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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그너그룹 설립자 프리고진 푸틴에 맞설 수 있다

등록 2023.01.27 11:13:06수정 2023.01.27 11: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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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언론인 NYT 기고문에서 주장

'영웅, 애국자' 칭송 받으며

독자적 정치 기반 확보해

푸틴 측근 서슴없이 공격

[서울=뉴시스] 러시아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가운데)이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요충지 바흐무트 인근 도시 솔레다르의 소금 광산으로 보이는 곳에서 용병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이날 오후 늦게 솔레다르를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사진=텔레그램 캡처) 2023.01.11.

[서울=뉴시스] 러시아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가운데)이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요충지 바흐무트 인근 도시 솔레다르의 소금 광산으로 보이는 곳에서 용병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이날 오후 늦게 솔레다르를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사진=텔레그램 캡처) 2023.01.11.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용병 단체 와그너그룹 창설자 예프게니 프리고진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권력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하일 지가르라는 러시아 언론인이 쓴 “푸틴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다.

프리고진은 ‘올해의 악당’에 걸맞는 사람일지 모른다. 푸틴은 프리고진을 언제든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프리고진이 푸틴을 승계할 사람이라는 견해가 러시아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다.

푸틴은 전쟁 시작 전부터 권력 경쟁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전쟁 지도자가 부각되지 않도록 막는데 집중했다. 알렉산데르 라핀 장군이 온라인에서 영웅시되자 즉시 해임했고 온라인 여론 조작 기관을 가진 프리고진이 라핀을 집중 공격했다.

푸틴은 이때부터 프리고진을 활용해 러시아 장군들을 견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프리고진을 언제든 부려 먹을 수 있는 자기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최근 몇 년 동안 크게 주목할 경력을 쌓아왔다. 푸틴의 요리사로 러시아 학교급식 전체를 장악했던 그가 여론 조작 회사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nternet Research Agency)를 설립해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 이어 용병 단체 와그너그룹을 설립해 아프리카, 시리아에 진출한 데 이어 지금은 우크라이나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프리고진의 성장은 푸틴이 부여한 까다로운 임무를 수행하면서 가능했다. 그러던 프리고진이 올 들어 푸틴의 다른 측근 인사들 모두를 상대로 공격에 나섰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위원회 서기, 러시아 국영 방위업체 로스텍 회장 세르게이 체메조프, 푸틴의 친구인 유리 코발축 등이 그들이다. 프리고진은 이들 누구보다 러시아에서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이 됐다. 그의 정치적 인기가 높아지면서 러시아 고위 당국자와 기업인 누구도 그를 얕보지 못하게 됐다.

프리고진의 부상은 지난 여름 러시아 전국의 교도소를 순방하면서 죄수들을 와그너그룹 용병으로 채용하는 과정에서 본격화됐다. 그는 연방교정국, 연방보안국(FSB), 내무부, 검찰총장의 역할을 한꺼번에 해치웠다. 이들 모두 푸틴에게 별도로 보고하는 막강한 권력 기관들이지만 감히 푸틴을 거스를 순 없는 조직들이다. 그런데 프리고진이 이들을 한 손에 휘어 잡고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며 죄수들을 석방시켰다.

프리고진은 국방부와 군 장성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했다. 러시아 정계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다. 푸틴의 심복들은 서로 공개적으로 비판한 적이 거의 없었으나 지난해 전쟁에 사로잡힌 푸틴이 전쟁 현장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면서 다른 측근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프리고진은 자신을 가장 뛰어난 전사로 포장했다. 국방부의 지시를 받지 않으며 군 명령 계통에서 벗어나 있는 그는 마음대로 목표, 임무를 정하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푸틴은 프리고진의 그런 행동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장성들을 마구 비난하도록 내버려 뒀다.

지난해 가을 한 죄수 출신 용병이 우크라이나에 투항했다가 와그너그룹에 붙잡혀 처형된 사건이 있었다. 해머로 때려 죽이는 장면이 공개되자 프리고진 팬이 생겨났다. 모스크바 상점에서 “와그너 해머”와 와그너그룹 스티커가 기념품으로 팔렸다. 처형을 옹호한 프리고진은 영웅 반열에 올랐다.

급진적인 정치인, 경제인들이 프리고진 편에 서기 시작했다. 과거 푸틴에게 직보하던 람잔 카디로프 체첸 지도자가 지금은 프리고진에 보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극우 차르그라드 TV 소유자 콘스탄틴 말로페르, 러시아 파시즘의 이델올로그 알렉산드르 두긴이 프리고진을 찬양했다.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 러시아 점령지 지도자들도 프리고진을 지지한다. 모두들 푸틴이 가장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프리고진은 국영 선전 매체에서 공개적으로 파시즘 견해를 밝히는 언론인, 논평가들 사이에서 “애국자”로 칭송됐다.

프리고진은 이미 독자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다. 푸틴의 오랜 동지인 알렉산데르 베글로프 상트페테로부르크 주지사를 향해 “베글로프 같은 사람은 조만간 우리 사회에서 벌레처럼 뭉개질 것”이라고 공격했다.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의 많은 기업가들과 당국자들이 프리고진에 대해 걱정하는 분위기가 커졌다. 한 기업인은 “프리고진의 해머는 우리를 향한 메시지”라고 했다. 지난해 몇 달 동안 푸틴이 예전에 했듯이 프리고진을 자기 자리에 앉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퍼졌다.

지난 10일 프리고진은 와그너 용병이 솔레다르를 함락했다고 발표했다. 와그너 그룹이 가장 유능한 군대라는 강력한 선전이었다. 일부 고위 당국자들이 반 농담처럼 너무 늦기 전에 프리고진 편에 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국방부가 솔레다르 함락이 러시아군의 성과라고 발표하자 프리고진이 즉각 반박했고 이를 지지하는 수많은 보도가 나왔다. “프리고진이야말로 진정한 러시아 정치인이다. 러시아 국민들이 듣길 원하는 소식을 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금 쯤 푸틴은 프리고진의 인기가 너무 높아졌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지휘를 라핀 장군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에게 맡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프리고진을 견제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많은 러시아 국민들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군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푸틴은 게라시모프를 다시 총사령관으로 임명함으로써 앞으로의 모든 패배의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됐다. 프리고진은 게라시모프 임명에 대해 침묵했지만 러시아군의 패배에 책임질 일은 없다.

어쩌면 프리고진이 조만간 푸틴에 맞서고 푸틴은 자신의 요리사였던 사람에게 맞서지 못할 수도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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