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만들고 지자체·환경부가 키운 '광주 발암물질 사태'

한해 배출하는 1급 발암물질 대기배출량이 전국 배출량의 30%에 달했지만 정부나 광주시는 배출허용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그동안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주민들이 유독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돼 왔다.
큰 논란이 일자 세방산업은 공장 가동을 잠정 중단하고 저감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발암물질의 인체 유해성 등을 놓고 환경단체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
비윤리적 기업과 무책임한 지자체, 이를 수년째 방관한 환경부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1급 발암물질 배출 6년째 가장 많아
17일 광주환경운동연합과 환경부의 '2014년 화학물질배출량 조사결과'에 따르면 세방산업은 2014년 1급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이하 TCE) 294t을 대기 중으로 배출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배출량이며 같은 해 두 번째로 많은 1급 발암물질을 배출한 트리스(130t)의 2배 이상, 엘지화학여수공장이 배출한 50t의 5배에 달한다. 또 광주지역 다른 9개 사업장에서 배출한 총량(48㎏)보다 5768배가 많다.
세방산업의 TCE 배출량은 지난 2009년 74t, 2010년 201t, 2011년 310t, 2012년 439t, 2013년 250t 등으로 매년 1급 발암물질 배출량 1위를 차지했다.
TCE는 간암과 폐암을 일으키는 발암성물질로 흡입했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유독물질이다.
광주환경운동연합 이경희 정책실장은 "일반산단에서 매일 1t에 가까운 1급 발암물질이 공기 중으로 퍼졌는데, 광주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노동자와 주민뿐 아니라 광주시민 전체가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 세방산업은?
광주 광산구 하남산단 1번로에 있는 세방산업㈜은 연축전지의 주요 부품인 연축전지용 배터리 케이스와 격리판(Separator)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110여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자본금은 21억원, 연간 매출액은 741억원으로 알려졌다.
연간 4000만㎡의 폴리에틸렌 격리판과 1700만 세트 이상의 배터리 케이스를 생산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1급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이하 TCE)을 배터리용 격리판을 만들고 세척하는데 사용해왔다.
이 과정에서 TCE가 대기 중으로 배출됐으며 한국환경공단 호남권지역본부가 지난 2014년 세방산업 주변 하남동의 대기중 TCE 농도를 측정한 결과 전국평균(0.00013)의 240배에 가까운 0.0311ppm이 나오기도 했다.
◇ '뒷북행정' 20년간 광주시 뭐했나
광주시가 유치한 세방산업이 하남산단에서 TCE를 사용하는 공정을 시작한 건 지난 1997년부터다. 2001년 광주공장을 증설하고 지난 2004년에는 안양의 본사를 지금의 하남산단 광주공장으로 이전하기도 했다.
이후 이 회사가 위치한 광주 하남동의 대기 중 1군 발암물질 농도가 매년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환경부가 연구보고서를 통해 지역적 관리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혔으나 광주시는 이런 사실조차 몰랐다.
올해 3월 환경부가 'TCE 저장 시설의 출입문과 증류기의 탱크 뚜껑이 열린 상태로 운영되고 있고, 저장탱크 고무마개에서도 누출이 발생하고 있다. 하남동의 대기 중 TCE 농도가 전국 최고를 기록한 주요 원인은 세방산업의 비산 누출로 판단된다'는 공문을 보내 지도점검을 지시한 뒤에야 움직였다. 세방산업이 TCE를 취급하기 시작한 이래 20년 만의 첫 점검이었다.
발암물질 사용 사실을 알면서 유치한 기업에 대해 감시나 규제 등의 조치를 전혀 하지않았던 광주시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환경단체는 특히 광주시가 환경부의 '화학물질 배출 이동량 정보시스템'만 확인했어도 충분히 규제할 수 있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도 유해대기 측정망 결과를 바탕으로 한 오염우려 지역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환경부 역시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
1급 발암물질을 1년에 수백톤씩 배출하고도 세방산업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던 것은 배출허용기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국제암연구소가 TCE를 1급 발암물질로 상향 조정하고 나서야 환경부는 기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바뀐 기준은 내년부터나 적용된다.
이경희 광주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결국은 광주시와 환경부의 관심 부족과 무책임한 행정이 부른 사태"라고 비판했다.
광주시는 논란이 확산되자 '세방산업 TCE 대책 준비위원회'를 열고 세방산업에 대시민 사과와 공해배출시설 개선 때까지 조업중단을 요구했다.
◇ ISO 환경경영시스템 인증 논란
논란의 중심에 선 세방산업은 지난 2011년 국내 한 업체로부터 ISO 14001 환경경영시스템 인증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나 환경인증 절차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ISO 환경경영시스템 인증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환경친화적 경영활동을 하는 기업을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시스템이다.
세방산업의 ISO 인증범위는 '플라스틱 사출 및 납축전지용 폴리에틸렌 세퍼레이터의 설계 개발 생산·서비스'로 지난 2011년 7월6일부터 2017년 6월12일까지 인증됐다.
이에 대해 인증기관 관계자는 "환경친화적인 경영시스템이나 비상시 대처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확인해 ISO14001 인증을 했다"며 "발암물질 배출로 문제가 됐다면 인증절차를 다시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이경희 정책실장은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 대해 확실한 검증 없이 환경경영시스템 인증이 됐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기업을 유치한 게 과연 광주시의 투자유치 실적이 되는지 의문이다. 광주시는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방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과하고 가동 중단했지만 "인체유해 가능성 낮아"
세방산업은 지난 13일 오후 5시께부터 공장 가동을 멈추고 이틀 간 비산 배출 컨설팅 업체의 시설 점검을 받았다. 최소한 오는 19일까지 조업 중단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광주환경운동연합은 TCE 배출량과 농도를 줄이는 방안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세방산업의 생산 공정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인체 유해성에 대한 조사를 거친 뒤 TCE 대체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연합 관계자는 "세방산업의 발암물질 배출로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잇따르고, 시민들은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TCE 대체제 사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시는 지난 2009년부터 환경부로부터 TCE 배출량을 고지받았지만 올해 3월에 들어서야 세방산업에 개선을 요구하는 수준에 그쳤고, 배출 허용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안일한 대응을 해왔다"면서 "면밀한 조사를 통해 대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연합 등 광주 시민단체협의회와 환경단체는 오는 18일 오전 11시 광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한 채 이윤추구에만 열을 올린 세방그룹과 이를 방기한 정부와 광주시에 대시민사과를 요구할 예정이다.
반면 세방산업 측은 배출된 TCE가 산단 주변 수완·월곡·하남동 주민(지난해 말 기준 13만2195명)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환경부의 대기 중 TCE 농도 측정 결과, 세방산업으로부터 380m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는 검출되지 않았으며 350m 지점에서는 0.0002ppm으로 전국 평균(0.00013ppm)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 업체에서 TCE를 취급하는 특수검진대상 근로자 30명도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세방산업 관계자는 "배터리 격리판을 만드는 해외의 모든 업체도 TCE를 사용하고 있다"며 "금속 세정에 이 정도 성능을 내는 제품이 없고, 우리 산업군에서는 현재까지 대체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친환경적인 대체제가 있다면 사용하고,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모든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는 오는 20일까지 환경청·환경단체·변호사·교수·광산구 주민 대표 등 14명이 참여하는 세방산업 대응 TF팀을 꾸려 실태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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