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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박찬욱의 비장미는 어디갔나, 리메이크 영화 ‘올드보이’

등록 2014.01.16 23:12:08수정 2016.12.28 1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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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16일 개봉하는 스파이크 리(57) 감독의 ‘올드보이’(2013)는 세계적인 격찬을 받았던 박찬욱(51) 감독의 2003년 동명 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다. 아무래도 원작을 접한 한국관객들로서는 오리지널의 그림자를 지우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원작을 배제하더라도 결코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단 원작과 겹치지 않도록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연출하려는 의도는 쉽게 알 수 있다. 스파이크 리로서는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미 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등을 섭렵하며 마스터피스로 결판난 작품을 다시 만드는 일은 밑져야 본전이다. 게다가 동방소국 출신의 박찬욱은 한 참 후배 격이다. 박찬욱이 데뷔도 하기 전 이미 ‘정글피버’(1991) 등으로 칸영화제에 진출한 경력도 있다. 그러니 구스 반 산트(62)가 대선배 히치콕(1899~1980)에 대한 오마주로 ‘사이코’(1998)를 베껴 찍었듯이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말콤 X’(1992)로 정점을 찍은 후 솔직히 그의 활약상은 미지근한데, 인종차별에 대한 강렬한 분노를 승화시키는 것 외에는 감수성이 현저히 부족하지 않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문화 차를 고려하더라도 120분짜리 원작이 104분으로 줄어들며 비장미 넘치면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던 비극적 서사를 단순 범죄드라마로 격하시킨다. 러닝타임이 짧아졌다고 해서 긴박감이나 긴장감이 더해진 것도 아니다. 원작의 내레이션도 빠지고 등장인물의 심리나 행동에 대해 공감할 여지도 없이 엉기성기한 스토리를 밀어붙이는데, 긴밀함도 개연성도 더더욱 떨어진다. 각본 마크 프로토세비츠(53)의 실력부족도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뉴시스】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

 원작이 지닌 색채미학적 미장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정제되지 않은 나이브한 화면이나 스파이크 리의 장기인 ‘달리숏’(이동활차인 달리 위에 카메라를 싣고 움직이면서 촬영한 장면)을 이용한 어수선한 분위기도 그렇고 재해석이라기보다는 명작의 정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어설픈 독후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작과는 좀 다른 전개와 반전을 노렸는데 호소력이 떨어지니 실소가 나오는 부분도 많다.

 캐릭터와 구성도 자꾸 한국판과 비교하게 된다. 그리스비극의 주인공들처럼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뇌하고 슬퍼하던 인물들은 단순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평면적 캐릭터로 돌변했다. 미도(강혜정)에 대한 양가적 사랑에 몸부림치던 오대수 역(최민식)인 조 두셋(조시 브롤린)은 복수심만 그득한 살인 기계로 변모했고, 역시 누이(윤진서)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성으로 넘치며 고상한 품격을 지닌 이우진(유지태) 역의 에이드리언 프라이스(샬토 코플리)는 근친상간으로 얼룩진 집안 출신의 사이코패스처럼 그려졌다.

【서울=뉴시스】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

 차라리 최면술을 빌려온 박찬욱식 설정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미도 역의 마리(엘리자베스 올슨)의 역할도 심심하다. 강혜정의 울림 있는 목소리가 떠오르며 그가 얼마나 재능있는 배우인지를 재확인하게 될 뿐이다. 비감과 삶의 비애를 꿰뚫는 통찰력, 아이러니한 유머가 빛났던 걸작이 어떻게 이렇게 엉성해서 이해 불가한 축약본이 됐는지 통탄스럽다. 미적 향취가 그득했던 세트들이 미국식의 무미건조한 공간들로 대체된 것조차 속상하다.

 일본만화를 각색한 한국영화를 리메이크하면서 제작진이 생각하는 동양적 요소를 이것저것 버무려 넣은 것도 극동아시아인의 눈에는 미흡하다. 조 두셋은 차이나타운에서 납치돼 종이박스에 넣어 배달되는 덤플링 같은 미국식 중국만두와 컵라면 같은 인스턴트 컵누들을 먹으며 20년 동안 갇혀있게 된다. ‘드래곤’이 들어간 흔하디흔한 차이니즈 레스토랑 이름의 일부가 들어간 종이조각을 발견하고 자신이 먹었던 만두를 찾아 나서게 된다.

【서울=뉴시스】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

 차이나타운 좌판에서 조 두셋이 딸의 생일선물로 집어든 것도 삑삑 소리가 나는 아기보살 모형이다. 이 좌판에서는 일본식 고양이 장식물(마네키네코), 중국식 판다 인형 등 동양문화가 이것저것 뒤섞인 장난감들을 판다. 이것이 미국인이 생각하는 막연한 아시아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다.

 단역으로 아시아인들이 다수 출연하는데 에이드리언 프라이스를 보좌하는 이도 쿵후 같은 무술을 구사하는 동양여인네다. 폼 클레멘티에프(28)라는 이 낯선 프랑스 여배우는 캐나다 퀘벡 출신으로 러시아와 프랑스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유라시안이다. 극 중 이름은 드러나지 않지만, 대본상에는 ‘행복’이라는 한국식 명칭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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