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고레에다에서 머무르는 고레에다 '상자 속의 양'
영화 '상자 속의 양' 리뷰
![[클로즈업 필름]고레에다에서 머무르는 고레에다 '상자 속의 양'](https://img1.newsis.com/2026/06/10/NISI20260610_0002156938_web.jpg?rnd=20260610052934)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새 영화 '상자 속의 양'(6월10일 공개)은 장황하다. 의도한 것인지 우연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은 고레에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망라하려 한다. 그의 영화들이 대체로 일관된 키워드 아래 각기 다른 가지로 뻗어나가며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세계를 쌓아 올렸다면, 신작은 이 세계를 단번에 아우르려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전에 가지 않은 길로 나아가려는 의지 역시 드러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선택은 나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다만 때론 너무 의식적이어서 오히려 흐트러지고, 종종 너무 익숙해서 집중력을 잃는다.
고레에다 감독 영화를 성실히 짚어온 관객이라면 '상자 속의 양'은 낯설리 없다. 실체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 살아 있기에 어떻게든 견뎌내야만 하는 삶. 떠나버린 아들을 대신해 줄 새 아들을 가족으로 들인다는 결정. 가족이 돼가는 것처럼 보이나 가족이 될 수 없어서 겪어야 하는 곤란. 존재 자각과 한계 인식. 이 이야기는 그의 작품 세계를 꿰뚫는다. 가족, 상실, 새 가족, 아이, 어른. 후회, 죄책, 이해, 몰이해. 존재, 시스템, 속박, 탈출, 해체, 결합.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있던 바로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클로즈업 필름]고레에다에서 머무르는 고레에다 '상자 속의 양'](https://img1.newsis.com/2026/06/10/NISI20260610_0002156939_web.jpg?rnd=20260610052951)
이 영화는 고레에다 감독의 특정 작품과 일부 연관성을 갖는 게 아니라 그의 영화 전체를 훑어낸다. 어떤 순간엔 '환상의 빛'의 망실이, 또 다른 대목에선 '아무도 모른다'의 방치가, 어느 장면에선 '걸어도 걸어도'의 균열과 파열이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냉혹함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애달픔도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온기가 있는 것과 '어느 가족'의 성찰이 있는 건 당연하고, 심지어 '괴물'의 절실함과 간곡함도 있다. 다시 말해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 감독 전작들이 품은 각기 다른 개성을 그러모은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AI휴머노이드로봇을 등장시킨 건 이미 했던 걸 답습하는 게 아니라 역시나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려 한다는 고레에다 감독의 선언처럼 보인다. 인간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존재의 등장은 이전에 고레에다 감독 영화가 풀어놓지 않은 갖가지 질문을 추가로 펼쳐놓는다. 인간다움에 관한 물음이 따라올 수밖에 없고, 인간과 AI휴머노이드로봇의 공존과 그에 따른 새로운 윤리에 대한 통찰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AI휴머노이드로봇이란 존재 의미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반대로 인간 존재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클로즈업 필름]고레에다에서 머무르는 고레에다 '상자 속의 양'](https://img1.newsis.com/2026/06/10/NISI20260610_0002156940_web.jpg?rnd=20260610053009)
말하자면 '상자 속의 양'은 이 서사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품고 있고 품어야 하는 것들에 관해 최선을 다해 정성스럽게 써내려 간다. 다만 이 성실함엔 갱신과 진보가 보이지 않는다. '상자 속의 양'은 러닝타임 127분 간 그간 고레에다 감독이 해온 것들을 충실히 재확인하는 데 그친다. 이 경향은 AI휴머노이드로봇이란 새 소재를 내보이는 대목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고레에다 감독이 던지는 질문 대부분은 앞서 유사한 테마를 다룬 영화들이 이미 고민했던 것들과 다르지 않고, 그가 오래 해온 얘기들을 AI라는 소재로 치환한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상자 속의 양'은 강박적으로 많이 얘기하고 기계적으로 자주 질문한다. 이 작품은 영화 한 편을 털어 다뤄도 모자를 수 있는 주제로 겹겹이 쌓여 있다. 떠나 보낸 이를 다른 존재로 대체할 수 있는가. 이별을 어떻게 견디고 극복할 수 있을까. 부모란 무엇이고 그들의 역할이란 어떤 것인가. AI휴머노이드로봇은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AI휴머노이드로봇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봐야 할까. 감정만이 인간다움의 증표인가.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야기 안에 질문이 있는 게 아니라 질문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인다.
![[클로즈업 필름]고레에다에서 머무르는 고레에다 '상자 속의 양'](https://img1.newsis.com/2026/06/10/NISI20260610_0002156941_web.jpg?rnd=20260610053043)
'상자 속의 양'이 고레에다 감독 전작과 비교할 때 어떤 작품보다 극적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감상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건 시종일관 관념적일 뿐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일 게다. 이 영화는 견해와 물음을 쏟아붓는다는 것 외에도 대립과 충돌을 남발하기도 한다. 개인 대 가족, 개인 대 제도는 고레에다 감독 전작에서 드러났던 구도. 신작에선 개인 대 기술, 제도 대 윤리, 개인 대 시대 등 새 구도를 추가한다. 정보량이 과도하고 그래서 어떤 지점에서도 깊고 세밀하게 파고들어 가지 못 하기에 관객은 몰입하기보다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런 지적은 이 작품이 고레에다 감독 작품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자 속의 양'엔 평범한 영화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품이 있다.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진중하고, 많이 고민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여서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떤 캐릭터도 쉬이 다루지 않고 어떤 마음도 간편히 정리하지 않는 고레에다 감독의 태도는 이번에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반도 유타의 음악으로 이 영화는 기억될지도 모른다. '괴물'에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가 그랬던 것처럼 반도 유타의 첼로는 그것만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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