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알못'-공연백과사전] '100명 한정' 연극 '벙커 트릴로지'

【서울=뉴시스】연극 '벙커 트릴로지 - 맥베스'(사진=스토리피)
그래서 준비했다. 일명 '공연백과사전'. '공알못'(공연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과 공연 마니아를 위한 코너다. 몇 개의 키워드로 각종 공연을 톺아볼수 있게 했다. 순전히 관객을 위한 기자의 서비스라는 점 알아주시라. '혼자 꿈 꾸면 영원히 꿈이지만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고 화가이자 건축가 훈데르트바서가 말했다. 각박한 세상에 '비타민 주사'를 놓고있는 열정파 배우들과, 놓치면 안될 공연들을 소개한다. 당연히 '스포일러' 있다. <편집자주>
◇'공연백과사전' 챕터 ① →연극 '벙커 트릴로지'
내용과 형식의 기발함으로 연극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세 작품을 엮은 시리즈다. 개별 작품이 완결성을 갖췄지만, 세 작품을 모두 볼 경우 트라우마를 안긴 1차 세계대전의 다양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회당 관객 100명이 실제 벙커 안에 갇힌 듯, 관람하는 이 3부작은 전쟁이 문명뿐 아니라 결국 인간의 영혼까지 파괴한다는 걸 보여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고 벙커는 심리적인 방어막일 뿐 결코 안전지대가 될 수 없는 허울에 불과하다는 걸 드러낸다.

【서울=뉴시스】연극 '벙커 트릴로지 - 아가멤논'(사진=스토리피)
영국 연출가 겸 극작가 제스로 컴튼의 작품을 각색인 아닌, 재창작의 수준으로 한국 무대에 옮긴 김태형 연출과 지이선 작가를 각자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2007년 연극 '모범생들'을 시작으로, 컴튼의 또 다른 3부작 '카포네 트릴로지'로 연극계에 환상의 궁합을 과시한 콤비다.
그간 10년 간 '싸우고 울고 불고'했지만 "지이선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김태형), "김태형은 나를 부려먹지만 믿음이 가는 사람"(지이선)이라고 서로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낸 두 사람이 여러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완벽한 고증을 거친 '차가운 팩트 체킹' 뒤 쏟아낸 뜨거움의 기록을 담았다.

【서울=뉴시스】연극 '벙커 트릴로지 - 모르가나'(사진=스토리피)
김태형 연출: "거대한 세계 대전 안에서 희생되거나 이용됐던 사람들을 테마로 담고 싶었어요. 100년 전에 일어난 일을 다루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봤거든요. 먼 나라 이야기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거죠. 지금도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모르게 진행하는 일들이 드러나서 섬뜩함을 느꼈잖아요."
지이선 연출: "윤리의 층위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던 지점이에요. 실제 있었던 전쟁인데, 저희가 잘 모르는 전쟁이니까요. 한국식으로 바꾸는 공연이다 보니 더 걱정이 됐어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사람일까'에 대한 고민도 계속 했죠. 지금에도 영향을 미치는 전쟁 이야기라 부담스러웠고요."
김태형 연출 :"지금 세대에게는 가까운 전쟁이 아니죠. 저 역시 낯선 소재였는데 과거 연출한 '히스테리 보이즈'에 꽤 언급된 부분이 있어 그 때 공부를 했어요. 게다가 '벙커 트릴로지'의 원전들 역시 한국 관객에게는 낯설어요.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새 시대를 고려해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에요. 맥베스는 쿠데타와 (러시아 제국의 요승) 라스푸틴을 떠올려 러시아로 배경을 옮길 생각도 했었어요."

【서울=뉴시스】연극 '벙커 트릴로지 - 아가멤논'(사진=스토리피)
★각본 각색
지이선 : "윤리의 층위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던 지점이에요. 실제 있었던 전쟁인데, 저희가 잘 모르는 전쟁이니까요. 한국식으로 바꾸는 공연이다 보니 더 걱정이 됐어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사람일까'에 대한 고민도 계속 했죠. 지금에도 영향을 미치는 전쟁 이야기라 부담스러웠고요."
지이선 : "영어로 돼 있는 것을 옮겨 오다 보니 혼선이 빚기도 해요. '아가멤논'에서 통신병과 연락병이 헷갈린 게 예죠. 처음에는 직접 몸을 움직여 소식을 전해주는 극 중 역을 통신병으로 표현했어요. 근데 알고 보니 연락병이더라고요. 통신병은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팻말이나 봉화 등을 통해 신호를 보내고 받는 병사였던 거예요. 그런 일을 하나씩 겪다 보니 고증의 무게감을 느끼게 됐죠. 당시 지포 라이터가 있었는지, 군번줄이 있었는지, 물을 조달해서 마셨는지, 영국군은 커피를 마셨는지 홍차를 마셨는지 고민한 이유죠."

【서울=뉴시스】연극 '벙커 트릴로지 - 아가멤논'(사진=스토리피)
김태형 : "더 좁고 답답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었요. 근데 심지어 제작사 대표님은 100석을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건 제가 말렸죠. 처음에는 진흙탕의 느낌을 더 내려고 미숫가루 등을 사용해 흙먼지를 냈는데 관객분들을 위해 걷어냈어요. 본래 객석 역시 4면(현재는 3면)으로 두려고 했는데, 특정 객석에서 시야를 방해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포기하는 대신 총소리 등 음향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메시지는?
김태형 : "원작 '맥베스'에서는 숲의 나뭇가지들을 꺾어 위장한 군대가 밀어닥치는 장면이 있죠. 재미있기는 한데 저의 작품에서는 의미가 없어 보였어요. 그래서 저희는 죽은 자를 당당히 기리자는 의미에서 관객들이 나뭇가지 대신 군번줄을 드는 거죠. 마지막에 관객들이 다 같이 군번줄을 흔드는 건 죽은 이들을 위한 일종의 기도에요. 첫 공연에서는 함께 동참하실 지 조마조마했죠. 저는 결국 시스템과 부딪히는 인간에 관심이 많아요. '벙커 트릴로지'에서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전쟁에 던져진 인간들의 여러 면을 다루면서 그 안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기를 원했어요."
지이선 : "100년이 넘어도 행방불명이 군인들이 많다고 해요. 아직도 발굴 중이라죠.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일제 강점기, 6·25 동란, 당장만 해도 세월호 참사가 있고…. 군번줄은 그들의 이름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름을 부여하기 보다는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랐죠. 전쟁 등을 통해 약자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계속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범한 무명의 친구들과 시민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은 거죠. 진짜 영웅이 있을까 생각해요. 근데 어려움을 진짜 극복하는 건 영웅의 몫이 아니에요.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죠."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2월 29일까지. 아이엠컬쳐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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