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정원 비밀 풀리나…영양 서석지 '1645년' 기록 발견
등록 2026.08.10 19:47:05수정 2026.08.10 19:50:25
정자 부속채 상량문서 기록 확인
![[영양=뉴시스]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영양 서석지' 조성 연대 기록이 발견된 정자 부속채 상량문 (사진=영양군 제공) 2026.08.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10/NISI20260810_0002208967_web.jpg?rnd=20260810194435)
[영양=뉴시스]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영양 서석지' 조성 연대 기록이 발견된 정자 부속채 상량문 (사진=영양군 제공) 2026.08.1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동안 1613년 조성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정자 부속채에 남아 있던 상량문에서 '1645년 이 못을 파고 서석지라고 이름 붙였다'라는 기록이 확인됐다.
영양군 산촌생활박물관은 최근 진행한 '영양 서석지 세계유산 가치 발굴 기초연구' 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서석지는 조선 중기 학자인 석문 정영방(1577~1650)이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조성한 별서 정원이다. 자연 암석인 서석(瑞石)을 중심으로 연못과 정자, 주변 경관을 배치한 조선시대 별서 정원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정영방은 1608년부터 연당에 별서를 마련하고 고향인 예천을 오갔다.
이후 병자호란을 피해 연당으로 다시 들어오면서 별서 곁에 정자 경정(敬亭)을 짓고 정원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서석지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느냐였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포털 등에는 그동안 '1613년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기록돼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문헌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 단서가 나온 곳은 경정의 부속채인 주일재(主一齋)다.
조사팀은 경정의 자양재(紫陽齋)에 보관돼 있던 주일재 상량문 3점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작성된 상량문은 정영방의 손자인 눌재 정요천(1639~1700)이 지은 것으로 파악됐다.
상량문에는 '歲乙酉 鑿斯池名曰瑞石'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을유년에 이 못을 파고 서석지라고 이름 붙였다'라는 뜻이다. 을유년은 1645년이다.
기록대로라면 서석지라는 이름의 연못이 만들어진 시점은 1645년으로 특정할 수 있다. 기존에 알려진 1613년과는 32년 차이가 난다.
다만 이 기록이 의미하는 바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1613년설이 서석지 전체의 조성 시점을 가리키는 것인지, 1645년 기록이 현재의 연못을 새로 조성하거나 정비한 시점을 가리키는 것인지 등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확인된 상량문은 1919년 주일재를 중수할 당시 후손들이 선대의 원래 상량문을 보고 옮겨 적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록에는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경정 일대가 중수·보수된 과정도 담겨 있다.
이번 발견은 서석지가 한 차례 만들어진 뒤 그대로 유지된 공간이 아니라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 후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변화해 온 정원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상량문에는 정자의 건립과 중수 과정에 관한 기록도 남아 있어 그동안 제기됐던 '경정이 19세기에 새로 지어진 것 아니냐'는 의문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도 주목된다.
영양군은 이번 문헌 발견을 계기로 서석지의 조성 과정과 변천사를 다시 정리하고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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