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아닌 인간 선택이 부른 비극…연극 '이오카스테'[객석에서]
등록 2026.10.31 07:00:00수정 2026.10.31 07:52:24
오이디푸스 어머니이자 아내, 이오카스테 되살려
왕권 다투는 두 아들 사이서 비극 막으려 절규
운명과 선택의 갈림길…반복되는 전쟁의 참상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이오카스테'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30/NISI20261030_0002279149_web.jpg?rnd=20261030210555)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이오카스테'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아무도 이 전쟁을 이길 수 없다. 이긴 자가 패한 자가 될 것이다."
어머니 이오카스테의 간절한 호소에도 왕권을 다투는 두 아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타협의 여지를 외면한 채 서로 자신의 권리와 명분만을 내세울 뿐이다.
이들의 싸움이 다른 모든 전쟁처럼 수많은 죽음을 불러올 것이라는 어머니의 경고는 끝내 현실이 된다.
28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이오카스테'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테베 왕가의 비극을 통해 인간은 왜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는지 묻는다.
국립극단이 지난해부터 선보이고 있는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네 번째 작품으로, 서지혜가 윤색과 연출을 맡았다.
그리스 신화 속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오이디푸스'에서 그는 자신이 낳은 아들과 결혼했다는 진실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이오카스테'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30/NISI20261030_0002279150_web.jpg?rnd=20261030210617)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이오카스테'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작품은 이오카스테를 다시 무대 위에 살려낸다. 참혹한 운명을 온몸으로 겪어낸 그는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의 갈등을 중재하며 또 다른 비극을 막으려 한다.
그러나 에테오클레스는 폴리네이케스와 해마다 번갈아 테베를 다스리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왕권을 넘겨주지 않는다. 폴리네이케스는 동맹군을 모아 테베를 공격하겠다고 나선다.
이오카스테는 두 아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지만 형제는 각자의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이때 '선택'의 의미가 엇갈린다.
에테오클레스는 자신의 출생과 가족을 선택할 수 없었다며 "이제 제가 선택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오카스테는 "지금 삶은 너희 앞에 선택권을 주고 있다…너희들은 결정할 수 있어. 그런데 너희는 서로 죽이는 거 말고 결정할 수 없는 거니?"라며 절규한다.
신탁에 따라 가혹한 운명을 피할 수 없던 이오카스테는 두 아들만큼은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음에도 형제는 파멸의 길을 택한다. 인간의 비극이다. 이오카스테의 절망은 더욱 깊다.
협상이 거듭되는 사이,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시민들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우리는 전리품이 아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에 나선다. 학교는 폭격을 당해 수십 명이 사망한다. 대형 스크린에는 전쟁 상황을 알리는 뉴스 속보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각국의 기자들은 여러 언어로 평화협상 소식을 전한다.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이오카스테'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30/NISI20261030_0002279151_web.jpg?rnd=20261030210641)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이오카스테'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무대 위 테베의 전쟁 풍경이 낯설지 않은 것은 신화의 공간과 현대적 공간이 교차하는 연출 때문만은 아닐 터다. 2500년이 흐른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 비극은 여전히 동시대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어머니를 가운데 두고 맞서는 두 형제의 싸움은 유치하게 느껴질 만큼 소모적이다. 고작 이런 다툼으로 인해 그토록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이 시작된다는 사실은 허무함마저 안긴다.
극 중 이오카스테는 눈먼 오이디푸스에게 묻는다.
"왜 인간은 서로 죽이는 걸까. 오직 이 수수께끼만은 당신도 끝내 풀지 못했어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었던 오이디푸스조차 이 물음에는 답이 없다.
인간은 비극을 겪고도 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가. 테베에서 시작된 질문은 수천 년을 건너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오늘의 관객과 마주한다.
공연은 11월 2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이오카스테'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30/NISI20261030_0002279152_web.jpg?rnd=20261030210743)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이오카스테'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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