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0주년] "고문 악몽에 아직도 악쓰다 깨어나”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문 피해자들
트라우마 치유차 505 보안부대 찾아 다시 울컥
구타에 물· 전기고문까지…참혹했던 당시 증언
“시간이 없다. 중요한 건 발포명령 등 진상규명”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당시 시민군들이 24일 계엄군의 고문 장소 중 하나인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를 찾았다. 고문 피해자들인 이 방을 고문과 취조를 당하던 공간이라고 증언했다. 당시 학생과 시민들은 이곳으로 끌려와 물고문과 전기고문, 구타 등을 당했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31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당시 시민군들이 24일 계엄군의 고문 장소 중 하나인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를 찾았다. 고문 피해자들인 이 방을 고문과 취조를 당하던 공간이라고 증언했다. 당시 학생과 시민들은 이곳으로 끌려와 물고문과 전기고문, 구타 등을 당했다. 2020.04.24. [email protected]
“나는 38일”(허춘섭)
“아따 많이 있었다”(이성전)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곽희성, 김중현, 박갑수, 박성열, 박시영, 서정열, 양동남, 이성전, 허춘섭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앞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20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곽희성, 김중현, 박갑수, 박성열, 박시영, 서정열, 양동남, 이성전, 허춘섭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앞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email protected]
“여기 끌고 올땐 눈을 가리는데 눈 가린 천이 흘러내려 조금씩 볼 수 있었죠. 여기가 지하 고문실로 내려가던 곳이요”(박성열)
자물쇠로 굳게 잠긴 검은색 철문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지역은 5·18 사적지 시설물 보호구역입니다. 무단출입을 금지하오니...' 서른 걸음 쯤 걸어 들어가니 폐허가 된 하얀 색 건물 입구가 보인다. 깨진 창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을씨년스러운 공기에 소름이 돋는다.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곽희성, 김중현, 박갑수, 박성열, 박시영, 서정열, 양동남, 이성전, 허춘섭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에서 80년 5월의 광주를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죽는게 낫다 생각할만큼 고통스러웠다"고도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35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곽희성, 김중현, 박갑수, 박성열, 박시영, 서정열, 양동남, 이성전, 허춘섭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에서 80년 5월의 광주를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죽는게 낫다 생각할만큼 고통스러웠다"고도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email protected]
이 건물은 1980년 5월 전두환의 신군부가 진압군의 실질적 지휘본부로 사용하던 505 보안부대 본관이다. 시민군들이 끌려와 고문과 취조를 당했다. 이곳에서 진압군은 시민들을 구속시키기 위해 구타와 전기고문, 물고문 등으로 압박하면서 범죄자로 조작해 거짓 자술서를 받았다. 본관 뒤와 옆으로는 적색 벽돌의 내무반과 면회실 등이 있다.
지난 달 24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에 9명 오월 동지가 모였다. 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붙잡혀 고문피해를 겪은 곽희성, 김중현, 박갑수, 박성열, 박시영, 서정열, 양동남, 이성전, 허춘섭 씨다. 이들은 트라우마를 겪었던 공간을 카메라로 대면하고 또 대면하기를 반복하며 촬영한 사진으로 재해석하는 치유과정을 밟고 있다. 80년 오월의 진실을 기억하면서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애쓰는 중이다.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허춘섭, 이성전(왼쪽부터)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를 찾아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11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허춘섭, 이성전(왼쪽부터)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를 찾아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email protected]
이들은 1980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학생이었고, 노동자였고 시민이었다.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新軍部)가 5월 17일 공수부대 투입, 비상계엄 전국 확대 발표에 이어 전국에서 대학생과 재야인사를 연행하기 시작하면서 광주에서는 5월 18일 자정 무렵부터 계엄군이 광주 505보안부대로 시민들을 끌고 갔다. 학생과 시민들에게 진압봉을 휘두르며 연행했다. 계엄군의 발포(사살)로 인한 사상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시민과 학생들은 계엄군의 무력에 무기를 가지고 시민군으로 맞서게 된다. 그러다 많은 이들이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에서 계엄군의 집단발포로 목숨을 잃었다.
“우덜을 폭도로, 간첩으로 몰았제. 지들 각본대로 안 되면 데려와서 때리고, 고문의 공포에 떨다가 짜놓은 각본대로 도장을 찍는 거여. 우리 같은 사람이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고 내란죄로 모는 거제. 그 옛날에 그게 말이 돼? 그런 말도 안 되는 죄를 우리에게 씌웠제.”(이성전)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80년 오월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겪은 이성전 씨가 24일 자신이 고문을 당한 장소인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를 찾았다. 이 씨는 사진으로 공간을 대면하는 트라우마 치유를 하고 있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17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80년 오월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겪은 이성전 씨가 24일 자신이 고문을 당한 장소인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를 찾았다. 이 씨는 사진으로 공간을 대면하는 트라우마 치유를 하고 있다. 2020.04.24. [email protected]
먼발치에서 고문실 쪽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박성열 씨가 고문 이후 며칠 전 이곳을 처음 찾은 뒤 이날이 두 번째라며 운을 뗐다. 박 씨는 열네 살 때 미군에 의해 켈로(KLO)부대원이 됐고 함께 부대원 친구와 함께 1980년 5월 505보안부대에 끌려왔다. 그는 켈로부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더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 너무 많이 맞아서 몸이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맞다가 오른쪽 안구가 탈구되기도 했는데 병원에 보내지 않고 그 자리에 있던 주전자로 물을 뿌려 다시 밀어 넣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하다 끝내 감정이 복받친 듯 오열하기 시작했다. 진정이 되지 않는 듯 한참을 우는 박 씨를 사진심리치유자 임종진 씨가 끌어안고 토닥인다.
“울고 싶은 만큼 우셔도 돼요. 다른 선생님들도 다들 여기 처음 왔을 때 많이 울었어요.”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80년 오월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겪은 서정열, 박시영, 이성전, 박갑수(왼쪽부터) 씨가 24일 대표적 고문 장소인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를 찾았다. 이들은 사진으로 공간을 대면하는 트라우마 치유를 하고 있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19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80년 오월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겪은 서정열, 박시영, 이성전, 박갑수(왼쪽부터) 씨가 24일 대표적 고문 장소인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를 찾았다. 이들은 사진으로 공간을 대면하는 트라우마 치유를 하고 있다. 2020.04.24. [email protected]
“여기는 진짜 안 오고 싶었던 곳이에요. 전 너무 힘들어 한국을 떠나 중국에서 오래 살았어요. 광주에 와도 보안부대 쪽은 절대 들르지 않았어요. 당사자는 (이 공간이) 힘들어요. 다른 형님들(고문피해자들)은 사진 트라우마 치유과정을 하는데 저는 잘 안 되더라고요. 지금도 자다가 발작하면 애 엄마가 얼른 침대에서 내려가 버려요. (고문피해자들) 다들 그러실 거예요. 자다 악쓰고 발길질 하고. 30년째 정신과 치료 받고 약도 먹고 있어요.”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24일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를 찾은 이성전 씨가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사진심리치유자 임종진 씨와 함께 자신이 고문을 당한 장소로 들어가고 있다. 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이 씨는 계엄군에 의해 이곳으로 끌려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지금은 사진으로 공간을 대면하는 트라우마 치유를 하고 있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34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24일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를 찾은 이성전 씨가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사진심리치유자 임종진 씨와 함께 자신이 고문을 당한 장소로 들어가고 있다. 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이 씨는 계엄군에 의해 이곳으로 끌려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지금은 사진으로 공간을 대면하는 트라우마 치유를 하고 있다. 2020.04.24. [email protected]
옆에 있던 허춘섭 씨는 당시 형사가 총 가진 시민군을 잡으면 한 정당 300만원 포상금에 1계급 특진이었다며 “난 총 20정을 모두 반납하고 끌려 왔는디 형사가 포상금 300만원 나오면 네 엄마 주고 난 승진만 할 테니 총 숨겨놓은 곳을 가르쳐 달라 하더라고. 없는 총이 어디서 나오겄어. 그럼 고문하는 거제. 고문을 못 이겨서 집에 숨겨 놨다, 뒷산에 묻어 놨다 거짓 자백을 해야 혔소.”라 한다.
“상무대 영창에서 저녁 배식이 끝나면 검은 포니 승용차가 와. 그럼 안대를 묶고 5분 거리인 여기에 도착하제. 보통 지하실로 끌고 가는디 나는 다시 안대를 채워서 차를 타고 10분쯤 가면 나오는 하천에서 물고문을 받았제. 그때 내가 머리를 다쳤었는데 물고문까지 당하니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다보니 여기서 죽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제.”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이성전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지하실을 찾아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32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이성전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지하실을 찾아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email protected]
“살아있는 게 더 힘들었거든. 상무대 영창은 누울 잠자리도 없는데 새벽되면(고문이 끝나고 상무대로 돌아가면) 녹초가 돼서 쓰러졌제. 옛날엔 여기가 정말 넓어 보였소. 그런데 지금 보니 정말 좁구마.” 비좁은 고문실이 넓게 보이던 건 공포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짚는다.
서로 고통의 기억을 털어놓다가 보안부대 앞에 돗자리를 폈다. 이날의 점심식사는 햇살 내리쬐는 보안부대 터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이다.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이성전, 허춘섭(왼쪽)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지하실을 찾아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33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이성전, 허춘섭(왼쪽)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지하실을 찾아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email protected]
“그 때 자장면이 어디 있어. 상무대 영창에서 만식이란 놈이 라면을 배식하는데 그놈 손에 붙은 거 한 점 뜯어먹다가 뒤지게 두들겨 맞았제. 덩치가 엄청 큰 놈인디.” (이성전)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들이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지하실을 찾았다. 사진의 공간은 당시 물고문을 하던 공간이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30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들이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지하실을 찾았다. 사진의 공간은 당시 물고문을 하던 공간이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email protected]
이성전 씨는 “나는 절대 저 안에 다시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했다가 소주를 종이컵에 석잔 따라 마시고서 지팡이를 짚어가며 지하실로 향했다. 이 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한 쪽 눈을 실명했고 같은 쪽 팔과 다리도 마비됐다.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이성전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지하실을 찾아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왼쪽의 공간이 취조실이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안대를 씌우고 끌고 왔지만 안대가 흘러내릴 때마다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03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이성전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지하실을 찾아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왼쪽의 공간이 취조실이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안대를 씌우고 끌고 왔지만 안대가 흘러내릴 때마다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email protected]
“비명소리,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게 고문을 하면서 자술서를 쓰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고 나오던 장소가 여기여. 안했다고 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안했다고 할 수 없소. 심지어 다들 고문 받고 중상을 입었으니 같이 생활을 했던 사람들끼리도 서로 얼굴을 몰라. 신음소리만 들었제. 어떻게 됐는지 알 수도 없고”(이성전)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허춘섭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지하실에서 80년 오월 당시를 증언하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 이들 뒤로 보이는 부분이 모두 고문과 취조를 당했던 공간이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16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허춘섭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지하실에서 80년 오월 당시를 증언하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 이들 뒤로 보이는 부분이 모두 고문과 취조를 당했던 공간이다.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email protected]
이들은 이 공간을 80년 5월 당시 모습으로 재현해 역사관, 교육관으로 운영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지켜진 것인지, 그 소중함이 제대로 알려지기를 바란다.
이날 결국 고문실 안쪽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한 박성열 씨가 말한다. “그래도 내가 살아남아서 이런 아픔을 올바르게 전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진조위)에서 만난 송선태 진조위원장은 “피해자들은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 등으로 일자리를 이어가기 어려워 생활고를 겪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 경우만 비공식 통계상 54명에 이른다. 여러 이유로 조사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당시 시민군들이 24일 계엄군의 고문 장중 하나인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를 찾았다. 당시 학생과 시민들은 이곳으로 끌려와 물고문과 전기고문, 구타 등을 당했다. 입구에는 무단 출입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24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앞두고 당시 시민군들이 24일 계엄군의 고문 장중 하나인 광주 서구 쌍촌동 옛 505 보안부대 터를 찾았다. 당시 학생과 시민들은 이곳으로 끌려와 물고문과 전기고문, 구타 등을 당했다. 입구에는 무단 출입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0.04.24.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곽희성, 김중현, 박갑수, 박성열, 박시영, 서정열, 양동남, 이성전, 허춘섭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앞에 둘러앉아 자장면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 자장면을 먹기위해 앉아있을 수 있게 될 지 누가 알았겠어"라고 말한다. "죽어서 나오지 못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chocrystal@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1/NISI20200511_0016317208_web.jpg?rnd=20200516090722)
[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자 곽희성, 김중현, 박갑수, 박성열, 박시영, 서정열, 양동남, 이성전, 허춘섭 씨가 5·18 40년을 앞두고 24일 오후 트라우마 치유 과정 중 하나로 고문을 겪은 장소인 광주 서구 상무대로 505보안부대 옛터 앞에 둘러앉아 자장면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 자장면을 먹기위해 앉아있을 수 있게 될 지 누가 알았겠어"라고 말한다. "죽어서 나오지 못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상무대에서 505보안대대로 끌려다니며 국가의 폭력을 겪었다. "끌려올 때 안대를 씌우지만 안대가 흘러내리며 공간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날은 더욱 힘들다. 이들은 고통의 공간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5·18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2020.04.24. [email protected]
또 “가장 중요한 건 전두환의 사살 명령과 관련한 진상 규명인데 진조위에 수사권이 없어 조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5·18왜곡, 폄훼 등을 바로잡으려면 전두환 등 소환 조사가 꼭 필요한데 출석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5·18 당시 재수생으로 전남도청 ‘기동타격대’에 합류했다가 5월 27일 도청에서 체포된 뒤 모진 고문을 당했던 양동남 씨도 진상 규명을 강조한다. 양 씨는 5·18을 폄훼하는 수구 논객 지만원에 의해 광주에 내려온 북한 특수군 '제36 광수' 권력 서열 10위권에 드는 최룡해로 지목되며 왜곡과 폄훼의 피해까지 겪었다.
양 씨는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허장환, 김용장 등 80년 5월을 피해자가 아닌 입장에서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의 구술 등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당시 사망자들을 암매장한 장소 등을 알아내는 것도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많은 것들을 기억하는데 증언 이후 보호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증인들을 봤다” 며 “정부가 이들을 보호해주면 증언자가 더 늘어날 것인데 40년이나 흘렀으니 다들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 나만 해도 그렇게 생생하던 80년의 기억들이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소멸되더라. 시간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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