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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니 일단 버틴다?…"제도가 임금체불 유인 키워"

등록 2026.10.04 13:00:00수정 2026.10.04 13:32:45

노동연구원, '한국 임금체불에 대한 제도적 원인' 논문

2024·2025년 체불액 2조원대…올 7월까지 1조814억

경기침체 때 오히려 체불 감소…"비경제적 사유 상당"

"대지급금·반의사불벌 결합해 '불법 노동비용 사회화'"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9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범부처 '임금체불 근절 대책' 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09.02.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9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범부처 '임금체불 근절 대책' 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09.0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임금체불액이 지난 2024년과 2025년 연속으로 2조원대를 기록하고 올해 상반기에도 1조원을 넘기는 등 체불 문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현행 제도가 오히려 임금체불 유인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체불이 발생하면 일부를 '대지급금'으로 노동자에게 먼저 지급한 뒤 사업주에게 회수하고 있다. 대지급금으로 피해를 먼저 구제한 뒤 합의가 이뤄질 경우 반의사불벌 규정에 따라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4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학술지 '노동정책연구' 9월호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박정우 중앙대학교 강사의 '한국의 비경제적 임금체불에 대한 제도적 원인: 임금보호체계의 국가 간 비교' 논문이 실렸다.

국내 임금체불 규모는 2년 연속 2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체불임금은 2조679억원으로, 2024년 2조448억원에 이어 2년 연속 2조원대를 기록했다. 올해도 7월까지 체불임금은 1조814억원, 피해 노동자는 12만8048명에 달했다.

체불 노동자에게 국가가 사업주 대신 먼저 지급하는 대지급금도 매년 수천억원 규모다. 지난해 지급액은 6845억1100만원이었고, 올해는 7월까지 6만2206명에게 3670억8900만원이 지급됐다.

1998년 제도 시행 이후 올해 7월까지 지급된 대지급금은 누적 8조6998억8900만원이다. 하지만 사업주에게서 회수한 금액은 2조5993억5700만원으로 회수율은 29.9%에 그쳤다. 현재 미회수금액도 4조2873억8500만원에 달한다.

"돈 없어 못 주는 체불만 아냐…'비경제적 체불'이 30% 수준"

논문은 이처럼 임금체불이 반복되는 원인을 단순히 사업주의 경영난이나 도산에서만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체불임금은 코로나19 시기인 2021~2022년 감소했다가 2023년 다시 늘었다. 임금체불이 경기 침체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임금체불 원인의 약 30%라는 적지 않은 비중이 사실관계·법 해석·감정 다툼 등 '비경제적 사유'로 나타난다"며 "노동감독관 설문조사에서도 순수한 경제적 원인은 31.5%에 불과하며 근로자 제재 수단으로서의 체불, 임금에 대한 후순위 인식, 악의적·상습적 체불 등이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연구자는 이 같은 비경제적 체불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한국의 임금보호체계를 지목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은 체불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사법적 책임을 묻기보다 발생 이후 행정기관의 조정과 생활보호제도를 통해 해결하는 '행정조정 중심형'에 가깝다는 것이다.

정부는 체불임금으로 인한 피해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대지급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사업주가 임금이나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 국가가 일정 범위의 체불액을 근로자에게 먼저 지급한 뒤 사업주에게 돌려받는 제도다.

논문은 이 같은 대지급금이 반의사 불벌죄와 결합하면서 체불 사건을 사법 판단 이전에 종결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앞에서 임금체불 근절 한국노총 전국캠페인 선포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09.08.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앞에서 임금체불 근절 한국노총 전국캠페인 선포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09.08. [email protected]



전체 임금체불 사건 중 간이대지급금이 지급된 비중은 2018년 28.5%에서 2022년 45.4%로 확대됐다. 대지급금 제도는 노동자의 생계를 신속하게 보호한다는 순기능이 있지만, 임금체불이 원칙적으로 반의사 불벌죄이기 때문에 대지급금 지급 이후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지면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연구자는 "사후 처리 중심의 근로감독과 간이대지급금, 반의사불벌죄가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하면서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체불 비용 일부가 노동자와 국가·사회로 이전되는 '불법 노동비용의 사회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예방보다 신고사건 처리…日은 불시감독·美는 강한 제재

연구자는 우리나라 근로감독이 체불을 사전에 예방하기보다 이미 발생한 신고사건을 처리하는 데 치우쳐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반면 해외에서는 체불을 사전에 막거나 사후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일본은 노동기준감독서를 중심으로 정기·신고·재감독을 실시하고 사전 통보 없이 사업장을 감독하는 경우가 많다. 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노동심판 등 사법절차와도 연계한다.

독일은 집단 노사관계와 사회보험을 통해 체불 노동자가 재직 중에도 소득을 보전하면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조정 이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고용심판소로 넘기고, 미국 일부 주에서는 임금체불을 '임금절도(wage theft)'로 규정해 추가 손해배상과 형사처벌 등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연구자는 "우리나라도 체불이 발생한 뒤 대신 지급하고 합의하는 방식에서 사전예방 중심으로 임금보호체계의 무게를 옮길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근로감독관의 업무를 개별 사건 조정 중심에서 사업장 감독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임금체불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30인 미만 사업장을 중심으로 불시감독을 강화하고, 감독 결과를 정기적으로 공표"해야 한다고 했다.

사법적 해결 기능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연구자는 "조정과 판결의 중심을 행정에서 사법으로 전환하고, 노동심판소 또는 노동법원을 도입해 분쟁 해결의 신속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후 보호체계를 유지할 경우에는 노동자가 체불을 버틸 수 있도록 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자는 "가장 필수적인 것은 고용보험을 임금체불을 해결하는 중추적 제도로 위치시키는 것"이라며 "재직 중 발생한 비경제적 임금체불에도 고용보험이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고 사업주에 대한 환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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