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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아름다운 발레리나 김지영,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등록 2019.06.25 1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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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소속 마지막 무대 ‘지젤’

ⓒ국립발레단·BAKi

ⓒ국립발레단·BAKi

【서울=뉴시스】 김민지 칼럼니스트 =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간다’라는 말이 있다. 예술의전당에 모인 관객들은 흐르는 물을 멈추고 싶었지만 사이사이로 흐르는 물은 관객의 눈물이 돼 객석을 적셨다.

국립발레단 간판 수석무용수 김지영(41). 1602석을 가득 채운 관객은 영원한 프리마 발레리나 김지영의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다가 커튼콜 때 한마음이 돼 그녀에게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23일 오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그야말로 발레 축제였다. 일찌감치 매진된 ‘제9회 대한민국발레축제’의 참가작 국립발레단 제179회 정기공연 ‘지젤’은 22년 동안 한국 발레계의 영원한 프리마 발레리나 김지영이 국립발레단 소속의 무용수로 갖는 마지막 공연이다.
 
김지영은 1996년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한 후 그 해 ‘호두까기인형’의 눈송이들의 춤, 꽃의 왈츠 군무로 국립발레단과의 프로무용수로서 첫 인연을 맺어 1997년 최연소(당시 18세)로 입단했다. 단 2개월 만에 수석무용수 자리를 꿰찼다.

이후 네덜란드국립발레단으로 넘어가 수석무용수로 활약했으며 러시아, 이탈리아 등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는 등 한국 예술인의 긍지를 드높인 자랑스러운 발레리나다. 2009년 국립발레단에 재입단, 이날까지 국립발레단의 간판 발레리나로서 22년 동안 한국 발레의 대중화를 이끈 주인공이다.

그녀의 퇴단 작품 ‘지젤’은 낭만발레의 대표작이다. 독일 라인강 유역의 농촌을 배경으로 시골처녀 ‘지젤’이 평범한 시골 청년으로 가정한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알브레히트로부터 사랑의 배신을 당해 충격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죽은 후에도 사랑을 위해 헌신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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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서곡이 시작되자 객석은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모두가 숨죽여 이 공연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김지영이 첫 등장으로 지젤의 집 문을 열 때 큰 박수로 관객은 그녀를 맞이했다.

1막의 첫 등장의 설렘과 함께 잠시 보이던 긴장된 표정은 알브레히트 역의 이재우를 만나 아주 안정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마임과 연기로 물 흐르듯 빠르게 지나갔다. 특히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첫 만남은 그녀의 나이를 잊을 정도로, 청순하면서도 순박한 마을 처녀 지젤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 해냈다. 그리고 김지영이 가진 완벽한 음악성과 함께 절제미를 통한 깔끔한 동작들은 명불허전이 따로 없다. 깊은 연륜이 묻어나는 ‘매드 신’을 끝으로 아쉽지만 1막은 끝이 났다.

인터미션 때 관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로비 기둥에 래핑돼 있는 김지영의 과거 공연 사진들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에 대한 추억을 나누며 2막의 시작을 설렘과 마지막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으로 기다렸다.

마침내 2막이 시작됐다. 영혼이 된 지젤은 그 어떤 순간보다도 차가웠고 공기처럼 가벼웠다. 특히 알브레히트와 처음 만나 가진 눈물의 파드되(2인무)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은 영혼 그 자체였다. 2막의 하이라이트인 지젤과 알브레히트 아다지오에서는 김지영 특유의 등부터 뻗어 나오는  폴 드 브라(Port de Bras·팔의 움직임)는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고 음악과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아라베스크(Arabesque) 라인 역시 완벽했다.

동이 트고, 지젤이 다시 그녀의 무덤가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오자 객석은 다시 숨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해졌다.

이내 커튼콜이 시작됐고 혼자 남은 김지영의 뒤 스크린으로 그녀 관련 영상이 나왔다. 영상을 보고 눈물을 터뜨린 김지영에게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감독을 시작으로 그녀의 가족과 같은 동료 무용수, 스태프들이 꽃 한 송이씩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국립발레단이 건네는 마지막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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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용이 지휘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라 바야데르’ 3막 ‘망령들의 왕국’ 쉐이즈 음악에 맞춰 멋진 예술가에 대한 동경과 찬사의 뜻이었다. 김지영은 울다가 이내 눈물을 그치고 야광 봉을 흔드는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답례로 레베랑스(reverence·인사)로 마무리했다.

김지영의 마지막 시즌 공연이었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마타 하리’ 그리고 ‘지젤’까지, 고전과 현대 작품을 넘나드는 발레리나로 그 위대함은 한국 발레계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아우라가 넘치는 발레리나로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공기가 달라질 정도로 무대를 장악한 발레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22년 동안 프로 무대에서 다양한 역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긴 발레리나 김지영에게 우리는 느끼지 못할 공허함이 찾아올 것이다.

관객 역시 그녀의 부재에 공허함을 느낄 것이며 그녀는 영원히 그리움으로 남을 무용수로, 또 감사한 예술가로 우리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김지영의 인생 2막은 7월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 공연되는 ‘SCM 발레 갈라 시리즈 1 – 발레 오브 서머 나이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주옥같은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아름다운 발레리나 김지영, 당신의 춤을 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울콘서트매니지먼트 홍보마케팅팀장. 1997년 ‘노트르담의 꼽추’ 주역 데뷔 무대부터 퇴단작인 ‘지젤’ 공연까지 22년 동안 김지영의 국내 공연을 모두 관람한 발레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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