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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혼자 있을 때보다 만날 때 강해진다[박현주 아트에세이 ㊱]
ㄱ은 혼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ㅏ도 그렇다. 둘이 만나면 ‘가’가 된다. 글자가 글자를 만나면 말이 된다. 말이 모이면 생각이 된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보고 싶다. 큰 말도 시작은 작은 자음과 모음이다. 한글은 혼자 있을 때보다 만날 때 강해진다. 화가 강익중의 그림도 그렇다. 그의 그림은 작다. 가로세로 3인치. 약 7.6㎝다. 손바닥만 한 정사각형이다. 시작은 생존이었다. 1984년 미국 뉴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10.09 00:01:00
"그래, 원없이 울어라"…김창옥 ‘위로의 흔적’[박현주 아트에세이 ㉞]
“강사님은 누구한테 위로받으세요?” 25년간 말로 사람을 위로해온 소통전문가 김창옥에게 어느 날 질문이 거꾸로 돌아왔다. 한 번이 아니었다. 밥을 먹고 나오다가, 기차를 타러 가다가 몇 달 동안 낯선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이 화두처럼 남았다. “제가 위로를 못 받은 것 같더라고요. 더 심각한 건 위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된 거예요.” 마음이 목말랐던 걸까. 그가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옻칠이었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09.20 00:01:00
오로라처럼 스미는 빛…김택상의 '물의 회화'[박현주 아트에세이 ㉜]
오로라가 내려앉은 것 같다. 분홍과 노랑, 푸른빛이 경계 없이 번진다. 화려한데 요란하지 않다. 신비로운 빛이 물안개처럼 마음에 스민다. 김택상의 그림이다. 그런데 이 빛은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다. 물에 담가 만들었다. 김택상은 물에 희석한 안료를 캔버스에 스며들게 한다. 색이 가라앉으면 말린다. 다시 물에 담근다. 또 기다린다. 물과 안료, 햇빛과 공기, 중력이 함께 그림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08.22 00:01:00
찐득찐득함을 건너간 그림…강요배 '소소, 반색'[박현주 아트에세이 ㉛]
그림을 그린다는 건 무엇일까. 강요배는 말했다. “자기가 모르는 자기를 끄집어내는 거예요.” 낚시와 같다고 했다. 낚싯줄을 드리우지만 무엇이 올라올지는 모른다. 기다리고, 바라보고, 마음에 오래 담아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언가 걸린다. 내가 그리려 했던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지만 나도 몰랐던 것. 마음 한 조각이다. 강요배의 그림에는 바람이 많다. 바람은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08.15 00:01:00
공기반 빛반…이대원이 그린 생의 찬미[박현주 아트에세이 ㉚]
서두르지 않는다. 점 하나를 찍고 또 하나를 찍는다. 빨강 옆에 파랑을 놓고, 노랑 사이로 초록을 놓는다. 점점점. 툭툭툭. 이대원의 과수원은 그렇게 조금씩 차오른다. 가까이에서 보면 추상이다. 몇 걸음 물러서면 나무가 되고 들판이 되고 과수원이 된다. 말년으로 갈수록 점은 길어진다. 짧은 색선들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진다. 나뭇잎 사이로 내리꽂히는 햇빛 같고, 바람에 흔들리는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08.08 00:01:00
"말이 없어 좋다"…침묵으로 산을 그린 화가, 유영국 [박현주 아트에세이 ㉙]
"왜 추상을 합니까?" 유영국은 말했다. "말이 없어 좋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림 앞에 서면 무언가를 읽으려 한다. 무엇을 그렸는지, 무슨 뜻인지,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그림을 말로 바꾸려 한다. 유영국은 말 대신 색을 놓았다. 선을 놓았다. 삼각형 하나를 놓았다. 산이었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08.01 00:01:00
사랑받고 싶은 우리 자화상…김원근의 조각 [박현주 아트에세이 ㉘]
험상궂은 얼굴이다. 굵은 눈썹. 날카로운 눈빛. 꽃무늬 셔츠에 굵은 금목걸이. 처음엔 조폭 같다고 했다. 흉물스럽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오래 바라보면 표정이 달라진다. 위협하는 얼굴이 아니다. 어딘가 쓸쓸하고, 조금은 무심하고, 오래 기다린 사람 같다. 김원근의 조각은 첫인상과 끝인상이 다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거칠음은 사라지고, 사람만 남는다. 그의 조각은 성자가 아니라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07.11 00:01:00
환각을 그리는 사람…화가 이근민 [박현주 아트에세이 ㉗]
우리는 병을 고치려 한다. 이름을 붙이고, 진단하고,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모든 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처는 몸보다 마음에 오래 남고, 어떤 기억은 눈을 감아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 화가 이근민은 환각을 보았다. 피와 살, 장기와 근육, 형태를 잃은 몸들. 세상은 그것을 병이라 불렀다. 그는 그것을 그림으로 옮겼다. 환각은 숨겨야 할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07.04 00:01:00
깨달음은 앉아 있는가, 걸어가는가 [박현주 아트에세이 ㉖]
그는 생각을 마친 사람처럼 걸어간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어메이징 타일랜드'에서 만난 수코타이 시대의 '걷는 부처'다. 오른발을 살짝 들어 올린 자세는 멈춤과 이동 사이, 그 찰나의 시간을 붙잡고 있다. 옷자락은 바람을 머금은 듯 몸을 따라 흐른다. 청동으로 만들었는데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지금 막 어디론가 향해 가는 사람 같다. 우리는 부처를 생각하는 존재로 기억한다. 국립중앙박물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06.27 00:01:00
호크니는 왜 수영장을 그렸을까 [박현주 아트에세이 ㉕]
1964년, 영국 청년 데이비드 호크니는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비와 안개, 회색 하늘에 익숙했던 그에게 캘리포니아의 햇빛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하늘은 파랬고, 야자수는 높았으며, 수영장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평생 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다. 수영장은 사각형이다. 집도 사각형이다. 야자수도 가만히 서 있다. 그런데 물만 움직인다. 물은 형태가 없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06.20 00:01:00
색은 멈추지 않는다…다시 열린 이두식의 '축제' [박현주 아트에세이 ㉔]
죽음 이후에도, 색은 멈추지 않는다. 붉은색이 먼저 터진다. 그 위로 초록이 얹히고, 노랑이 번진다. 검은 선들이 지나가며 화면을 붙잡는다. 형태는 없다. 그런데 멈추지 않는다. 쏟아진다. 이두식의 그림은 늘 그랬다. 무언가 끝난 자리 같고, 막 시작된 장면 같기도 한 곳. 그 정리되지 않은 생명력, 그래서 축제다. 오방색은 한 번 터지고 나면 캔버스 안에 갇히지 않는다. 보는 순간마다 다시 흔들리고,
박현주 미술전문기자2026.04.18 0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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