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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인간' 극작가 이강백 "무엇에 홀린 듯한 세월을 이야기로"

등록 2015.03.10 15:51:31수정 2016.12.28 14: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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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 연극 '여우인간' 작가(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이강백, 연극 '여우인간' 작가(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도로에 구멍이 생겨서 사람도 빠지고 자동차도 빠지는데… 구멍이 계속 생기는 기시감이라고 할까, 데자뷰라고 할까. 바다에 배를 타고 가는데 싱크홀(에 침몰하는 걸)보고 놀랐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지난해 한 번 생긴 것이 아니라 여러번 굉장히 많이 반복된 사건이라는 겁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인 이강백(68)은 10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에서 열린 자신의 신작 '여우인간' 기자간담회에서 "그렇게 무엇인가에 홀려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면서 깊은 좌절감에 빠졌죠. 무엇에 홀렸는지 연구하다 보니 그게 여우였어요"라고 말했다.

 "한번 저질러진 사건인데 어떻게 제정신을 차려서 고치지 못하고 반복되게 놓아둘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무엇인가에 홀려서 살고 있다고 짐작하게 됐어요. 과거만 반복하니 미래로 갈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꼈죠. 개인뿐 아니라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는, 그 홀리는 것이 무엇인지 연구를 했죠."  

 '여우인간'은 여우사냥꾼이 놓은 덫 때문에 꼬리를 자르게 된 4마리의 월악산 여우들이 고속도로를 지나는 트럭을 얻어 타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우들을 추적하는 여우사냥꾼에 의해 01번, 02번, 03번 및 미정으로 이름 붙여진 여우들은 각각 정보요원, 사회변혁운동연합 대표의 비서, 오토바이 소매치기, 비정규직 청소부라는 다른 신분으로 인간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극 중 여우사냥꾼은 교활한 여우들이 꼬리를 자르고 인간사회로 들어가 인간처럼 살면서, 온갖 못된 짓을 저질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확신한다. 다른 인간들 역시 큰 사고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기들 잘못이 아니라 여우한테 홀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소재를 자신의 기분과 상황에서 구한다는 이 작가는 "최근 몇년간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고 있다고 느낀 것에서 이야기가 비롯됐습니다"고 했다. "주변 사람을 보니 저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고요. 저와 똑같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무엇인가에 홀려서 실수를 반복하더라고요. 개인적이 현상이 아니라 아마도 사회적인 현상이구나라고 생각했죠.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거예요. 여우에게 홀린 사람이 많은 거죠. 중국 전설이나 일본도 마찬가지고. 동양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서양의) 이솝 우화도 참 좋아하는데 그 안에도 여우에게 홀린 이야기가 많아요."

 수십 년간 줄곧 한국의 '오늘'을 이야기해 온 이 작가는 '여우인간'에서도 오늘을 이야기한다. 특히 2008~2014년을 파헤친다. "극 중에서 네 여우가 서울에 온 때는 촛불시위를 할 때입니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한 그 때부터 지난해 말까지 한국 현대사 6~7년을 다뤄요. 여우들이 보니 자기들만 올라온 게 아니라 수많은 여우들이 득실되는 걸 알게 되죠. 성형수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광대뼈를 자르고 그렇게 하니 누가 인간인지 여우인지 모르게 되는 거예요."  

김광보 극단 청우 대표, 연극 '여우인간' 연출(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김광보 극단 청우 대표, 연극 '여우인간' 연출(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그러니 "이쪽에서는 핍박받고 저쪽에서도 박대받는 진영 논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잘 못 되면 여우 때문에 생긴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죠. 여우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한 장치가 극에 나올 거예요."

  여우가 인간이 돼 겪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존 작품과 다른 형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옴니버스이고 에피소드가 퍼즐처럼 맞춰집니다. 그러다 보니 독특한 플롯이 나왔죠. 소설가와 극작가는 달라요. 소설가는 디테일하게 묘사를 해야 해요. 어떤 정서, 상황에 대해서요. 그런데 희곡을 그렇게 쓰면 공연이 불가능합니다. 배우가 들어갈 틈이 없고 연출이 형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작가는 스케치 하듯이 비어 놓아야 해요. 그것을 배우와 연출이 살로 채워야죠."

 연출가인 김광보 극단 청우 대표가 이번에 살을 채우는 역을 맡았다. 이강백 작가와 처음 작업하는 김 연출은 이 작가 같은 알레고리가 많은 작품을 형상화하는데 강하다. 이번에도 역시 "판 하나에 배우들의 힘으로 연극을 이끌어 갈 거예요. 해설적으로 가져가지 않습니다"고 했다. "그 연장으로 여우도 굳이 탈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약속으로 그렇게 정하고 별다른 분장을 하지 않고 꼬리만 달고 나오죠. 전체적으로는 놀이성이 강화됩니다."

 이강백 작가는 그래서 전래놀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노래가 초반에 등장한다고 했다. 그는 "이 작품을 리얼리즘 연극으로 풀면 재미가 없어요. 그게 불가능하고. 김광보 연출이 생각하는 것처럼 놀이로 풀어나가면 굉장이 재미가 있을 겁니다"라고 기대했다.

 옴니버스 형식인 '여우인간'은 놀이, 그림책 해설, 움직임, 영상 등 다양한 요소들이 녹아들어 있다. 제의적 성격을 지닌 합창도 가미된다.

 이 작가는 "(옴니버스 식이라) 쉰개가 넘는 블록이 있는 작품인데 김광보 연출이 놀이를 통해 하나의 개념으로 묶었어요.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거죠"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극단 연극 '여우인간' 연습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서울시극단 연극 '여우인간' 연습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여우인간'을 제작하는 세종문회회관 서울시극단의 김혜련 예술총감독은 "이강백 작가님이 최근 암울한 사건, 사고를 중심으로 현재를 재현하는 작품을 썼다며 대본을 보여주셨는데 너무 좋았어요"라면서 "우리는 공공 기관인 만큼 사명감으로서 이 작품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작품을 만나 가슴이 떨리더라"고 말했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다섯'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이 작가는 1970년대 군사정권의 억압부터 이후의 현대사를 우화적으로 표현해온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직접적인 투영 방식을 아쉬워하는 관객들도 있다. "제가 데뷔했을 때는 우리 사회가 단순했어요. 지금은 다양화, 다층화됐죠. 에두른 이야기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바로 직구를 던지듯이 바로 하는 이야기가 먹힐 수 있죠."  

 하지만 작가는 정보문을 작성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가 쓴 또 다른 작품 '불멸' 속 '작가는 의식하든 안 하든 불멸을 추구하는 자'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자신이 우화를 고집하는 이유를 에둘러 말했다.  

 "작가는 그 시대가 지나가더라도 자기 작품이 영원히 남기를 바라죠. 100년 후에도 통용이 되기를 바란다는 거에요. 김혜란 서울시극단 단장님이 '여우인간'이 영어로 번역될 거라 하셨을 때 마음 속으로 기뻤어요. 한국 뿐 아니라 가깝게는 북한, 일본, 중국, 폴란드 등 시대와 지역에 얽매이지 않기를 모든 작가들이 희구합니다. 시대의 적절성을 담으면서도 상징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여우인간' 27일부터 4월1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서울시극단 배우 약 25명이 나온다. 드라마트루그 양윤석, 무대미술 황수연, 음악 장한솔, 영상 강영만, 움직임 고재경, 조명디자인 이동진. 2만~5만원. 서울시극단. 02-399-1137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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