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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보는 K아트&책]'양팔 없는 화가' 석창우...'뭐든 해봐요'

등록 2022.05.10 05:00:00수정 2022.05.10 0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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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양팔없는 화가 석창우 화백이 의수 갈고리에 끼고 그린 수묵 크로키.

[서울=뉴시스]양팔없는 화가 석창우 화백이 의수 갈고리에 끼고 그린 수묵 크로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새 시대가 시작됐다.

죽다 살아난 사람은 다르다. 38년전 1984년 10월 29일, 2만2900V 전기에 감전됐다가 깨어났다. 살아난 대가는 가혹했다. 두팔이 사라졌다. '양팔이 없는 사나이'로 불렸다. 좌절하지 않았다. 4살 짜리 아들 때문이었다. 그림책을 보며 그림을 그려 달라는 아들, '빚이자 빛'이었다. 의수 고리에 볼펜을 끼웠다. 무턱대고 그렸는데 의외였다. "괜찮다" 아들의 환호와 가족의 추앙이 시작됐다. 그렇게 10년, 20년, 그림은 기운생동해졌다. 붓질의 자유로움은 그를 미술장르에도 없던 '수묵 크로키' 창시자로 우뚝 세웠다.

"팔 없이 산 38년이, 그 전보다 더 행복하다"는 석창우(67)화백이다. 양쪽 어깨 죽지에 단 '의수 팔'은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다. 갈고리에 끼운 붓은 화선지에서 춤판을 벌인다. '일필휘지'로 그려나가는 붓질은 감탄의 연속이다. 살아있음의 환희, '생의 찬미'를 보여준다.
[서울=뉴시스]석창우, 수묵 드로잉.

[서울=뉴시스]석창우, 수묵 드로잉.



2010년부터 본격적인 전시와 수많은 퍼포먼스로 기적을 알렸다. 2014년 소치동계패럴림픽 폐회식,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수묵 크로키 퍼포먼스'로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유명세를 탔다. 각종 매체에 오르내리며 승승장구 일취월장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2015년 환갑을 기념해 성경필사에 도전했다. 휘휙 거침없이 날리는 수묵 크로키와 달리 촘촘히 작은 글씨로 써 내려가야 하는 기행 같은 도전이었다. '살아있음의 감사의 마음'이었다. 구약과 신약을 써내간 두루마리 화선지 205개가 소요됐고 펼친 길이는 5킬로미터가 넘었다. 3년6개월간 수행 같은 필사를 끝낸 그의 소감은 "이제 다시 시작이죠"였다. 덕분에 2018년 석창우 폰트체도 개발, 특허청에 디자인 등록도 했다.
[서울=뉴시스]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성경 필사하는 장면.

[서울=뉴시스]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성경 필사하는 장면.

"해보고 안되면 그때 포기해도 늦지 않아요."

서른한 살때였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IT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간단한 시술을 받았는데 그 선택이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주사액이 혈관으로 들어가 역류하면서 눈으로 가는 동맥을 막았고 혈액 공급이 되지 않아 시신경이 괴사했다.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남은 건 시각 상실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이 불행을 인정하고 다시 공부에 도전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재판연구원과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변호사를 거쳐 판사가 되었다. 지난해 3월부터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인 시각장애인 김동현 판사다.

갑작스런 사고로 시각을 잃었지만 절망을 딛고 법관이 되기까지의 일들을 에세이 '뭐든 해봐요' 에 풀어냈다. 그는 “가장 후회되는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이다”라고 했다. 벗어날 수 없는 불행을 인정하고 미래를 바꾸어가는 것, 이것이 인생의 사는 지혜이기도 하다. 좌절과 포기에 익숙해진 요즘 시대, 그런 의미에서 '뭐든 해 봐요'는 인생의 슬럼프를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담담한 위로다.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한 발짝 내딛어보는 수밖에 없다." 한계라는 것은 편견이다,
[아침에 보는 K아트&책]'양팔 없는 화가' 석창우...'뭐든 해봐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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