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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앓으니 의원이 벗이 되고…전통시대 문인들 ‘병중사색’

등록 2017.02.02 15: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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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옛 사람들이 병을 앓으며 사색한 내용이 ‘병중사색(病中思索)’에 담겼다. 고려의 이규보·이색, 조선 시대의 권근·서거정·김종직·이식·신흠 등 7인의 한시 작품을 실었다.  선인들도 물론 의술에 기대기는 했다. 나아가 직접 의학을 공부해 의서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병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는 점이다. ‘병의 근원은 무엇인가’, ‘왜 병에 걸렸을까’, ‘병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등 근원적 문제의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전통 시대의 지식인들은 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도교나 불교적 사유를 더해 질병의 근원적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의원을 통해 약을 지어 먹고 침을 맞는 정식 치료 방법 외에도 당시 민간에서 행해진 여러 가지 치료 요법을 살펴볼 수 있다. 기왓장을 달궈 아픈 부위에 대기도 하고 여종을 시켜 허리를 밟게 하기도 하며, 바닷물을 가져다 피부를 씻기도 한다. 병을 다루는 다양하고 기발한 노력, 병을 계기로 성찰하게 된 삶이 드러난다.  ◇옛사람의 시에 차운하여 그냥 짓다(漫成次古人韻)  묵은 병으로 노승의 처소에 누워 지내면서(臥痾聊寄老禪居) 머리 위로 지나가는 세월에 부질없이 놀라네(頭上空驚歲月徂) 도잠이 앓던 것처럼 다리 아파 가마를 타고(脚待舁籃陶令病) 심약처럼 야위어 허리는 띠를 감당하기 어렵네(腰難勝帶沈郞癯)- 이규보  ◇밤에 읊다(夜詠)  온 집안이 곤히 다 잠들었는데(渾家政酣夢) 긴 밤에 홀로 깨어 조용히 읊조리네(長夜獨沈吟) 치통 때문에 머리까지 아프고(齒病連頭痛) 요통이 뼛속까지 파고드네(腰酸入骨深) 단과 산 같은 좋은 약도 많고(帖多丹復散) 쑥뜸과 침 같은 좋은 시술도 있네(術妙艾仍針) 베개 위의 무궁한 내 생각을(枕上無窮意) 상제께서는 밝게 굽어보시리(明明上帝臨)- 이색  ◇스스로 위로하다(自遣)  글로 쓰지 않고는 말로 소통이 어려우니(言非書字欲通難) 아내와 자식이라도 외국 사람과 같네(妻子眞同貊與蠻) 외롭게 병이 든 몸은 낱알인 양 보잘것없고(兀兀病身微一粒) 기나긴 근심은 천 갈래로 어지럽기만 하네(悠悠愁緖亂千端) 지천명의 나이 넘었건만 어찌 천명을 알며(年踰知命豈知命) 관료의 지위에 있지만 어찌 관료라고 하랴(位在服官焉服官) 귀로 듣지 못하게 됨은 하늘이 내린 벌이니(滅耳不聦天降罰) 벼슬과 녹봉을 편안히 여길 수 있겠나(封君厚祿可能安)- 권근  ◇병을 앓으며 밤에 읊다(病中夜唫)  병을 두려워하면 도리어 병이 많아지고(畏病還多病) 명예를 구하면 또한 명예에 누가 되네(邀名亦累名) 등불 아래 화로 끼고 만권 책을 읽다가(燈爐書萬卷) 비바람 치고 밤은 깊어 삼경이 되었네(風雨夜三更) 맛이 나는 시 구절을 만나면(得句有眞趣) 닭 우는 소리도 나쁜 소리로 안 들린다네(聞鷄非惡聲) 아이 녀석은 한창 깊은 잠에 빠져들어(兒童方爛睡) 아무것도 모르고 잠만 잔다네(萬事不關情)- 서거정  ◇내가 본래 풍증을 앓아 왔는데, 8월19일에 침과 뜸 치료를 받고 나서 풍기가 발작하여 오른손이 떨렸다. 그래서 마침내 사직을 하였는데, 한산한 관직으로 바꾸어 임명한다는 명을 받고 기뻐서 짓다(余素患風證八月十九日針灸風氣發動右手戰掉遂辭職得閑官換差之命喜而有作)  꼬박 한 달 동안 신음하다 보니(呻吟連晦朔) 살결에 온통 나쁜 풍기뿐이로다(腠理盡雌風) 천도는 세 번째 바뀌려고 하는데(天道三將變) 인심은 백 가지로 같지 않다네(人心百不同) 건강과 병듦은 의술과 무관하고(榮枯鍼砭外) 가고 머묾은 담소하는 중에 있다(行止笑談中) 임금의 은혜를 나 혼자 입었다네(皇恩我獨蒙)- 김종직  ◇연작시의 여섯 번째 수  조생은 젊어서부터 고질에 시달리다(趙生少沈綿) 묘지명을 지어 놓고 혼자 슬퍼했지(銘墓以自恫) 죽고 사는 일이 중대하긴 하지만(死生亦大矣) 지레 마음 졸이며 괴로이 살 것 있겠는가(何苦先忩忩) 그대여! 중경의 아내를 한번 보게나(君看仲卿妻) 덕석 덮어쓰고 우는 남편을 꾸짖었네(諫泣牛衣中) 사나이는 의기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라(丈夫重意氣) 병 걸린 것쯤으로 천명이 궁해지진 않네(一病非天窮)- 이식  ◇동지에 병들어 누워(至日病臥)  오래 앓으니 의원이 벗이 되고(病久醫爲伴) 한가하니 잠이 고향이 되었네(閑來睡作鄕) 이제 또다시 동짓날을 만나서(又逢南至日) 새로 북극성 방향을 찾아보네(新試北辰方) 작은 향로엔 가는 연기 피어오르고(小鴨香煙細) 개인 창엔 아침 햇살 빛나네(晴窓曉旭光) 좋은 문장을 스스로 즐기나니(靈珠須自媚) 땅속엔 미세한 양기 움직이네(地底動微陽)- 신흠  이 병 저 병 앓다 보면 의원에게 빈번하게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환자와 의원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병들어 일을 떠나 있다 보니 한가해지고, 한가한 가운데 잠드니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맑게 갠 동짓날 아침 햇살 밝은 창가에 향 연기가 가늘게 피어 올라가는 모습이 그가 있던 곳의 한가로운 분위기를 잘 전해 준다.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시에 이 날을 기점으로 해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창 추운 때지만 이날부터 양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믿었다. 병들어 누운 채 동지를 맞으면서 자신의 병도 동지처럼 가장 캄캄한 상태지만 고통이 극에 달하면 치유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고 다시 새로운 희망을 찾았을 것이다. 강민구 글, 이희중 그림, 오준호 감수, 280쪽, 1만2000원, 한국고전번역원  reap@newsis.com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옛 사람들이 병을 앓으며 사색한 내용이 ‘병중사색(病中思索)’에 담겼다. 고려의 이규보·이색, 조선 시대의 권근·서거정·김종직·이식·신흠 등 7인의 한시 작품을 실었다.

 선인들도 물론 의술에 기대기는 했다. 나아가 직접 의학을 공부해 의서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병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는 점이다. ‘병의 근원은 무엇인가’, ‘왜 병에 걸렸을까’, ‘병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등 근원적 문제의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전통 시대의 지식인들은 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도교나 불교적 사유를 더해 질병의 근원적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의원을 통해 약을 지어 먹고 침을 맞는 정식 치료 방법 외에도 당시 민간에서 행해진 여러 가지 치료 요법을 살펴볼 수 있다. 기왓장을 달궈 아픈 부위에 대기도 하고 여종을 시켜 허리를 밟게 하기도 하며, 바닷물을 가져다 피부를 씻기도 한다. 병을 다루는 다양하고 기발한 노력, 병을 계기로 성찰하게 된 삶이 드러난다.

 ◇옛사람의 시에 차운하여 그냥 짓다(漫成次古人韻)

 묵은 병으로 노승의 처소에 누워 지내면서(臥痾聊寄老禪居) 머리 위로 지나가는 세월에 부질없이 놀라네(頭上空驚歲月徂) 도잠이 앓던 것처럼 다리 아파 가마를 타고(脚待舁籃陶令病) 심약처럼 야위어 허리는 띠를 감당하기 어렵네(腰難勝帶沈郞癯)- 이규보

 ◇밤에 읊다(夜詠)

 온 집안이 곤히 다 잠들었는데(渾家政酣夢) 긴 밤에 홀로 깨어 조용히 읊조리네(長夜獨沈吟) 치통 때문에 머리까지 아프고(齒病連頭痛) 요통이 뼛속까지 파고드네(腰酸入骨深) 단과 산 같은 좋은 약도 많고(帖多丹復散) 쑥뜸과 침 같은 좋은 시술도 있네(術妙艾仍針) 베개 위의 무궁한 내 생각을(枕上無窮意) 상제께서는 밝게 굽어보시리(明明上帝臨)- 이색

 ◇스스로 위로하다(自遣)

 글로 쓰지 않고는 말로 소통이 어려우니(言非書字欲通難) 아내와 자식이라도 외국 사람과 같네(妻子眞同貊與蠻) 외롭게 병이 든 몸은 낱알인 양 보잘것없고(兀兀病身微一粒) 기나긴 근심은 천 갈래로 어지럽기만 하네(悠悠愁緖亂千端) 지천명의 나이 넘었건만 어찌 천명을 알며(年踰知命豈知命) 관료의 지위에 있지만 어찌 관료라고 하랴(位在服官焉服官) 귀로 듣지 못하게 됨은 하늘이 내린 벌이니(滅耳不聦天降罰) 벼슬과 녹봉을 편안히 여길 수 있겠나(封君厚祿可能安)- 권근

 ◇병을 앓으며 밤에 읊다(病中夜唫)

 병을 두려워하면 도리어 병이 많아지고(畏病還多病) 명예를 구하면 또한 명예에 누가 되네(邀名亦累名) 등불 아래 화로 끼고 만권 책을 읽다가(燈爐書萬卷) 비바람 치고 밤은 깊어 삼경이 되었네(風雨夜三更) 맛이 나는 시 구절을 만나면(得句有眞趣) 닭 우는 소리도 나쁜 소리로 안 들린다네(聞鷄非惡聲) 아이 녀석은 한창 깊은 잠에 빠져들어(兒童方爛睡) 아무것도 모르고 잠만 잔다네(萬事不關情)- 서거정

 ◇내가 본래 풍증을 앓아 왔는데, 8월19일에 침과 뜸 치료를 받고 나서 풍기가 발작하여 오른손이 떨렸다. 그래서 마침내 사직을 하였는데, 한산한 관직으로 바꾸어 임명한다는 명을 받고 기뻐서 짓다(余素患風證八月十九日針灸風氣發動右手戰掉遂辭職得閑官換差之命喜而有作)

 꼬박 한 달 동안 신음하다 보니(呻吟連晦朔) 살결에 온통 나쁜 풍기뿐이로다(腠理盡雌風) 천도는 세 번째 바뀌려고 하는데(天道三將變) 인심은 백 가지로 같지 않다네(人心百不同) 건강과 병듦은 의술과 무관하고(榮枯鍼砭外) 가고 머묾은 담소하는 중에 있다(行止笑談中) 임금의 은혜를 나 혼자 입었다네(皇恩我獨蒙)- 김종직

 ◇연작시의 여섯 번째 수

 조생은 젊어서부터 고질에 시달리다(趙生少沈綿) 묘지명을 지어 놓고 혼자 슬퍼했지(銘墓以自恫) 죽고 사는 일이 중대하긴 하지만(死生亦大矣) 지레 마음 졸이며 괴로이 살 것 있겠는가(何苦先忩忩) 그대여! 중경의 아내를 한번 보게나(君看仲卿妻) 덕석 덮어쓰고 우는 남편을 꾸짖었네(諫泣牛衣中) 사나이는 의기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라(丈夫重意氣) 병 걸린 것쯤으로 천명이 궁해지진 않네(一病非天窮)- 이식

 ◇동지에 병들어 누워(至日病臥)

 오래 앓으니 의원이 벗이 되고(病久醫爲伴) 한가하니 잠이 고향이 되었네(閑來睡作鄕) 이제 또다시 동짓날을 만나서(又逢南至日) 새로 북극성 방향을 찾아보네(新試北辰方) 작은 향로엔 가는 연기 피어오르고(小鴨香煙細) 개인 창엔 아침 햇살 빛나네(晴窓曉旭光) 좋은 문장을 스스로 즐기나니(靈珠須自媚) 땅속엔 미세한 양기 움직이네(地底動微陽)- 신흠

 이 병 저 병 앓다 보면 의원에게 빈번하게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환자와 의원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병들어 일을 떠나 있다 보니 한가해지고, 한가한 가운데 잠드니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맑게 갠 동짓날 아침 햇살 밝은 창가에 향 연기가 가늘게 피어 올라가는 모습이 그가 있던 곳의 한가로운 분위기를 잘 전해 준다.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시에 이 날을 기점으로 해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창 추운 때지만 이날부터 양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믿었다. 병들어 누운 채 동지를 맞으면서 자신의 병도 동지처럼 가장 캄캄한 상태지만 고통이 극에 달하면 치유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고 다시 새로운 희망을 찾았을 것이다. 강민구 글, 이희중 그림, 오준호 감수, 280쪽, 1만2000원,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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