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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애달프지 않은 삶은 없다…연극 '빵야'[강진아의 이 공연Pick]

등록 2023.02.25 0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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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연극 '빵야' 공연 사진.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제공) 2023.02.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연극 '빵야' 공연 사진.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제공) 2023.02.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빵야, 빵야…'

총성이 울렸다. 마침내 장총이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긴 여운을 남긴 그 소리엔 슬픔이 묻어났지만, 동시에 가장 밝은 빛이 비쳤다. 72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고단한 여정이 끝나는 마지막이었다.

연극 '빵야'의 주인공은 1945년 인천조병창 제3공장에서 만들어진 99식 소총 한 자루다. 한물간 40대 드라마 작가 나나는 소품창고에서 우연히 이 장총을 발견한다. 나나는 그의 이야기를 쓰며 재도약하겠다는 꿈을 꾸고,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내켜 하지 않던 '빵야'는 소원 하나를 조건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빵야'는 장총이 의인화된 주인공이다.
[서울=뉴시스]연극 '빵야' 공연 사진.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제공) 2023.02.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연극 '빵야' 공연 사진.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제공) 2023.02.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결코 짧지 않은 170분의 연극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게, 아니 오히려 짧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빵야를 거쳐간 이들의 짧지만 강렬한 삶이 이어진다. 만주로 가장 먼저 향하게 된 빵야는 일본 관동군 장교를 시작으로 중국 팔로군, 국방경비대, 서북청년단, 한국군 학도병, 북한군 의용대, 빨치산과 토벌부대 그리고 심마니에 사냥꾼까지 무려 열일곱 번의 손을 거친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등 폭풍 같은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다.

 그 삶을 엿보게 되면 한 명, 한 명 애달프지 않은 삶이 없다.(예외는 있다) '빵야'는 전쟁의 참상 속에 무수한 이들의 생과 사를 함께한다. 때로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쓰며 절규하고, 때로는 살아남으라며 방아쇠를 당기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런 슬픈 삶을 살아야 하는지 울부짖는 '빵야'의 모습엔 역사 속에 스러져간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기구한 여정 속에 빵야는 자신의 원천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음속에 꿈을 품게 된다. 방아쇠가 악기 음역을 조절하는 호른의 밸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누구도 해치지 않는 악기가 되는 꿈을 꾼다.
[서울=뉴시스]연극 '빵야' 공연 사진.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제공) 2023.02.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연극 '빵야' 공연 사진.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제공) 2023.02.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연극 '빵야' 공연 사진.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제공) 2023.02.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연극 '빵야' 공연 사진.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제공) 2023.02.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가슴 아픈 현대사의 비극을 담아낸 작품은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자칫 지루한 신파로 흐를 수 있지만, 그런 걱정을 무색하게 한다. 촘촘하게 쓰인 극은 진지하면서도 뭉클하게 다가오고, 유쾌함도 잃지 않는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영리하게 엮어내 몰입감을 높인다.

'빵야'의 이야기와 동시에 펼쳐지는 작가로서 나나의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상업자본에 맞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쓸 수 없는 상황과 금전적 어려움 등 현실적인 고민이 마치 작가 자신의 고백처럼 느껴진다. 제작사 대표와의 티키타카는 웃음을 유발하며 극을 무겁지 않게 끌어간다.

극 중에선 스타 주인공이 있어야 한다며 나나가 쓴 대본의 상품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공연의 끝에 슬그머니 이런 기대감도 생겼다. 나나의 고집대로 실제 드라마가 돼 이 작품을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다.

빵야 역은 하성광과 문태유, 나나 역은 이진희와 정운선이 맡았다. 오대석, 이상은, 김세환 등 멀티 역을 맡은 7명의 배우들의 힘도 크게 빛난다. 26일까지 공연.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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