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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슈퍼 모멘텀', 용비어천가 아닌 기록의 힘

등록 2026.01.28 14:40:00수정 2026.01.28 16: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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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원종태 기자 =
SK하이닉스 일대기를 정리한 책이 나온다고 해서 SK그룹 고위 관계자에게 물었다.
 
“왜 외부 필진에게 저술을 맡겼나요?”

한 전략 컨설팅업체가 ‘슈퍼 모멘텀’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한다는 얘기를 들은 후였다.

SK하이닉스가 주제라면 내부에도 전문가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들 말이다.
 
그런데도 외부 필진을 섭외해 책을 낸다는 것이 의아했다.

SK그룹 고위 관계자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우리 SK 내부에서 쓴다면 용비어천가가 되지 않을까요?“

SK하이닉스의 성공 스토리를 용비어천가 식으로 적는 것은 불필요하고,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돌아보려면 외부 필진이 더 낫겠다고 봤다는 것이다.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
“경험했다면 기록하라”는 유발 하라리의 경구가 아니더라도, SK하이닉스의 성공을 책으로 펴낸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책을 통해 기업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고, 오해의 소지 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

‘악마의 편집’ 같은 불순한 의도는 한 줄, 한 줄, 앞으로 전진하며 완성하는 책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케아의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가 1973년 ‘어느 가구 상인의 유언장’과 1996년 ‘작은 이케아 사전’을 발표한 것도 같은 이유다.

책은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좋은 소재이자, 외부에선 잘 모르던 가치들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솔직한 기록의 가치
좀 더 나가보자.

2012년 3월 26일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SK하이닉스 공장 앞 호프집 네 곳에서 열렸던 맥주 파티는 누군가는 써야 한다.
 
당시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을 기념해 파티랄 것도 없이 이뤄진 소박한 이 모임에는 최태원 회장도 참석해 밤새 직원들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고 한다.

최 회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하이닉스 특유의 ‘독함’도 “그땐 그랬다” 정도로 치부할 소재가 아니다.
 
최 회장은 화장실에까지 써있던 ‘독하게 일하자’는 표어가 신기했다고 회상한다. 이 ‘독함’도 전후맥락을 충분히 쓰지 않는다면 한낱 ‘에피소드’에 그칠 수 있다.

‘슈퍼 모멘텀’은 그렇게 고단한 채권단 체제 10년을 버틴 하이닉스 특유의 독한 DNA를 책 곳곳에 할애했다.
 
급기야 이 독함은 최태원 회장의 리더십과 만나 불꽃을 튀긴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후 100명의 임원들과 독대했다. 배석자 없는 이 1대 1 만남이야말로 최태원 리더십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당시 반도체 공부를 열심히 했던 최 회장은 이 면담을 통해 실전을 익혔고, 면담 이후 ‘전략실’을 만들어 하이닉스 체질 자체를 바꿨다.

실질적인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판을 본 뒤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경영학 공부에 매진했던 최 회장은 그런 걸 잘 하는 경영자였다.

SK그룹이 의도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최 회장의 이 같은 설계력과 판단력, 전투력을 표현한 여러 장면들은 적절한 근거와 상황 설명이 더해져 ‘슈퍼 모멘텀’을 읽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SK그룹 관계자가 “용비어천가는 필요 없다”고 한 것도 솔직한 기록의 힘이 없다면 SK하이닉스 직원들조차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는 혜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런 기획력 덕분에 책을 완독하고 나니, SK하이닉스 정신이 잘 녹아든 하나의 ‘헤리티지(유산)’로서 여운이 남았다.
 

●최태원 회장의 ‘스픽 아웃’
최태원 회장과 SK하이닉스의 행보는 ‘슈퍼 모멘텀’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SK하이닉스는 ‘슈퍼 모멘텀’을 통해 앞선 세대의 과업들을 한데 묶고, 스스로를 재정의하며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기업의 목적과 가치는 헤리티지에 기반해야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는다고 볼 때, 이 뛰어난 헤리티지는 반대편에서 보면 미래를 향한 가이드다.

이 관점에서 우리는 올해 누구보다 최 회장의 ‘스픽 아웃(공개 발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최 회장은 공직 성격이 짙은 대한상공회의소 의장직을 올해 말이면 사실상 끝낸다.
 
그러니 그가 대한상의 의장으로서 지금까지 경험한 장면들을 바탕으로 올해에는 좀 더 완성된 그림을 그리려 할 수 있다.

그의 ‘사회적 가치 진작론’이나 ‘한일 경제공동체론’은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내놓은 최적의 내수진작책 중 하나로 꼽힌다.

SK하이닉스 성공 스토리를 넘어, 그의 혜안으로 한국 사회가 새롭게 전진할 돌파구를 찾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슈퍼 모멘텀’이 ‘슈퍼 파워’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 아닐까.

경험했다면 기록해라.
기록했다면 공유하라. 

유발 하라리의 경구를 한번 더 곱씹는다.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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