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섭섭, 떠나는 여름 풍경 ③창녕 우포늪
등록 2026.08.26 06:00:00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는 계절의 분위기도 조금씩 변해 간다.
짙었던 녹음 사이로 새로운 빛깔이 스며든다. 들, 산, 물은 한여름과는 달라진 표정으로 다음 계절을 예고한다.
폭염의 고비를 넘긴 뒤라 여행의 발걸음도 한결 여유롭다. 천천히 걷고, 오래 바라보며 지나가는 계절을 즐기기 좋은 때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여름을 떠나보낼 수 있는 풍경들을 골라 봤다.

경북 창녕군 ‘우포늪’ 모습. (사진=뉴시스 DB)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기자 = 여름이 끝을 향한다고 모든 풍광이 빛깔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경남 창녕군 ‘우포늪’은 이 시기에 오히려 초록이 가장 짙어진다.
수면에는 마름, 생이가래 등 수생식물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물가에는 왕버들이 우거진다.
그 사이로 작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보랏빛 꽃이 피어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가시연꽃’이다.
수련과 한해살이풀로 잎과 열매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이름이 붙었다. 큰 잎은 지름이 2m에 이를 정도로 자라고, 늦여름이면 넓은 잎 사이로 자색 꽃을 피운다.
올해도 때를 맞췄다.
‘우포늪체험장’에서 7월 하순부터 가시연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9월까지 볼 수 있어 여름 끝자락 우포늪을 대표하는 풍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우포늪은 총면적 250만5000㎡로 국내 최대 규모의 자연 내륙습지다.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 대지면 등 4개 면에 걸쳐 있다.
식물 800여 종, 조류 209종, 어류 28종, 포유류 17종 등 수많은 생물이 서식해 ‘생태계의 보물창고’로 불린다.

지난해 7월10일 경남 창녕군 우포늪 인근 논에서 방사 3세대(유조) 따오기가 방사 2세대(부 개체) 따오기와 함께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창녕군) *재판매 및 DB 금지
1997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고 이듬해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록됐다. 1999년 습지보호지역, 2011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2025~2026 한국관광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창녕군은 2018년 제13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7개국 17개 도시와 함께 세계 최초 ‘람사르습지도시’ 인증을 받았다. 2024년에는 우포늪과 화왕산 일대를 핵심구역으로 하는 군 전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우포늪의 기원은 수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약 6000년 전 낙동강의 범람과 역류가 반복되면서 지금과 같은 습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시연꽃을 가까이 보고 싶다면 우포늪체험장으로 향한다. 우포늪 상류의 농지를 복원해 만든 수생식물단지다.
커다란 잎과 작은 꽃이 대비를 이루는 가시연꽃을 비롯해 노랑어리연꽃, 부들, 창포 등 다양한 수생식물을 만날 수 있다.
우포늪을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면 ‘우포늪 생명길’을 걷는다.
생태관에서 출발해 우포늪, 사지포, 목포 일대를 돌아오는 완주 코스는 8.4㎞로 약 3시간이 걸린다. 2.5㎞ 코스는 약 1시간이면 걸을 수 있다.

7월23일 경남 창녕군 ‘우포늪체험장’에서 만개한 가시연꽃. (사진= 창녕군) *재판매 및 DB 금지
길을 걷다 보면 가시연꽃 말고도 우포늪의 여름을 채우는 풍경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수면을 덮은 수생식물 사이로 따오기, 백로, 해오라기 등이 먹이를 찾느라 분주하다. 물가에서는 왕버들이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다.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이곳에서는 서두를 이유도, 필요도 없다.
수면을 살피다 새 한 마리가 내려앉으면 걸음을 멈춘다. 왕버들 아래를 지나다 바람이 불면 잠시 늪을 바라본다.
그래서 여름도 이곳에서는 더디게 떠나는 것일까.
한여름을 지나도 우포늪의 초록은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넓은 잎 사이로 보랏빛 가시연꽃이 피어나는 지금, 늪은 떠나가는 여름의 생명력을 마지막까지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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