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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도 역병이 돌 때는 차례 안 지내고 세배도 안해"

등록 2022.01.31 10:00:00수정 2022.01.31 10: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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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설 명절 차례상 간소화 권장

[서울=뉴시스] 일반 가정의 설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2022.01.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일반 가정의 설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2022.01.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시대가 변했지만, 명절은 명절이다. 코로나 19사태로 가족끼리 모임은 줄었지만 그래도 차례상은 차려진다. 홍동백서·조율이시·어동육서·좌포우혜로 차례상 규칙이 있어 헛갈리기 일쑤다. 하지만 이젠 간소하게 차린 차례상이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차례 음식을 간소화하는 등 제례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주자가례 설차례상, 술 한잔·차 한잔·과일 한 쟁반 올려

한국국학진흥원은 2017년부터 제례문화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서와 종가, 일반 가정의 설차례상에 진설하는 제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전통 예서와 종가에 비해 일반 가정의 차례 음식이 평균 5~6배 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 제례 문화 지침서인 '주자가례'에 따르면, 설날은 새로운 해가 밝았음을 조상에게 알리기 위해 간단한 제수를 진설하고 예를 갖추는 일종의 의식이다. 그래서 설날과 추석에는 제사를 지낸다고 하지 않고 차례를 올린다고 한다. '주자가례'에서는 설 차례 상에 술 한 잔,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 등 3가지 음식을 차리고 술도 한 번만 올리며 축문도 읽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경북 안동 퇴계 이황종가 설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2022.01.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경북 안동 퇴계 이황종가 설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2022.01.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퇴계 종가 5가지 음식…일반가정 25~30가지 음식

한국국학진흥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전통 격식을 지키는 종가의 설 차례상은 '주자가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북 안동에 위치한 퇴계 이황 종가에서는 술, 떡국, 포,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 등 5가지 제수를 진설한다. 과일 쟁반에는 대추 3개, 밤 5개, 배 1개, 감 1개, 사과 1개, 귤 1개를 담았다. '주자가례'에 비해 차가 생략됐고, 대신 떡국과 전, 북어포를 추가했다.

그런데 일반 가정의 차례상에는 평균 25~30가지의 제수가 올라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일은 종류별로 별도의 제기에 각각 담았으며 그 외 어류와 육류, 삼색 채소, 각종 유과 등이 추가됐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종가에서는 비교적 격식을 잘 갖추고 있었는데, 일반 가정의 차례상 음식은 30~40가지가 되는 일도 있었다"며 "일반 가정에서 '주자가례'를 모르다보니 음식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음식을 많이 올리면 정성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다보니 명절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며 "명절 차례상은 주자가례와 종가에서 하는 것처럼 기본으로만 차려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조선시대 선비들, 차례보다 세배 중시…역병 유행때 명절 차례도 생략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일기자료 가운데 역병이 유행하는 탓에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기도 찾아볼 수 있다.

경북 예천에 살았던 초간 권문해는 '초간일기'(1582년 2월 15일자)에서 "역병이 번지기 시작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하였다"고 했다. 안동 하회마을의 류의목은 '하와일록'(1798년 8월 14일자)에서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하여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 안동 풍산의 김두흠 역시 '일록'(1851년 3월 5일자)에서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예로부터 집안에 상(喪)을 당하거나 환자가 생기는 등 우환이 닥쳤을 때는 차례는 물론, 기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는 유교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조상에게 제수를 올리는 차례와 기제사는 정결한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데, 전염병에 의해 오염된 환경은 불결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역병이 돌 때 차례를 비롯한 모든 집안 행사를 포기한 이유는 무엇보다 전염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사람간의 접촉 기회를 최대한 줄여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미영 수석연구위원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차례보다 세배를 중시했는데, 역병이 돌 때는 차례를 안 지냈고 세배도 안했다"며 "역병이 돌 때 마을 전체 회의에서 차례를 생략하기로 결정했다. 공동체 전체가 이렇게 협조했다는 점을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사람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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