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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호국인물에 독립운동가 신팔균 선생

등록 2016.02.29 09:18:16수정 2016.12.28 16: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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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장민성 기자 = 전쟁기념관은 독립운동가 신팔균(申八均) 선생을 2016년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882년 서울 정동에서 태어난 신팔균 선생은 삼도수군통제사와 병조판서 등을 지낸 조부 신헌과 한성부판윤을 역임한 부친 신석희 슬하에서 성장했다. 1902년 육군 참위로 임관한 뒤 1907년 군대 해산 직후까지 황실의 경호를 맡으며 최후의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했다.

 선생은 1909년 유명무실해진 군을 등지고 충북 진천으로 낙향해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교육 사업에 매진했다. 보명학교를 여는 등 학생들에게 민족사상을 고취시켰으며, 신민회 청년들이 만든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단(당)'에도 참여했다.

 선생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어려워지자 만주로 망명, 서간도와 북경에서 항일투쟁을 이어나갔다.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에 참여했으며 독립군의 공급처 역할을 했던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도 활동했다. 신팔균 선생의 호는 동천(東天)으로 지청천, 김경천 장군과 함께 남만주 지역에서 '삼천'(三天)으로 불렸다.

 1920년대 서간도 일대에서는 무장투쟁 조직이 통합돼 '대한통의부'라는 이름하에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선생은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 겸 의용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잔여 병력과 모병 인원을 모아 의용대를 5개 중대로 재편, 각 중대별로 인원을 선별하고 사관양성소 격인 '사관학원'을 개설해 직접 훈련을 지휘했다. 일제의 자료에 의하면 "신팔균의 참여로 대한통의부가 독립단 중 제 1위의 군사력을 가지게 됐다"고 평가할 정도로 무장투쟁을 주도한 중요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대한통의부를 서간도 무장투쟁의 선봉으로 키워내려던 선생의 뜻은 1924년 중국군의 습격을 받아 순국함으로써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민족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다음달 3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종중 및 유관단체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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