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반 빛반…이대원이 그린 생의 찬미[박현주 아트에세이 ㉚]
등록 2026.08.08 00:01:00수정 2026.08.08 00:06:24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 선보인 1979년 작 이대원, '농원'. 150 × 230cm, 개인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서두르지 않는다.
점 하나를 찍고 또 하나를 찍는다.
빨강 옆에 파랑을 놓고, 노랑 사이로 초록을 놓는다.
점점점.
툭툭툭.
칙칙칙.
이대원의 화면은 그렇게 조금씩 차오른다.
가까이에서 보면 추상이다.
몇 걸음 물러서면 나무가 되고 들판이 되고 과수원이 된다.
말년으로 갈수록 점은 길어진다.
짧은 색선들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진다.
나뭇잎 사이로 내리꽂히는 햇빛 같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같다.
풍경을 묘사하던 붓질이 어느 순간 자연의 리듬이 된다.

이대원, '농원(秋)', 1994, 캔버스에 유화 물감, 111 × 161cm, 한솔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로 그의 화면은 밝다.
꽃은 만개하고 나무는 무성하다.
색은 서로 부딪치면서도 어둠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오랫동안 ‘행복한 풍경’으로 읽혔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는 파주의 농원에서 같은 나무를 수십 년 그렸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었다.

이대원, 〈사과나무〉, 2000, 캔버스에 유화 물감, 200 × 500cm, 서울미술관 *재판매 및 DB 금지
그에게 자연은 익숙해질수록 시시해지는 대상이 아니었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세계였다.
이대원은 파주의 자연이 계절과 시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보였다고 회고했다.
아무리 그려도 나무의 모습에는 끝이 없다고 했다.
반복해서 그린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바라본 것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대원 회고전에 선보인 도리화. 가로 7미터의 화면에 강렬한 색채와 굵고 자유로운 붓질로 꽃이 만개한 과수를 화면 가득 펼친 이대원 말년의 대작이다. 2026.08.0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05/NISI20260805_0021388773_web.jpg?rnd=20260805111156)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대원 회고전에 선보인 도리화. 가로 7미터의 화면에 강렬한 색채와 굵고 자유로운 붓질로 꽃이 만개한 과수를 화면 가득 펼친 이대원 말년의 대작이다. 2026.08.05. [email protected]
말년의 대작 '도리화'는 그 오랜 바라봄이 도달한 화면처럼 보인다.
꽃이 만개한 과수는 굵고 자유로운 색선으로 화면 가득 펼쳐진다.
형태는 느슨해졌고 붓질은 거침없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그림은 오히려 더 자유롭고 찬란해졌다.
그림은 늙지 않는다.
대개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무언가를 하나씩 잃는다고 생각한다.
눈이 흐려지고 몸이 느려지고 세계에 대한 놀라움도 조금씩 무뎌진다고.
이대원의 그림은 반대다.
오래 바라볼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인다.
같은 나무에서 다른 색을 발견하고, 이미 수없이 그린 꽃에서 또 다른 표정을 찾아낸다.
나이 든다는 것은 세계의 색을 잃는 일이 아니라,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색을 발견하는 일일 수도 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이대원 회고전이 열린다. 작품은 이대원의 1995년 작 농원(한솔문화재단 소장품)2026.08.0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05/NISI20260805_0021388780_web.jpg?rnd=20260805111156)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이대원 회고전이 열린다. 작품은 이대원의 1995년 작 농원(한솔문화재단 소장품)2026.08.05. [email protected]
그래서 생전 ‘행복한 화가’라는 오래된 수식어도 달리 읽힌다.
행복은 좋은 조건이나 근심 없는 삶의 다른 이름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세계를 오래 바라보고도
여전히 놀라워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어제 본 나무를 오늘 다시 바라보는 일.
수십 년 본 과수원에서 또 붓을 드는 일.
익숙한 세계에서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일.
그가 평생 그린 것은 어쩌면 과수원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빛과 바람.
흐르는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만물.
살아 있다는 감각.
이대원의 화면이 그토록 찬란한 이유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이대원의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시 전경. 2026.08.0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05/NISI20260805_0021389089_web.jpg?rnd=20260805135158)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이대원의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시 전경. 2026.08.05.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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