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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일하고 싶어요"…경계선 지능 직장인의 한숨

등록 2024.04.29 08:00:00수정 2024.04.29 08: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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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취업해도 '알아서 딱' 벽 직면

취업 후 적응 어려운데…"멘토링 있어야"

'지속적 관리·교육' 맞춤형 지원법 필요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김영우(28) 바리스타가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 휘카페 1호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커피를 제조하고 있다. 2024.04.28. jini@newsis.com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김영우(28) 바리스타가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 휘카페 1호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커피를 제조하고 있다. 2024.04.2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소헌 수습 기자 = "직장에서 '알아서 딱 센스 있게' 일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지난 23일 서울 중구 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밈센터)에서 만난 경계선 지능인 석민정(30)씨는 대학교 졸업 후 6번이나 직장을 옮긴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IQ)가 지적장애인 수준(70점 이하)과 평균(85점 이상)의 경계에 있는 이들을 뜻한다.

남들은 '알아서 딱' 이해하는 직장 상사의 지시를 석씨는 번번이 이해하지 못했다. 지시와 다른 엉뚱한 결과물을 가져온 그를 향해 상사들은 "왜 자꾸 네 방식대로 하느냐"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쌓여가는 업무 스트레스로 퇴사와 입사를 반복한 것도 수차례. 청소년 센터, 정보 회사, 요양 병원 등을 전전하던 그가 다시 적성에 맞는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도움을 청한 곳이 바로 밈센터다.

밈센터는 경계선 지능인을 발굴해 사회 적응과 진로 탐색, 취업 교육 등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2022년 4월부터 사단법인 'DTS행복들고나'가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 단 한 곳뿐이다.

뉴시스는 지난 22~23일 밈센터와 서울 동대문구 휘카페에서 경계선 지능인 4명을 만났다. 이들은 상황 판단에 따른 유동적인 대처나,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 취직도, 취직 후 근속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10년 전 카페 알바가 마지막…"상처 입고 홀로서기 포기도 많아"

[서울=뉴시스] 이소헌 수습기자 = 지난 2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밈센터)에서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이 '2024 일 역량 강화 훈련 & 일 경험' 교육을 받고 있다. 2024.04.29. honey@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소헌 수습기자 = 지난 2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밈센터)에서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이 '2024 일 역량 강화 훈련 & 일 경험' 교육을 받고 있다. 2024.04.29. [email protected]


밈센터에서 만난 또 다른 경계선 지능인 김진영(32)씨도 2014년 카페에서 일할 때 손님들의 주문을 알아서 잘 이해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시럽을 많이 달라는 부탁을 들으면 그 '많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돼서 머리를 싸맸다고 한다.

간신히 얻은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를 그렇게 1년 반 만에 잃게 됐다. 그 후 10여년간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김씨는 "예전에 여의도 한 카페에 이력서를 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어서 이제는 이력서를 내는 것 자체가 두렵다"며 계속되는 실패에 취업에 도전할 용기를 조금씩 잃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사정은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 휘카페 1호점에서 만난 경계선 지능인 바리스타들도 마찬가지였다. 휘카페는 '느리지만 괜찮아'라는 모토로 경계선 지능인을 직원으로 고용해 운영하는 카페다.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청년숲협동조합, 서울시립대 캠퍼스타운사업단이 공동으로 경영하고 있다.

휘카페 1호점 바리스타인 경계선 지능인 김영우(28)씨는 손님 응대가 가장 어렵다며 "행동이 느려서 '아직도 멀었냐'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그럴 때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서울시립대 캠퍼스 내 휘카페 2호점에서 일하는 경계선 지능인 이영진(30)씨도 "제가 다른 전문 분야의 면접을 보면 거의 90% 확률로 떨어질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다른 이들보다 이해력이 떨어지고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슈퍼마켓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다.

휘카페를 운영하는 권오진 청년숲협동조합 이사는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이 일반 카페에 취직하면 길어야 한 달, 짧으면 2~3일 만에 나오기도 하는데 적응을 못 하기도 하고 나가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이들이 '동굴'로 들어가 사회로 다시 나오지 못해 진로를 찾지 못하고 부모가 하는 일을 돕는 정도에 그치거나 홀로서기를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미흡한 취업 후 관리·교육 체계…"취업 후 꾸준한 멘토링이 중요"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김영우(28) 바리스타가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 휘카페 1호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손님에게 커피를 건네고 있다. 2024.04.28. jini@newsis.com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김영우(28) 바리스타가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 휘카페 1호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손님에게 커피를 건네고 있다. 2024.04.28. [email protected]

문제는 어렵사리 취업한 경계선 지능인이 직장에 안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취업 후' 관리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권 이사는 "장애인도 아닌데 일반 청년들과의 경쟁이 뭐가 어렵냐고 하지만 고용주 입장에선 경계선 지능인을 쓸 이유가 없다"며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눈치 없다고 평가받는 이들을 일반 청년 대신 고용해 오래 근무시킬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이어 "단편적으로 정부나 기관 주도로 교육을 받거나 취직하는 경우는 많은데 들어간다고 해도 한 달 있다가 다 퇴사하면 그게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이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 내에서 이들을 계속 지켜보며 관리하고 교육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권 이사는 "휘카페는 청년들이 적응하고 변화할 때까지 계속 멘토링을 하는 체계가 있다"며 "이들이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다른 일반 기업들도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옆에서 알려줄 수 있는 교육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해 7월13일~8월15일 경계선지능 현장 전문가 1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계선 지능 자립 준비 청년이 자립 후 직장생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지원은 '사회성 훈련'(47.7%), '근무태도에 대한 지속적 관리'(22.7%)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국회서 잠자는 경계선 지능인 지원법…"맞춤형 고용·교육 지원을"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김영우(28) 바리스타가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 휘카페 1호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커피를 제조하고 있다. 2024.04.28. jini@newsis.com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김영우(28) 바리스타가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 휘카페 1호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커피를 제조하고 있다. 2024.04.28. [email protected]


경계선 지능인 특성에 맞춘 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전국 74개 지자체에서 경계선 지능인 관련 조례를 제정했지만 법은 미비하다. 지난해 4월 허영 의원 등 57인이 '경계선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여전히 계류 중이다.

이교봉 서울시 밈센터장은 "조례는 법을 뛰어넘을 수 없다 보니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법이 먼저 생겨야 종합적으로 집행이 되면서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이나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체계도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은 그들의 특성에 맞춰서 제정될 것이기 때문에 고용이나 교육 영역에서 욕구가 되게 높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어 "지적장애의 범주를 확대해 장애인 복지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가장 간단하지만 복지 자체보다는 고용 지원이나 교육 지원을 현재보다 더 잘 받도록 관련 법이 제정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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