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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면소'된 대구 美문화원 사건 피해자들…대법서 배상 길 열려

등록 2026.09.23 12:06:57

집시법 위반죄로 옥살이, 재심에서 '면소'

대법 "무죄 선고될 고도의 개연성 인정돼"

피해자·유족들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발표한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이 보이고 있다. 2025.10.20. ks@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발표한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이 보이고 있다. 2025.10.2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정현 기자 = 1983년 '대구 미국 문화원 폭파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뒤 재심에서 무죄가 아닌 '면소(형식적 종결)'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도 국가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75만명이 용의선상에 올라 가혹수사를 당한 대구 미 문화원 폭파사건 관련 국가 손배소의 첫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23일 이 사건 피해자 박종덕씨·함종호씨 등 4명과 고(故) 우성수씨의 유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해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박씨 등은 전두환 정권 시기인 1983년 9월 22일 대구 중구 대구 미국 문화원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의 용의자로 지목, 경찰에 의해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했다.

경찰은 박씨 등 피해자 5명을 구속영장 집행 전까지 약 한 달 동안 잠을 재우지 않거나 구타, 고문했다.

이후 박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1984년 1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확정받고 옥살이를 했다.

함씨, 우씨 등 다른 4명도 경찰에 의해 불법 구금된 뒤 고문 등 가혹 행위를 당했고, 집시법 위반이 적용돼 1심에서 각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당시 검·경 등 공안 당국은 합동정보신문조를 구성해 1년 2개월 동안 75만명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으나 범인을 밝히지 못한 채 1984년 11월 수사를 매듭지었다.

이로부터 26년이 지난 2010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박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진실규명 결정을 내놨다. 진화위는 경찰이 박씨 등 다수의 민간인을 영장 없이 연행해 불법 구금하고 구타와 진술을 강요하거나 가혹 행위를 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다만 우씨는 진실규명 결정 전인 2005년 3월 숨졌다.

이어진 재심에서 재판부는 2019년 10월 박씨의 국가보안법 위반·반공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박씨·함씨·우씨 등 5명의 집시법 위반 혐의는 '면소'를 선고했다.

박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선 고문 등 강압 수사로 인해 쓰인 조서 등의 증거 능력을 모두 부정했다. 다만 집시법 위반 혐의는 법이 개정되면서 처벌 조항이 폐지됐다는 이유로 실체 판단 없이 면소로 봤다.

이후 박씨 등 피해자, 유족 33명은 이듬해 8월 국가를 상대로 총 18억3050만원 상당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박씨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국가보안법 위반 및 반공법 위반 혐의 관련 수사, 기소, 재판 복역에 대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소송을 너무 늦게 냈다(소멸시효 완성)는 국가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에 정의의 여신 디케상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DB) 2026.09.23.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에 정의의 여신 디케상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DB) 2026.09.23. [email protected]

그러면서 국가가 박씨와 그의 부모, 형제자매 등 가족 총 7명에게 위자료 6320여만원에 지연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박씨에게 인정된 위자료는 2123만원이다.

국가가 책임질 위자료를 박씨 7000만원 등 총 1억2000만원으로 봤는데, 박씨가 앞서 받은 형사보상금 4870여만원이 빠져 실제 배상액이 감소했다.

다만 박씨 등 피해자 5명의 옛 집시법 위반 혐의 부분은 '면소' 판결이 내려졌단 이유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면소가 아니었다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을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함씨 등 나머지 피해자들과 유족들에 대해선 패소로 판결했다. 고문, 가혹수사 부분조차 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1심은 이들에 대해선 재심 선고 시점이 아닌,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 시점인 2010년 6월을 기준으로 3년 내 소송을 내지 않아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하자, 박씨·함씨 등 생존 피해자 4명과 우씨의 유족 3명만 대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대법원은 하급심이 배척했던 집시법 위반 '면소' 부분에 대해서도 심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경우, 처벌 조항이 추후 없어지는 등 면소로 볼 사정이 없었더라도 무죄가 선고될 수 있었던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아가 함씨 등 피해자 3명, 우씨 유족들에 대해서 단기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본 점도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1·2심에서 패소한 함씨 등 피해자와 유족들은 배상받을 길이 열렸고, 박씨도 배상액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가혹행위로 임의성 없는 자백을 했거나 위압적 상태에서 자신과 다른 공범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고, 참고인들도 마찬가지 상태에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심을 근거로 한 형사보상청구 사건에서도 법원은 면소 재판을 할 만한 사유가 없었다면 무죄를 받을 만한 현저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피해자 5명의 집시법 위반 공소사실이 무죄 판결 됐을 것이라는 점에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뤄졌다"고 판시했다.

소멸시효 부분은 "피해자들로서는 재심을 통해 유죄 판결의 확정력이 배제돼야 비로소 수사에서부터 공소의 제기, 유죄판결 선고와 확정, 형의 집행에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국가의 불법행위 및 그에 따른 손해라고 평가해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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