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유적지 해설 87세 할머니, 골절…"치료비 못 받아" 왜?
4·3 겪은 87세 홍춘호 할머니, 8년차 해설사
유적지서 낙상사고…양 손목 골절 응급수술
치료비 450만원 홀로…"서운하고 섭섭하다"
제주도 "해설사는 자원봉사자…산재 불가능"
23명 중 80대 3명, 고령 이유 상해보험 거절
![[제주=뉴시스] 지난 1일 제주도 4·3 유적지 해설사 홍춘호 할머니가 제주시 내 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홍 할머니는 지난달 24일 해설 중 낙상 사고로 양쪽 손목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었다. (사진=홍 할머니 측 제공) 2025.06.24.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6/24/NISI20250624_0001875222_web.jpg?rnd=20250624123709)
[제주=뉴시스] 지난 1일 제주도 4·3 유적지 해설사 홍춘호 할머니가 제주시 내 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홍 할머니는 지난달 24일 해설 중 낙상 사고로 양쪽 손목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었다. (사진=홍 할머니 측 제공) 2025.06.24. [email protected]
지난 20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만난 제주4·3 유적지 해설사 홍춘호(87) 할머니는 취재진에게 이 같이 호소했다. 그는 30도 가까운 무더운 날씨에도 양 팔과 무릎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긴급 수술을 통해 철심이 박힌 손목에는 15㎝ 넘는 흉터가 선명했다.
◇해설 중 낙상사고…병원비 450만원 "10원 하나 지원 못 받아"
홍 할머니는 지난달 24일 오전 11시30분께 4·3유적지인 동광리 동굴 '큰넓궤'에서 중학생 20여명에게 해설을 하고 내려오던 중 낙상사고를 당했다.
계단이 없는 돌길을 건너다 그만 넘어진 것이다. 일어나지 못한 홍 할머니는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았다.
진단 결과 홍 할머니는 양쪽 손목이 골절되고 무릎 관절까지 다쳤다. 골절 부위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치르고 약 3주간 입원했다. 이달 13일 퇴원하면서 450여만원의 치료비를 홀로 부담해야 했다.
해설 중 일어난 사고였지만 홍 할머니는 현재까지 산재 등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10원 짜리 하나 지원 없었다. 나 혼자 놀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해설을 하다가 다친 것인데 많이 서운하다"고 토로했다.
◇제주도 "해설사, 근로자 아닌 자원봉사자…고령 이유로 상해보험도 거절"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주도 4·3 유적지 해설사 홍춘호 할머니가 지난 20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홍 할머니는 지난달 24일 해설 중 낙상 사고로 양쪽 손목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었다. 2025.06.24. oyj4343@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6/24/NISI20250624_0001875223_web.jpg?rnd=20250624123826)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주도 4·3 유적지 해설사 홍춘호 할머니가 지난 20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홍 할머니는 지난달 24일 해설 중 낙상 사고로 양쪽 손목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었다. 2025.06.24. [email protected]
홍 할머니와 관련해 도는 "4·3 유적지 해설사는 근로자가 아닌 자원봉사자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애초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다"라며 "사고가 난 것은 안타깝지만 자원봉사 활동 중 부상을 당하더라도 치료비 등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제주에 활동 중인 4·3 유적지 해설사는 총 23명인데 20명은 상해보험에 가입돼 있다. 다만 홍 할머니처럼 80대 이상 해설사 3명은 이 조차 들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 관계자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보험회사에서 상해보험 가입을 거절했다"며 "금전적 지원은 어렵지만 해설사들에게 안전화 지급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적지 해설사들은 월 15회 이내로 회당 6만원의 활동비와 교통비 2400원을 받는다. 월 최대 수입료는 90만원 안팎이다.
◇11살에 불어 닥친 '4·3 광풍' 견뎌냈지만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태어난 홍 할머니는 70여년 전 동광리를 휩쓸었던 4·3의 광풍을 겪은 생존인이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지난 20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촬영한 제주도 4·3 유적지 해설사 홍춘호 할머니의 해설하는 모습. 홍 할머니는 지난달 24일 해설 중 낙상 사고로 양쪽 손목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었다. 2025.06.24. oyj4343@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6/24/NISI20250624_0001875225_web.jpg?rnd=20250624123949)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지난 20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촬영한 제주도 4·3 유적지 해설사 홍춘호 할머니의 해설하는 모습. 홍 할머니는 지난달 24일 해설 중 낙상 사고로 양쪽 손목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었다. 2025.06.24. [email protected]
마을 주민 150여명이 숨졌고 130여가구가 불에 타 마을 형태마저 사라졌다. 무등이왓처럼 사라진 마을이 현재 '잃어버린 마을'로 불린다. 홍 할머니 가족을 포함해 살아남은 주민들은 산으로, 굴로 피신했다. 지금 해설을 하고 있는 '큰넓궤'에서도 50여일을 지냈다.
비극은 끝이 없었다.
홍 할머니와 부모님은 산에서 내려오자 마자 토벌대에 붙잡혀 산남(한라산 남쪽) 임시수용소인 서귀포시 단추공장에 6개월 간 수감됐다. 인근 정방폭포에서는 대규모 총살이 벌어져 20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구체적인 희생자 수는 현재까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수백명의 수용자들은 먹을 것이 없어 풀을 뜯어 먹으며 연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홍 할머니처럼 단추공장에 수용된 사람들은 기록이 없는 탓에 지금도 국가로부터 '4·3 생존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홍 할머니는 "가까스로 살아서 마을에 돌아 왔지만 수용소에 갔다는 이유 만으로 '폭도새끼' '석방쟁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고 전했다.
◇팔순 이르러 쉴 새 없이 전한 그날의 참상 "다시 할 수 있을진…"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지난 20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촬영한 제주도 4·3 유적지 해설사 홍춘호 할머니의 해설하는 모습. 홍 할머니는 지난달 24일 해설 중 낙상 사고로 양쪽 손목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었다. 2025.06.24. oyj4343@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6/24/NISI20250624_0001875224_web.jpg?rnd=20250624123924)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지난 20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촬영한 제주도 4·3 유적지 해설사 홍춘호 할머니의 해설하는 모습. 홍 할머니는 지난달 24일 해설 중 낙상 사고로 양쪽 손목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었다. 2025.06.24. [email protected]
해설사를 통해 '이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도망을 다녔는지, 무얼 먹고 연명했는지, 얼마나 죽었는지' 등 후대가 잊어선 안되는 4·3의 교훈을 현장에서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이 뿐만 아니라 홍 할머니는 2019년 미국을 방문해 미군정 당시 행해진 4·3 학살을 최초로 증언했다. 2021년에는 해설사 활동과 함께 4·3의 참상을 세상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4·3의 '산증인'이자 '전달자'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2017년도에 동광리 해설사를 모집한다 했을 때 마을에서 나를 추천했다. 4·3을 경험한 사람이 있는데 겪지도 않은 사람이 할 수 있겠느냐 해서 하게 됐다"며 "그래도 학생들이나 단체 방문객이 오면 '여기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고 하나하나 설명을 열심히 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이제는 나이도 들고 몸도 다치고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처우가 이렇다 보니 서운하고 섭섭하다"며 "기관에서 해 달라고 요청이 오면 가끔 한 번씩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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