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다시 배운 건축…"누구의 발걸음도 환대하는 공간"
[신간]신만석 '길 위의 건축가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건축가는 공간을 설계하지만, 결국 그 공간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다.
이 책 '길 위의 건축가들’(미다스북스)은 그 오래된 명제를 스페인 북부의 길 위에서 다시 증명한다. 저자인 건축사 신만석은 도시를 ‘보는’ 대신 ‘걷고 머무는’ 방식으로 읽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 건축은 도면이 아니라 체온을 가진다.
산 세바스티안의 라 콘차 해변은 자연과 공학, 도시가 합의한 곡선의 미학으로 제시되고, 미라마르 궁전은 왕가의 별장에서 시민의 공원으로 변모한 공간 민주화의 사례로 읽힌다. 밤이면 등대처럼 빛나는 쿠르살 회관은 ‘두 개의 바위’라는 지형의 은유를 통해 장소의 기억을 현대어로 번역한다.
반면 게르니카에서는 비워진 건축이 말을 건다. 과장된 기념비 대신 낮은 벤치와 여백, ‘게르니카의 나무’가 중심이 되는 도시의 위계는 “건물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라는 윤리를 조용히 환기한다.
이 책의 매력은 전문성과 서사의 균형에 있다. ‘건축가의 시선’ 코너에서는 쿠르살의 외피와 음향 비례, 구시가지의 밀도와 보행 리듬을 차분히 분석하는 한편, 알베르게에서 나눈 핀초스 한 접시, 파사이아 만을 건너는 짧은 배편, 골목에서 마주친 인사 같은 일상의 장면도 놓치지 않는다. 그 결과 이 책은 전문서와 여행기 사이, 가장 읽기 좋은 중간지대에 자리한다.
후반부에는 마드리드·톨레도·발렌시아·바르셀로나로 여정을 확장하며 ‘현대의 심장과 역사의 영혼’이 만나는 장면을 포착한다. 칼라트라바의 물과 빛, 가우디의 곡선은 도시의 시간과 공명하며, 과거를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다시 말해지는 건축의 태도를 보여준다.
부록 또한 실질적이다. 체크리스트와 루트 요약, 북부길 알베르게 정보, 주요 건축 명소 가이드, 한국–스페인 비교 연표, 유용한 스페인어 표현까지 담아 읽고 나면 곧바로 떠날 수 있는 ‘실무형 길잡이’의 역할을 한다.
이 책이 끝내 도달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도시의 미학은 사람이 머무는 시간에서 만들어지고, 좋은 건축은 누구의 발걸음도 환대하는 방식으로 완성된다는 것.
저자가 말하듯, “건축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리듬으로 시간을 짓는 일, 매일의 삶을 설계하는 태도이다. 벽을 쌓듯 하루를 쌓고, 빛을 받아들이듯 마음을 여는 일. 그 모든 것이 건축이다.” (17장 ‘바르셀로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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