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인간' 이강백, 공개자리서 후배에게 쓴소리한 이유

이강백, 연극 '여우인간' 작가(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27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 진행된 서울시극단의 신작 연극 '여우인간' 프레스콜이 끝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상황. 그는 자신이 쓴 이 작품을 연출한 김광보(51) 극단 청우 대표를 향해 삽입된 노래가 "엉성하다"고 지적했다.
언론에게 공개된 자리에서 선배 극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연출한 후배 연출가에게 쓴 소리를 내뱉는 건 드문 경우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다섯'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이 작가는 한국 희곡계의 거목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1970년대 군사정권의 억압부터 이후의 현대사를 우화적으로 표현해왔다.
그는 "사적으로 말해야 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그렇고 2~3일 전에 곡이 나와 검증을 못한 것은 알지만 전체적으로 (작품) 콘셉트와 안 맞다"고 했다
그가 지적한 노래는 극 중에 삽입된 '애도의 노래'와 '세월의 노래'. '세월호 침몰' 등에 대해 애도를 표하는 노래다.
"노래가 무성의하다. 작품이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하는지 생각하게 해야 하는 노래는 단순히 소리가 아닌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애도의 노래' '세월의 노래' 둘 다 격분할 정도로 무성의하다. 2~3일 전에 나왔다 하더라도 밤새워서 해야 한다. "
공개적으로 이 같은 지적을 한 이유는 김 연출의 책무를 "공개적으로 받아내고 싶어서"라고 했다. "부끄럽고 프로같지 않다. 농구나 야구나 배구나 프로구단이 잘 하면 야단을 맞지 않는다."
김 연출은 이 작가의 지적을 "충언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다만 두 가지 입장이 부딪힌다"면서 "두 개의 노래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비교적 건조하게 노래를 부른 것은) 객관적으로 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격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여유롭게 생각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자신과 배우들이 아마추어처럼 한 것은 없다고 했다. "새벽 2시까지 어떤 것이 좋을까, 별 방법을 다 해서 했다. 결과로서 안 좋을 수 있지만 열심히 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성의하게 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김 연출은 현재 연극계에서 가장 실력을 인정 받는 중견 연출가다. 특히 '여우인간'처럼 단순화된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로 승부를 보는 미니멀리즘의 미학에 일가견이 있다. 지난해 특히 '줄리어스 시저' '사회의 기둥들'로 호평 받았다.

김광보 극단 청우 대표, 연극 '여우인간' 연출(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이 작가는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쓰다 보니 작품 분량이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쏠린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 "그래서 세월의 노래가 간략하게 언급된 것이 불만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여우인간은 특히 블록, 즉 레고 같은 연극이다. 어떤 부분을 키우면 균형이 어긋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여우인간'은 2008~2014년을 파헤친다. 네 여우가 인간이 돼 세상에 섞여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네 여우가 서울로 올라와 인간이 된 것은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촛불시위 때다. "그렇다 보니 광우병 쪽으로 이야기가 할당이 많이 됐다. 작품은 쓰고 나면 공연을 통해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꼭 그 이야기만 하려는 게 아닌데 그 부분이 커 보인다."
극이 올라가기 전 연출가에게 간섭한 적은 지금껏 없다고 했다. "사실 연출도 작가다. 배우의 살아있는 연기와 의식, 조명을 써서 극을 만든다. 내가 타자를 치고 왔는데 누가 와서 간섭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무엇을 하든 존중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안 해왔다"는 것이다.
다만 '여우인간'에서는 그들 노래를 강조한 적은 있다. "연출로서 고민이 많지 않았나 한다. 무대 위에서 까칠한 소리를 한 것은 고생을 한 것은 알지만 보러 오는 사람에게는 아직 발효가 덜 됐기 때문이다. 관객과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한다. 처음부터 발효된 술을 내놓을 수는 없다. 닷새, 엿새가 지나서 발효가 된다. 프레스콜이라 밀고 당기기를 하기 힘들었긴 했다. 배우들은 놀 줄 아는 사람이라 관객들을 밀고 당기기를 잘 하는데 기자들을 관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웃음)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별개로 "예전에는 함석헌 선생 같은 분들이 미래 담론을 이야기했는데 최근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지 몰라도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끊긴 것 같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어르신들이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예전 일제강점기 시절 신연극이 들어왔을 당시 유치진 선생 등 극작가가 한 수 가르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연극 환경이 바뀌어서 뛰어난 관객보다 극작가들이 절대 뛰어나지 않다. 아우라가 사라졌다. 내가 살아 남은 이유 중에 하나는 아우라를 포기했기 때문이다.(웃음) 근데 70년대 초에 시작한 작가라 아직 (아우라를 지니는 것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그런데 '여우인간 봐라, 한국 사회가 그래서 그렇다. 미래는 그렇게 가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드디어 미쳤구나' 할 테다.(웃음) 포착을 못 한 것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 그것이 극작가의 역할이다. 그 이상을 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맞지 않다."
서울시극단 관계자는 "두 분 사이에 이상이 없다"면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런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것 아니냐. 잘 조율해서 더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여우인간' 4월1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서울시극단 배우 약 25명이 나온다. 드라마트루그 양윤석, 무대미술 황수연, 음악 장한솔, 영상 강영만, 움직임 고재경, 조명디자인 이동진. 2만~5만원. 서울시극단. 02-399-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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