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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인터뷰]송재정 "우리나라 제작진, 참 훌륭"···알함브라 작가

등록 2019.01.16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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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송재정

극작가 송재정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증강현실(AR)에 게임을 접목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tvN 주말극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통해서다. ‘도대체 어떤 작가일까’라는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독특한 스토리만큼 성격도 특이하지 않을까 짐작했는데 아담한 체구에 단아한 외모, 수줍은 미소가 시선을 끌었다.

“주위에서 ‘소재를 어디서 찾았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면서 “스토리가 나온 과정을 말하면 정말 허접하다”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동안 타임슬립을 많이 다뤄 소재를 찾는 데 방황했다. 당시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 열풍이 일어 여의도 광장에서 직접 다운받아 해보고 눈이 번쩍 띄었다. 원래 게임을 좋아했지만, 엄청난 자본을 들이지 않는 한 현실 구현이 어려워 소재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포켓몬고처럼 일상에서 아이템만 CG로 처리하면 가능하겠다 싶었다.”

 송 작가는 2016년 ‘더블유’(W) 종방 후 ‘인현왕후의 남자’(2012),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2013)을 잇는 타임슬립 3부작을 기획했다. 미래에서 현재로 온 남자 ‘유진우’가 호텔에서 낯선 자의 총을 맞고 시작되는 스토리 라인도 정해져 있었다. ‘포켓몬고’를 접한 뒤 타임슬립 소재를 과감히 포기했다. ‘유진우’ 캐릭터는 그대로 두고, AR과 게임만 결합했다.
현빈(왼쪽), 박신혜

현빈(왼쪽), 박신혜

‘알함브라’는 투자회사 대표인 ‘유진우’(현빈)가 비즈니스차 스페인 그라나다로 갔다가 전직 기타리스트 ‘정희주’(박신혜)가 운영하는 싸구려 호스텔에 묵으며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것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 포르투갈로 여행을 갔을 때, 40도 무더위에 그라나다에 갔다가 싸우고 합류한 작가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때 ‘삼류 기타리스트가 알함브라 궁전에 갔다가 일사병에 걸리고 가이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배우 현빈(37)과 박신혜(29)를 만나 빛을 발했다. 처음부터 ‘진우’ 역으로 현빈을 염두에 둔 건 아니다. 하지만 재벌에 액션, 멜로까지 소화할 연기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현빈 밖에 없었단다. “기대 이상으로 소화해줘 감동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반면, 박신혜는 현빈보다 비중이 작고 캐릭터 성격도 능동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희주’와 ‘엠마’ 1인2역을 맡아 다채로운 매력을 뽐냈다. “내 작품의 여배우 비중이 작은 건 장르적 특성”이라면서 “6~8회에서 보여준 박신혜씨의 깊은 멜로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모습이다. 15~16회에서 ‘엠마’의 역할을 기대해 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르물에 멜로를 녹이기가 쉽지 않았다며 “원래 ‘진우’는 더 피폐하고 시니컬했다. 처음에 ‘희주’는 영화 ‘레옹’(감독 뤽 베송·1995) 속 마틸다와 같은 역할로 설정했다. 진우가 모든 걸 잃은 피폐한 상태에서 만난 희주는 구원자 같은 역할이었다”고 귀띔했다. “우정과 사랑을 넘나드는 관계를 생각했는데 현빈, 박신혜씨의 미모가 너무 아까웠다. 스토리 구조를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멜로를 넣으려니까 힘들었다. 시청자들이 멜로가 너무 적다고 불만을 가지는데, 처음보다는 많이 늘어난 것”이라고 전했다.
[뉴시스 인터뷰]송재정 "우리나라 제작진, 참 훌륭"···알함브라 작가

‘남자 주인공을 너무 굴린다’, ‘멜로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 같다’, ‘피폐해지는 걸 즐기는 변태 같다’, ‘무규칙의 세계관이다’ 따위의 비난도 없지 않았다. 게임적 재미, ‘진우’와 ‘형석’(박훈)의 애증 관계, 희주와 사랑, 이 세 축에서 중심을 잃지 않았다. 그 결과 ‘알함브라’는 종방 2회를 앞두고 시청률 10%(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넘기며 뒷심을 발휘 중이다.

‘진우’의 시선에서 직접 경험하듯 게임을 보여주는 안길호 PD의 감감적인 연출도 한몫 했다. 자신과 “머릿속에 똑같은 그림을 그린 안 PD 덕분에 대본보다 퀄리티 높은 그림이 나왔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과도한 간접광고(PPL)는 시청자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토레타 음료, 카누 커피, 스와로브스키 귀걸이, 마몽드 립스틱 등이다.

“PPL은 할 말이 없다. 13회에서 PPL 홍수가 났을 때 기사에 댓글이 많이 달렸더라. ‘이 커피 정말 맛있어!’라는 식상한 멘트는 쓰기 싫었다. 작가팀이 PPL을 게임 아이템으로 녹이자고 기획한 뒤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더 튀더라. 그래도 나름대로 새로운 방향의 PPL을 제시했고, 제작비와 잘 타협했다고 생각한다. 광고회사에서 성공적인 PPL 사례로 꼽는다고 하더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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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작가는 독특한 소재와 예상치 못한 전개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처음 ‘인현왕후’ 극본을 썼을 때는 “판타지의 기본도 모른다”고 구박을 받기 일쑤였다. 정통 드라마 작가와는 거리가 멀다. 한 번도 드라마 작법을 배워 본 적이 없고, 처음 작가로 발을 들인 것도 드라마가 아닌 시트콤이다. ‘순풍산부인과’(1998~2000),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 ‘똑바로 살아라’(2003~2003),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등 ‘시트콤 대가’ 김병욱 PD와 함께 일한 경험이 도움이 됐다.

시트콤은 드라마와 달리 캐릭터는 계속 이어지지만, 20~30분 동안 짧은 에피소드가 펼쳐지고 매회 완결되는 특징이 있다. 송 작가는 이 습관 때문에 16부작 드라마를 쓰면 “한 회 한 회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기분으로 16개의 엔딩을 만들고 이어 붙인다”며 “미니시리즈 보다 시즌물이 더 맞는 같다”고 털어놓았다.

송 작가는 학창시절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고 돌아봤다. 교실 뒤편에 조용히 앉아서 공부는 안 하고 “만화책 읽고 게임하는 걸 좋아했다”며 추억에 젖었다. 소설 등 스토리텔링이 있는 책보다 인물평전, 인문서, 잡지 등을 즐겨 본다고 귀띔했다. 자신의 작품은 ‘아이언맨’, ‘베트맨’, ‘스파이더맨’처럼 “영웅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짚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쓸 줄은 몰랐다. 호기심을 쫓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 증강현실과 게임을 소재로 삼는게 겁 났는데, ‘알함브라’를 통해 ‘우리나라 제작진이 이렇게 훌륭하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시도만 하고 버리는 건 아깝지 않느냐. 이제 진짜 제대로 해보고 싶다. 한 번 시작하면 질릴 때까지 하는 성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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