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군 장악 마을 버스 본 순간 눈물 주르륵"…마리우폴 탈출기
우크라 자매, 러시아로 끌려간다는 소문에 탈출했지만
러군에 붙잡혀 여과센터 전전하다 운좋게 다시 탈출해
죽을 고비 수차례 넘기며 우크라군 점령지역 결국 도착
"우크라 마을 버스 보면서 눈물…그렇게 기쁠 줄 몰랐다"
![[서울=뉴시스]마리우폴에서 탈출한 베라(왼쪽)와 아들 키릴, 여동생 니콜레. (출처=뉴욕타임스) 2022.5.3.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2/05/03/NISI20220503_0000988737_web.jpg?rnd=20220503103943)
[서울=뉴시스]마리우폴에서 탈출한 베라(왼쪽)와 아들 키릴, 여동생 니콜레. (출처=뉴욕타임스) 2022.5.3.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곳 주민 베라와 니콜레 자매는 러시아군의 포위공격이 잦아들면서 최악의 상황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도와 숨진 이웃들을 묻고 눈을 녹여 식수로 마시며 폭격맞은 집 지붕이 뚫리는 고초를 모두 견뎌냈다고 믿은 것이다.
자매는 그러나 지난 3월 중순 이들은 도시를 떠나야겠다고 판단했다. 러시아군이 이곳 주민들을 러시아나 러시아 점령지로 강제 소개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자매는 베라의 4살난 아들 키릴을 데리고 걸어서 마리우폴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시작한 자매의 탈출 과정은 형언하기 어려운 고난의 연속이었다. 다음은 미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보도한 자매의 탈출기다.
자매는 지뢰가 잔득 깔리고 시신이 널린 도로를 지나야 했으며 교회 근처에서 그들을 노리는 러시아군 저격수를 피해야 했고 꽃밭에 숨어 포화를 피했다. 이틀만에 간신히 고속도로에 도착했지만 러시아군에 붙잡혀 강제로 만원버스에 타야 했다.
니콜레는 "러시아 군인이 (나에게) 우리를 해방시켜줬는데 왜 얼굴 표정이 어둡냐고 물었다. 교도소로 가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니콜스케라는 마을 근처의 한 학교 건물이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개인정보를 적어내도록 하는 등록 센터였다. 우크라이나와 미 당국자들, 인권 단체들이 "여과 센터"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우크라이나인을 러시아로 강제 소개하기 위해 설치한 곳이다.
러시아는 1990년 체첸 전쟁 당시에도 주민들을 강제 소개하는 "여과" 작전을 벌였다. 미기업연구소 핵심위협프로젝트 책임자 겸 선임연구원 프레데릭 케이건은 소개 작전이 주민들을 겁주고 학살행위 목격자들을 침묵시키며 러시아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보복을 겁내 성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베라와 니콜레는 영국의 인도주의 단체 우크라이나연대에 처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단체의 주선으로 두 자매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자매는 러시아 통제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을 폭로하기 위해 인터뷰를 한다고 밝혔다. 자매는 마리우폴에서 지내는 동안 촬영한 동영상과 일자별 기록을 제공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유럽 및 중앙아시아 담당 부책임자 레이첼 덴버는 여과 센터에 붙잡혔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했으며 러시아의 행위가 "전형적인 강제 소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서명한 4차 제네바협약이 점령지 민간인의 강제 소개를 전쟁범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덴버는 "원하면 러시아로 갈 수 있다고 통지를 받고 가기로 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가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 어쩔 수 없이 간 경우"라고 했다. 러시아 점령지역에서 탈출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세르기 키슬리챠 유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니콜스케, 만후시, 얄타에 여과센터가 설치돼 있다고 폭로했다. 3곳 모두 마리우폴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접경한 도네츠크 지역에 있다.
베라와 니콜레는 마리우폴 탈출 과정에서 3곳 중 니콜스케와 만후시 2곳의 여과 센터에 잠시 붙잡혀 있었다고 했다. 자매는 이곳의 경비는 삼엄하지 않았고 행선지를 선택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같았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러시아로 가는 길은 안전했지만 우크라이나 점령지로 가는 길은 안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라는 "집이 부서져 갈 곳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고 자식을 데리고 위험한 곳으로 가기 힘든 사람도 있었다. 안전한 길은 하나뿐이었다"고 했다.
러시아 인권위원 타티아나 모스칼코바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러시아로 강제소개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0만명의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러시아로 왔다면서 대피한 것이라고 했다.
![[마리우폴=AP/뉴시스]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정부령 마리우폴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아파트 건물 주변을 지나가고 있다. 2022.05.03.](https://img1.newsis.com/2022/05/03/NISI20220503_0018761074_web.jpg?rnd=20220503095211)
[마리우폴=AP/뉴시스]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정부령 마리우폴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아파트 건물 주변을 지나가고 있다. 2022.05.03.
베라와 니콜레는 3월 중순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포위망을 좁히고 있을 때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시 외곽에서 주민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21살인 니콜레는 "정말 겁이 났지만 하루하루 늦어지면 떠나기가 힘들어진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을 두고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오빠는 탈출 도중에 러시아군을 마주치면 군적령기 남성은 모두 발가벗겨 문신이나 검지손가락에 굳은 살이 있는 지 등 군복무 흔적을 샅샅이 조사한다며 탈출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전쟁 시작 직후부터 가족과 떨어져 있어서 그들이 떠나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최근 몇 주 동안 화상통화를 하면서 자매는 탈출 도중 들판에서 포격을 당하는 등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27살인 베라는 "정말 지옥같았다. 폭격을 피해 납작 엎드린 동안 살려달라고 기도했다"고 했다.
고속도로에서 마주친 러시아 군인이 이들을 니콜스케로 가는 버스에 태웠다. 여과센터가 설치된 학교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줄지어서서 개인정보를 기록하고 있었다. 학교 복도에 마분지를 깔고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매는 간신히 여과센터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고 했다. 운도 좋았고 다른 사람들 도움도 받았으며 자신들이 기지를 발휘하기도 해 탈출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리우폴 주민들을 여과센터로 운송하는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운전사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인 자포리지아로 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만후시의 유치원에 설치된 여과센터에서 자매는 수백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등록절차를 밟았다. 이름과 생년월일, 출신지 등을 기록한 뒤 10여명과 함께 한 교실에서 밤을 보냈다.
이곳에서 밴으로 사람들을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으로 보내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베라와 니콜레는 처음엔 망설였다. 가는 도중에 러시아군의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경에서 가까운 베르댠스크까지 공짜로 태워주겠다는 사람을 만나 가기로 했다. 베르댠스크는 전쟁 초기 러시아군이 점령한 곳이었다. 베르댠스크도 러시아군 점령지지만 자매는 계속 옮겨다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베르댠스크에는 친척도 살고 있었다.
니콜레는 "그 때 그 사람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지 모른다"고 했다.
베르댠스크에서 자매는 자포리지아까지 인도주의 통로를 통해 소개하는 밴을 탈 수 있었다. 밝은 노랑색의 마을 버스가 도로를 지나다니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들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베라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마을 버스를 보면서 그렇게 기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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