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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문화의 원류] 신을 부르고 삶을 풀다…제주인과 함께한 무속신앙

등록 2026.09.20 08:00:00

제주비엔날레서 초감제…큰굿·본풀이로 이어온 신들의 이야기

"오직 귀신을 섬긴다"…기록에서 확인되는 신앙의 흔적

2009년 신당 458곳, 소멸우려…굿·심방·본풀이 함께 보전해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7일 제주도립미술관 시민갤러리에서 열린 '2026 제5회 제주비엔날레' 연계 프로그램에서 서순실 심방이 신들을 청하는 초감제를 지내고 있다. 2026.09.20.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7일 제주도립미술관 시민갤러리에서 열린 '2026 제5회 제주비엔날레' 연계 프로그램에서 서순실 심방이 신들을 청하는 초감제를 지내고 있다. 2026.09.20. [email protected]


제주는 오랫동안 '변방의 섬'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제주문화의 깊은 층위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래전부터 한반도와 동아시아 해역을 잇던 해상교류의 거점이었으며 제주 사람들은 화산섬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돌과 바람, 불과 흙을 다루며 고유한 생활문화를 일궈왔다. 문헌과 유적, 생활문화와 구술, 자연환경과 생업의 흔적을 따라가며 제주가 지닌 독창성과 개방성을 살펴보고 문화콘텐츠로 확장될 가능성을 함께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17일 오후 3시 제주도립미술관 시민갤러리. 전시작품이 빼곡하게 걸린 벽면 앞으로 흰 천을 씌운 제상이 놓이고 과일과 제물이 차려졌다. 붉은 장삼을 입은 서순실 심방이 양손에 든 신칼을 흔들며 사설을 풀어내자 미술작품을 둘러보던 관람객들의 시선이 굿판으로 향했다.

서 심방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는 이들의 고통을 거둬가고 위로와 힘을 달라고 신들에게 고했다. 참석자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고 비엔날레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도 사설에 담았다. 심방은 무당을 이르는 제주어다.

이날 열린 굿은 '2026 제5회 제주비엔날레' 연계 프로그램 '다시 살으라'의 초감제다. 초감제는 제주 큰굿의 첫머리에 지내는 제례로 하늘과 땅의 모든 신을 청해 앉히는 절차다. 서 심방을 비롯해 오용부·이경희·송영미 심방이 함께 집전했다.

서 심방은 국가무형유산 제주큰굿보존회 회장이다. 제주큰굿은 2021년 12월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큰 심방을 중심으로 5명 이상이 참여해 짧게는 이레, 길게는 보름 동안 신을 맞아들이고, 즐겁게 하고, 보내는 제의를 이어간다.

굿과 본풀이로 이어온 제주 신들의 이야기

긴 굿의 여러 제차를 이어주는 것은 심방의 말과 노래다. 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일을 겪어 신으로 자리 잡았는지 풀어내는 '본풀이'가 굿판에서 구송된다. 천지창조를 담은 천지왕본풀이를 비롯해 초공본풀이, 이공본풀이, 삼공본풀이, 세경본풀이, 문전본풀이 등에는 신들의 내력과 함께 제주 사람들의 생활이 녹아 있다.

농경신 자청비가 등장하는 세경본풀이에서는 농경과 목축이, 문전본풀이에는 집과 부엌·문·울타리를 관장하는 신들이 등장한다. 아이의 잉태와 출산을 맡은 삼승할망, 바다와 어업을 관장하는 신, 산과 목축을 돌보는 신도 따로 있다. 제주인의 생업과 출산·육아, 질병, 죽음까지 각각의 신이 관여하는 구조다.

[제주=뉴시스] 제주도는 2025년 국가유산 방문의 해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사진은 제주칠머리당 영등굿. (사진=제주도 제공)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 제주도는 2025년 국가유산 방문의 해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사진은 제주칠머리당 영등굿. (사진=제주도 제공) [email protected]

제주 무속의 일부는 이미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2009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음력 2월 바람의 신 영등할망을 맞고 보내면서 바다의 평안과 풍어를 비는 의례로, 심방과 해녀·선주 등이 함께 굿을 준비하고 이어왔다.

2016년 등재된 제주해녀문화에도 굿과 신앙이 자리한다. 유네스코 등재자료에는 해녀들이 물질에 앞서 바다에서의 안전과 많은 해산물을 기원하는 의례를 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물질 기술이나 공동체 조직뿐 아니라 바다를 대하는 신앙과 의례까지 해녀문화의 한 부분으로 본 것이다.

굿은 제주에서만 행해진 의례가 아니다. 조선시대 전국 각지에서 무당이 기복과 치병, 기우 등의 의례를 맡았고, 유교가 지배이념으로 자리 잡은 뒤에도 민간에서 이어졌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미신타파’ 등을 거치면서 공동체 단위의 굿과 신당은 빠르게 약화됐다.

제주에서도 같은 변화를 겪었지만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과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된 유교적 생활규범의 확산과 산업화 속에서 신당과 심방을 중심으로 한 전승이 비교적 오래 이어졌다. 이 때문에 굿의 제차와 본풀이 등 제주 무속의 옛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요소들이 다른 지역보다 풍부하게 남아 있다.

탐라에서 조선까지…기록에 남은 신앙

제주에서 무속신앙의 뿌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갈 수 있는데 실제 문헌기록으로는 중국 '당회요'를 참고할 만하다. 이 문헌에서 661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낸 탐라의 생활을 소개하면서 "문기는 없고 오직 귀신을 섬긴다(唯事鬼神)"고 적었다. 당시 기록의 '귀신'은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죽은 사람의 혼령에 한정하기보다 자연신과 토착신 등을 포함하는 신령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고대사회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과 정치적 지배자의 관계도 밀접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마한에서 천군이 천신의 제사를 주관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지배층이 하늘과 산천을 대상으로 제사를 지냈다.

 탐라의 초기 지배층 역시 정치적 지도자이면서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성격을 함께 가졌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용담동 제사유적과 당시 동아시아 제의체계 등을 놓고 보면 탐라에서도 자연신이나 산천신을 대상으로 한 집단 제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제주 무속과 신당의 모습은 문헌에서 훨씬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산과 숲, 내와 못, 높고 낮은 언덕, 나무와 돌에 모두 신의 제사를 베푼다"고 제주 풍속을 기록했다. 봄과 가을에는 남녀가 광양당과 차귀당에 모여 술과 고기를 마련해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도 남겼다.

1520~1521년 제주에 유배됐던 김정은 '제주풍토록'에서 제주 사람들이 귀신을 숭상하고 남자 무당이 많다고 적었다. 당시 제사를 지내던 이른바 '음사(淫祀)'가 300여 곳에 달한다는 수치도 기록했다.

1601년 제주를 찾은 김상헌의 '남사록'에는 "남자 무당이 대단히 많다"며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기도하는 일을 모두 남자가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광양당과 차귀당 등에서 이뤄진 제사가 제주 사람들의 생활에 깊게 자리 잡았던 모습도 전한다.

이보다 앞선 1488년 최부의 '표해록'에는 바다를 건너기 전에도 신에게 안전을 비는 장면이 있다. 제주에서 육지로 나오는 사람들이 광양·차귀·천외·초춘 등의 신사에 제사를 지낸 뒤 출항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거친 제주 바다를 오가던 사람들에게 신당은 항해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제주=뉴시스] 탐라순력도 '건포배은(巾浦拜恩)' 일부.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신당을 철폐하면서 제주성 밖 곳곳에서 신당이 불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진=제주도 홈페이지 탐라순력도에서 캡처)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탐라순력도 '건포배은(巾浦拜恩)' 일부.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신당을 철폐하면서 제주성 밖 곳곳에서 신당이 불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진=제주도 홈페이지 탐라순력도에서 캡처)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조선시대에 무속신앙이 널리 퍼졌고, 탄압도 반복되는 가운데 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이런 신앙을 대대적으로 철폐했다. 그의 기록에는 남녀 무격과 ‘당한’의 수가 1000명을 넘는다고 적혀 있으며, 제주 삼읍의 신당 129곳을 불태웠다고 나온다. 개인이 갖고 있던 주술도구와 신의(神衣), 신철(神鐵)도 함께 없앴다.

삶마다 신이 있었다…제주에 남은 신당과 본풀이

일제강점기에는 제주 무속이 조사와 기록의 대상이 됐다. 아키바 다카시 등은 1931년 서귀포를 찾아 박봉춘 심방이 구연한 제주 신화를 채록했다. 당시 기록된 것은 초감제를 비롯해 본풀이 등 무가 16편이다. 일제의 식민지 조사라는 한계를 갖지만 당시 제주 굿과 본풀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남았다.
[제주=뉴시스] 아키바 다카시와 아카마쓰 지조가 1932년 이전 제주에서 무속과 본풀이를 조사·기록하면서촬영한 굿의 모습이다. (사진='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에서 캡처)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 아키바 다카시와 아카마쓰 지조가 1932년 이전 제주에서 무속과 본풀이를 조사·기록하면서촬영한 굿의 모습이다. (사진='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에서 캡처) [email protected]


근현대 들어서도 수난은 이어졌다. 다른 종교의 확산과 사회 변화로 전승 기반이 약해졌고, 특히 1970년대를 전후한 새마을운동의 '미신타파' 과정에서는 신당이 훼손되거나 철거됐다.

신당의 성격을 보면 마을 전체의 안녕과 주민들의 출생·사망을 관장하는 본향당이 있는가 하면, 아이의 성장과 치병을 기원하는 일뤠당, 뱀신을 모시는 여드렛당, 어민들이 다니는 해신당·개당·돈짓당, 목축과 관련된 산신당이 각각 존재했다. 제주에서는 신앙의 대상과 생업에 따라 당의 기능이 나뉘었다.

여성신의 비중과 역할도 눈에 띈다. 세경본풀이의 자청비는 오곡의 씨앗을 가져온 농경신이며, 삼승할망은 잉태와 출산·육아를 관장한다. 본향당 본풀이에서도 바다에서 들어온 여신과 한라산에서 나온 남신이 만나 농경과 목축, 어업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사례가 이어진다. 여성신이 남성신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생업과 질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제주 본풀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제주의 무속신앙에서 신당과 굿, 심방과 본풀이는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의 신당에는 신의 내력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었고, 심방이 이를 제주어로 구송했으며 주민들은 정해진 날 찾아가 제물을 올리고 공동체의 안녕과 생업의 풍요를 빌었다. 수렵과 목축, 밭농사와 해녀의 물질까지 제주 사람들이 살아온 과정이 그 안에 겹겹이 쌓였다.

제주도와 제주전통문화연구소가 2008~2009년 도 전역을 대상으로 벌인 신당 전수조사에서는 458곳이 확인됐다. 제주시 238곳, 서귀포시 220곳이었다. 이 가운데 멸실되거나 폐당된 곳이 99곳, 당시까지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던 신당은 359곳이었다. 당시 조사에서도 새마을운동을 거치며 많은 신당이 사라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사 이후에도 자연재해와 개발, 마을공동체의 생활구조 변화 등으로 신당의 훼손과 소멸은 이어지고 있다. 농경과 목축, 어업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생활방식이 달라지면서 일부 신당은 기능이 약화되거나 폐당·합당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6일 서귀포시 대포동 개당(어부당) 모습. 나무와 돌로 둘러싸인 신당에 색색의 지전이 걸려 있다. 해녀와 어민들은 이곳에서 종종 바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했는데 지금은 1년에 한번 정도 굿을 하는 등 발길이 뜸하다. 2026.09.20.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6일 서귀포시 대포동 개당(어부당) 모습. 나무와 돌로 둘러싸인 신당에 색색의 지전이 걸려 있다. 해녀와 어민들은 이곳에서 종종 바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했는데 지금은 1년에 한번 정도 굿을 하는 등 발길이 뜸하다. 2026.09.20. [email protected]


서순실 심방은 "신당을 찾는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심방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며 "신당은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지탱해온 공간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줄더라도 신당과 굿의 명맥만큼은 끊기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과 제주해녀문화가 보여주듯 굿은 종교의례에만 머무르지 않고 바다와 농경, 가족과 마을,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담아왔다. 종교적 신앙 여부를 떠나 수백 년 동안 이어진 굿과 본풀이, 신당에는 제주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하고 생업을 이어가며 공동체를 유지해온 흔적이 남아 있다. 그 기록과 전승을 문화유산의 영역에서 살펴야 할 이유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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