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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의 에세]기번과 《로마제국쇠망사》

등록 2014.05.13 09:28:59수정 2016.12.28 12: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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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봉진 뉴시스 상임고문.

【서울=뉴시스】에드워드 기번(1737~1794년)은 전 6권으로 된 방대한 《로마제국쇠망사》를 1976년에서 1788년까지 12년에 걸쳐 저술한 역사가이다. 그는 18세기 영국 계몽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강단역사학자는 아니었다. 19세기 역사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그의 저술이 한때 학술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20세기 말에 들어 역사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면서 일반독자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는 문학적인 가치 이상으로 역사서로서도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번은 영국의 부유한 젠트리 가문의 7자녀 가운데 첫 아들로 태어나서 단 혼자만 성장했고 어릴 때는 아주 병약했다. 정규교육을 몇 년밖에 받지 못하고 1752년 15세 되는 해에 옥스퍼드대학에 들어 갔으나, 입학 1년4개월쯤에 학교의 지나친 자유방임에 견디지 못하고 반발심으로 가톨릭교도로 개종을 하고는 즉각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아들의 엉뚱한 일탈에 경악한 아버지는 1753년 기번을 스위스 로잔으로 보내, 칼뱅주의 목사 다니엘 파비야르의 집에 맡겼다. 기번은 파비야르의 엄격한 지도 하에 1758년까지 그 집에 머물며 라틴어와 그리스어 고전들을 규칙적으로 읽고 프랑스어와 논리학을 철저히 익혔다. 파비야르는 1754년에는 기번이 영국공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인 프로테스탄트로 다시 개종을 하도록 설득하는데도 열성적인 역할을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의 사망(180년)으로부터 오스만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1453년)까지 1300년간에 걸친 동·서로마제국 쇠망의 웅대한 역사를 서술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읽을 때, 그가 15세부터 20세까지 5년간에 걸쳐 로잔 체재에서 많은 것을 성취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로마제국쇠망사》를 쓴 동기를 그의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로마제국쇠망사》의 저자로서 이 글을 쓰기 위해 내가 소비한 시간 또는 금전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제의 선택을 결정한 것은 내가 이탈리아와 로마를 실제로 내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일기에는 그 장소와 순간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1764년 10월15일 황혼이 질 무렵, 나는 성 프란치스코회 교회에 앉아 명상하고 있었다. 마침 맨발의 수도사들이 카피톨리노의 폐허 유피테르 신전에서 저녁 기도를 올리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때 나의 구상은 로마제국의 쇠망보다는 이 도시의 쇠멸에 한정되어 있었다. 나는 이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독서와 사색을 시작했지만, 정작 내가 이 어려운 저술에 착수하기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더 흐르고, 몇 개의 작은 작품들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기번은 그리스도교를 냉엄하게 고찰했고, 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져온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기번의 시각은 계몽시대의 전형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쇠망사》는 전체를 3기로 크게 나누고 다시 71장으로 세분하고 있다.

 그중 제15장과 제16장에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비평하고 있는데, 그것은 당시의 영국은 물론 전 유럽 아니 전 가톨릭세계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신학자는 종교가 하늘로부터 순결하게 내려온 것으로 기분 좋게 서술할 수도 있지만, 역사가는 훨씬 음울한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종교가 약하고 타락한 인류 사이에 오래 머물면서 오류나 와전 같은 것이 섞여 들어갔다는 것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번의 종교에 대한 태도이다. 신성하고 잘못이 없는 교회사의 오류, 약점, 결함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기번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인간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장엄한 무대”를 펼친다. 로마의 쇠퇴는 과도하게 웅대한 것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귀결이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나는 언제나 원류에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호기심과 의무감이 함께 내 자신을 언제나 원본연구를 하도록 했다. 가끔 원본을 아무래도 입수할 수 없을 때에는 할 수 없이 신중하게 제2차적 자료를 한 자 한 구도 소홀히 하지 않고 신중하게 다루었다”라고 술회한 것은 그의 그리스어 및 라틴어의 실력이 뒷받침된 장담이다.

 수필문우회 회장·뉴시스 상임고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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