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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보는 K아트&책]'비싼 그림' 이우환, 무엇을 그린 것일까?

등록 2022.03.19 05:00:00수정 2022.03.19 0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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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존 작가증 가장 비싼 작가

한 해 거래액만 394억치...'아트테크' 1순위 작품

'그리지 않는 그림의 철학자'로도 유명

현대문학, 이우환 신작 에세이 '양의의 표현' 출간

[서울=뉴시스]2021년 8월 서울옥션에서 31억원에 낙찰된 이우환 1984년 'East winds'(동풍). 사진=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제공.

[서울=뉴시스]2021년 8월 서울옥션에서 31억원에 낙찰된 이우환 1984년 'East winds'(동풍). 사진=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제공.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작품은 끊임없이 삶을 이어간다."

넓은 점 하나, 날리듯 툭툭 친 선…도대체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은 생물처럼 움직이고 있다. 단색화를 넘어 한국 추상미술 거장으로 꼽히는 이우환(86)화백. 국내 생존 작가중 가장 비싼 작가다. 국내 경매사 낙찰총액 1위 작가로, 2021년 약 394억 8770만원의 거래액을 기록했다. 낙찰률은 82%, '나오면 무조건 팔리는' 작품이다.  때문에 MZ세대에 열풍인 '미술품 공동구매' 최고 작품으로도 꼽힌다. 몇달안에 팔아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일명 '돈이 된 그림'이다. 그림 좀 안다하는 컬렉터들의 '아트테크 필수템'이다.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바람과 함께' 시리즈 모두 인기다. 이 가운데 특히 '바람과 함께'가 강세로 2021년 8월 서울옥션에서 이우환의 1984년작 East winds'(동풍)이 31억 원에 팔려 최고 낙찰가를 경신했다. '바람'시리즈가 인기 있는 이유는 위작 시비 때문이다. 이전 점과 라인이 주로 팔렸지만, 위작 사태가 터지면서 '따라 그리기 어렵다'는 '바람 시리즈'로 컬렉터들이 눈길을 돌리면서다. 2015~2016년 위작 논란으로 홍역을 앓았지만, 영광의 상처가 됐다. 이우환은 더욱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렇다면, 이우환은 무엇을 그린 것일까.

"나는 산이나 인물과 같은 대상을 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생각해낸 추상적인 개념을 현재화 하는 것도 아니다. 내 그림의 양상은 단순히 필촉 그 자체이다....내가 회화에서 바라는 것은, 의미나 개념의 제시 이상으로 그것들을 빛나게 하고 생생하게 만드는 하나의 경이적인 장이 열리는 것이다."

점 하나만 있어도 작품값은 수억 원대. 커다란 하얀 화면에 점 하나만 딱 찍혀있는 '대화(Dialogue)'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이우환, Dialogue, pigment suspended in glue, on canvas181.8×227.3cm (150), 2010경매 추정가 5억4000만~6억원. 사진= 케이옥션 제공. 2020.5.1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우환, Dialogue, pigment suspended in glue, on canvas181.8×227.3cm (150), 2010경매 추정가 5억4000만~6억원. 사진= 케이옥션 제공. 2020.5.19. [email protected]




"나의 그림은 하얀 캔버스에 폭이 넓은 평필을 사용하여, 석채 물감으로 흰색에서 회색의 그라데이션이 지는 중후한 스트로크(stroke)를 그린 것이다. 맑고 까슬거리는 질감의 커다란 스트로크가 하나둘, 혹은 세 개가 있을 뿐, 그저 망양한 하얀 공백이 펼쳐져 있다. 이처럼 단순하기 짝이 없는 스트로크 하나를 그린 커다란 작품이 정면에 걸리고. 휑한 전시장 공간에는 그 외에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침묵의 그림'. 이우환은 꽤나 과장 섞인 인사 같다면서 지인의 감상평도 전했다. "신기한 공간에 섞여 들어온 기분이랄까. 하얀 캔버스에서 떠올라 마치 숨을 쉬고 있는 듯한 저 회색 스트로크 때문인지 공간이 소리 없이 울리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 거리고 눈이 번쩍 떠지는 느낌입니다."

몸과 마음이 아닌 '귀로 동냥'하고 구매열만 올렸다면 뜨끔한 말이다. '어지간히 강한 감수성의 표현'이지만, 이우환은 자신의 전람회에서 이와 비슷한 반응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명상적이다, 공간에 긴장감이 감돈다, 기품이 있다, 또는 유럽에서는 숭고한 기분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본다기보다 느끼고 있는 그림'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이우환은 자신한다. "내 그림을 보는 것은 열린 장과의 만남이며, 보는 사람의 무의식의 바다를 깨우는 경험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서울=뉴시스]이우환 '양의의 표현'

[서울=뉴시스]이우환 '양의의 표현'


 

'그리지 않는 그림의 철학자'로도 유명한 이우환의 신작 에세이 '양의의 표현'(현대문학)이 출간됐다. 이우환 작품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사유를 집대성한 글모음이다.

무엇을 그렸는지는 몰라도 저절로 좋아 보이는 비싼 그림의 비밀이 담겼다. '비인간적인' 이우환의 작품세계는 물론이고, 예술가 이우환을 만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묘미 중 하나다. 그림도 아는만큼 보인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처럼 조용한 터트림을 선호한다...아티스트는 창조주가 아니라 양쪽을 끊고 잇는 매개자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작품은 결코 자신의 표상이 아닌 세계와의 관계 작용에 의한 살아 있는 매개라는 것이다."(351쪽)

그림은 '그리움의 준말'이라는 말이 있다. 보는 사람이 있어야 그림도 산다. 유명한 그림이 죽지 않는 이유다. "거듭 말하지만 그림을 보는 것의 시작은 눈길에 의한 화면과의 만남이다. 화면에 일어나고 있는 판 벌임에, 보는 이 또한 반향하며 파문을 넓혀가렸다."(116~117쪽)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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