뉴시스】유재형 기자 = 2007년 5월 울산 북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원장부부의 학대로 23개월된 아들을 잃은 이상윤(46)씨가 아들에게 쓴 세번째 편지.

 "아이의 우윳빛 살결과 귀엽고 통통하던 작은 몸은 사라지고 얼굴과 온몸에 피멍이 든 지친 모습으로 어린 아들은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있었습니다.

 고사리 같은 여린 손등엔 매질을 막기위한 마지막 생존의 본능에 피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강아지처럼 보드랍고 따뜻하던 나의 아들은 차갑고 참담하게 식어있었습니다.

 그 어린 것이 그 작은 것이, 홀로…지독한 고독속에 홀로… 홀로 공포와 매질을 견뎌야 했습니다. 홀로 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어두운 영안실안에 홀로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두돌이 되던날 미역국도 못먹고 홀로 부검대 위에서 온몸을 찢겨야 했습니다.

 홀로 뜨거운 불길속에 불살라지고… 홀로 바람에 흩날려야 했습니다.

 그 어린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도 홀로…한줌의 재로 사라져가야 했습니다.성민이는 이제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곳으로 떠났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 5월… 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뜨겁고 대단하던 여름이 지나고 태풍을 지나보내고 많은 비들을 맞아 보내고… 그렇게 이젠 평화로운 가을을 맞이합니다.

 평화로운 가을 속에 서있는 내 가슴은 성민이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여전히 장마와 태풍이 휩쓰는 무서운 여름의 한가운데 서있습니다" (이하 생략)

 아들을 잃은 이후 이씨의 삶은 모든 게 달라졌다. 한동안 잠에서 덜 깬 듯한 멍한 날들이 계속됐고 잘 마시지도 못하던 술에 의존하는 날이 늘어갔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찾아 왔다. 정신적 충격으로 몇 달 간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죽고싶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사로잡혔다.

 마치 이혼 후 홀로 두 아이를 양육해야 했던 자신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것 같아 극심한 자책이 몰려왔다.   

 이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지만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도 없었다. 2~3달 정도 일하는 생산직을 전전했고 그나마 그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실직상태로 지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후유증은 성민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며 사고 당시를 지켜본 형 성우(가명·당시 5살)에게도 찾아 왔다.

 성우는 아빠와 분리되는 것에 대해 심한 불안을 느꼈다. 떨어져 있으면 5분도 안돼 다시 전화가 왔다. 마치 몇 분 전 전화한 사실을 잊은 듯이 계속해서 아빠를 찾았다. 별일 아닌 일에도 울음을 터트리는 날도 많았다. 

 이씨는 그런 아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울산 동구의 한 청소년 심리치료 기관을 찾았다.

【울산=뉴시스】유재형 기자 = 울산·양산지역 범죄피해자들이 2달에 한 번 모여 서로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사회복귀를 서로 돕고 있다.(사진= 울산범죄피해자지원센타 제공)  photo@newsis.com

【울산=뉴시스】유재형 기자 = 울산·양산지역 범죄피해자들이 2달에 한 번 모여 서로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사회복귀를 서로 돕고 있다.(사진= 울산범죄피해자지원센타 제공)  [email protected]

 그림치료 과정에서 성우는 사과가 다 썩은 사과나무를 그리기도 했고 높은 지붕 끝에 창문을 그리기도 했다.

 높은 지붕 끝에 그린 창문은 누군가가 밖에서 자신을 볼까 두려워하는 불안심리가 내재된 것이라는 게  당시 성우의 치료를 맡은 심리치료사의 설명이다.

 김현수 정신과 전문의는 사건을 목격하거나 직면한 범죄 피해자의 경우 급성스트레스 장애, 외상후 트레스 장애 등의 심리적 외상을 입는다고 진단했다.

 신체에 위협을 가져다 주는 사건들을 경험하거나 목격하면 극심한 공포와 무력감 등이 동반되고 어린아이의 경우 이런 반응 대신 불안과 초조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에 대한 인식이 떨어져 멍하게 있는 상태가 계속되고 비현실감, 감정 반응의 둔화, 해리성 기억상실 등도 동반된다.

 이 같은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최소 2일 이상, 최고 4주 이상 지속되고 사고 후 4주 이내에 시작된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가 한 달 이상 지속되면 외상후 스트레스로 분류된다.

 피해자들은 당시 사건의 고통스런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마치 사건이 재발하고 있는 것 같이 행동하기도 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임상적으로도 심각한 고통일 뿐 아니라 사회적, 직업적 기능 영역에서 장애를 초래한다.

 이 같은 증상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범죄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도 예외없이 겪게 된다. 이런 심리적 외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관심과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울산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오정숙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범죄피해자나 그 가족들은 경계, 걱정, 불안 등의 부정적 감정들로 인해 가치관이 변하게 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상실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며 "이런 소외, 단절, 소통의 어려움을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변에 이런 조력자가 많을수록 정상적인 일상으로의 복귀가 빨라진다는 게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설명이다.

 현재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전국 58곳에 센터를 두고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치료비와 심리치료 등의 의료지원은 물론 생계보조금, 학자금, 취업알선 등을 제공하고 있다.

 울산 센터의 경우 지난해 203명에게 8700만원의 경제지원을 했으며 20명에게는 2000여 만원의 치료비를 지원했다.

 또 216명에게 심리상담을 통해 형사절차, 법률구조절차, 배상명령 신청절차, 구조금 신청절차 등의 정보 1011건을 제공했다.

 하지만 센터측은 한 해 2억9000여 만원에 불과한 예산으로는 범죄피해자들의 사회복귀를 돕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며 실질적인 경제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울산=뉴시스】유재형 기자 = 변찬우 울산지검장 지난 22일 서울 논현동 고시원 방화사건의 피해자 유족이 운영하는 울산 북구의 한 횟집을 찾아 피해자 아버지인 서병호씨를 격려했다.(사진= 울산지검 제공)  photo@newsis.com

【울산=뉴시스】유재형 기자 = 변찬우 울산지검장 지난 22일 서울 논현동 고시원 방화사건의 피해자 유족이 운영하는 울산 북구의 한 횟집을 찾아 피해자 아버지인 서병호씨를 격려했다.(사진= 울산지검 제공)  [email protected]

 오 사무국장은 "범죄 피해로 가장을 잃거나 가족을 잃을 경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고 결국 경제력 상실로 이어져 회복 불가능 상태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유족들에게 지원되는 구조금을 현실화하고 경제력을 상실한 범죄피해자들에게는 기준을 완화해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03년 울산 야음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방화로 가장을 잃은 장미옥(가명)씨는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래층 남자가 아들과 말싸움 끝에 불을 질렀고 장씨의 남편은 번지는 불을 피해 아파트 14층에서 뛰어 내리다 사망했다. 장씨 또한 큰 부상을 입었다.

 장씨는 아래층 남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해 5000여 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냈지만 가해자가 배상명령을 지키지 않고 잠적하자 대출로 생계를 이어갔다.

 계속된 소송과 온전하지 않은 몸 때문에 일을 할 수도 없었지만 아파트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숨진 남편과 아이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소중한 공간을 팔 수도 없었다.

 센터측은 범죄피해자들이 조속히 사회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실질적으로 체계적인 지원과 함께 스스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08년 10월 일명 논현동 고시원 사건으로 당시 30살된 딸을 잃은 서병호(55)씨.

 이 사건은 한 30대 남성이 평소 가족이 자신을 학대하고 인간적 대우를 해 주지 않는다며 홧김에 불을 지른 뒤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묻지마 범죄'였다. 당시 서씨의 딸을 비롯, 6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상을 입었다.

 딸은 15년 전 부모가 이혼한 초등학교 때부터 서씨의 구겨진 와이셔츠를 다리고 남동생의 도시락과 학교 준비물을 꼼꼼히 챙기며 엄마 노릇을 해 왔다.

 그런 착한 딸이 묻지마 범죄로 희생되자 서씨는 상실감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보증금 300만원에 월 12만원씩 내고 거주하던 임대주택에서 마저 쫓겨나 찜질방을 전전하는 처지가 됐다.

 서씨의 아들은 "아빠 얼굴을 보면 숨진 누나의 얼굴이 떠올라 집에 오기 두렵다"며 돈을 벌어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하지만 그는 죽은 딸과 남은 아들을 위해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횟집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울산에서 횟집을 열었다.

 처음에는 칼을 볼 때마다 딸이 생각났다. 범인이 휘두른 것과 같은 칼이었기 때문이다.

 서병호씨는 "20년 넘게 횟집을 하며 두 자녀의 뒷바라지를 해준 칼이었지만 죽은 딸이 떠올라 두려웠다"며 "하지만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나처럼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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