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만화가 김보통 "'미생' '송곳' 중간지대 직장만화 그리고파"

웹툰 'DP'(사진=한겨레출판)
【서울=뉴시스】신진아 기자 = 취직하기 힘든 세상,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회사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계획에 없던 만화가가 된 작가가 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근 30년을 살다 뒤늦게 자신의 길을 찾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평범한 필명이 오히려 눈에 띄는 30대 만화가 ‘김보통’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13년 회사원 만화를 그려보라는 주위의 충고를 뿌리치고 스물 여섯 살 말기 암환자의 이야기를 그린 ‘아만자’로 데뷔했다. 암 투병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눈에 밟혀 꼭 그리고 싶었던 작품이다. 우울한 이야기를 누가 읽겠냐고 했는데 작가 말로는 실제로 읽은 사람이 많지 않단다.
하지만 일단 본 사람은 다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추천한다. 그 증거로 이 만화는 2014 ‘오늘의 우리만화상’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2015 부천만화대상 부천시민만화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의 ‘허핑턴포스트’에 연재 중이다.
두 번째 작품 ‘D.P-개의 날’은 한겨레신문과 만화플랫폼 레진코믹스에 동시 연재되고 있다. 연재 초기인 2월만 해도 일평균 조회수가 5000회 정도였으나 지난 8월에는 평균 약 6만회(최고 17만회)로 10배 이상 늘었다. 독자의 70%가 20~40대 남성으로 분석되는 이 만화는 탈영을 소재로 군대 내 인권문제를 다뤘다. 실제로 헌병대 내 군무이탈체포조(D.P)에서 복무했던 작가의 경험담을 살렸는데 "슬프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 “가슴을 후벼 판다” 등 범상치 않는 감상평이 나오고 있다.
마감에 한창 바쁜 김보통 작가를 최근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직장은 또 다른 군대”라고 말한 그는 5년 뒤 ‘미생’ ‘송곳’과는 결이 또 다른 직장 만화를 내놓을 계획이다. 벌써부터 그 만화가 한국사회를 뒤흔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지나친 걸까. 다음은 김보통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
- 편견이지만 만화가답지 않게 체격이 좋다. 관리하나?
“실용적인 이유로 한다. 앉아서 일하는 직업이라 몸이 무거워지면 허리가 아프다. 몸이 공장 아니냐. 공장을 원활하게 돌리기 위해서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한다. 먹는 것도 이왕이면 쓸데없는 걸 (몸속으로) 넣지 않으려 한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다. 회사 다닐 때는 엉망진창으로 살았는데, 올해 들어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 일반 기업에 다니다 만화가가 된 경우는 흔치 않다. 아버지의 암 투병이 진로 변경의 전환점이 됐나?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건 50대에 암으로 죽는다면 억울할 거 같더라. 그렇다고 진지한 성찰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 하에 관둔 것은 아니다. 회사는 애시당초 아버지가 권해서 다녔을 뿐 신입사원 연수 끝나자마자 관두고 싶었다. 다시 군대에 들어간 기분이랄까. 회사 다닐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한데,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김보통 작가가 직접 그린 작가 캐릭터 일러스트(사진=김보통 작가)
“아버지는 힘에 대한 갈망이 컸다. 본인이 도시빈민으로서 고등교육을 못 받고 평생 가난하게 사셨다. 늘 기자나 공무원, 대기업 사원 등 권력이나 돈 있는 직업을 가지길 바랐다. 중학교 때 그림을 꽤 열심히 그렸다. 예고에 가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가로막았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에 가고 회사에 입사한 뒤 ‘이제 내 멋대로 살겠다’고 했다가 맞은 적도 있다.”
(김 작가는 딱 한번 회사를 관두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단다.)
“투병 중에 아버지가 주위 환자들에게 아들 자랑을 했다. 무슨 회사에 다니고 몇 살인데 연봉이 얼마라며. 그 때는 본인이 죽어가는 마당에 병든 옆 사람에게 그렇게 자랑하고 싶나? 그게 그렇게 큰 의미인가? 아버지가 평생에 이룬 게 나인가? 속으로 생각했다.”
- 부자 사이가 어색했겠다.
“보통 7살까지만 친하지 않나?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8년 투병했는데 경과가 좋은 편이었다. 무덤덤하게 있다가 갑자기 악화돼 4, 5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마지막에 손 한번 제대로 못 잡고 말 한마디 못하고 보냈다. 내가 효자였으면 ‘아만자’를 안 그렸을 거다. 불효자니까 그렸지.”
(작가는 ‘아만자’ 연재를 종료하며 이 작품에 대해 “못난 아들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때늦은 반성문”이자 “불효자가 뒤늦게 올리는 아버지 전상서”라고 표현했다.)
- 아버지의 암 투병을 지켜보고 그걸 작품에 반영한 줄 알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작품 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작품을 그리기 위해 상상했다. 내가 아버지였다면? 그 과정에서 아버지께 참 잘못했구나, 진짜 외롭고 쓸쓸했겠구나, 반성을 많이 했다. 물론 암 투병기도 많이 읽었다.”
◇ ‘진짜 사나이’는 프로파간다
- 파스텔톤의 ‘아만자’와 회색톤의 ‘D.P'는 같은 작가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림체가 완전 딴판이다.

김보통의 웹툰 '아만자'가 책으로 출간됐다(사진=예담)
- 'D.P'는 실제 경험담이 많이 투영됐나?
"제 실제 경험과 다른 허구지만 실제 사례들이 있다. 인터넷에 군대 내 가혹행위를 치면 전부 검색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범죄자를 추적하는 형사만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만화에서 탈영은 핵심이 아니다. 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러간 평범한 청년들이 그곳에서 범죄자가 되었나, 그들은 진정 범죄자인가?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 민감한 소재라 독자 반응이 격렬할 것 같다.
“한쪽에서는 이게 말이 되냐, 이렇게 또라이 같은 애는 없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자신이 겪은 군대 내 고통을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대다수의 부대는 괜찮다. 그렇다고 극소수냐면 꼭 그렇지도 않다. 언론에 공개되는 게 극소수일 뿐이다. 구강성교 강요당해 탈영한 사병, 하도 두들겨 맞아서 민간조사원에게 얘기했다가 오히려 더 두들겨 맞고 탈영했다 죽은 사병 등 얼마나 끔찍한 일이 많이 벌어졌는지 2014년도 사건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다.”(그렇다. 윤일병 폭행 사망사건도 2014년의 일이다.)
-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선전용 광고?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군대서 힘든 것은 훈련 때문이 아니다. 훈련만 하면 좋지. 군대가 힘든 것은 밤이 있어서다. 훈련이 끝나고 나서 시작되는 부조리한 일과가 힘들다. ‘진짜 사나이’는 좋은 것만 보여준다. 실제 존재하는 고통은 도려내고 이상적인 것만 보여준다. 그래야 일반인들이 안심하고 자식을 군대 보내겠지. 오래 전에 다녀온 사람들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그러다보면 군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묻히게 된다.”
- 군대의 폭력적 문화가 우리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절감하나?
“물론. 사회가 군대다. 이등병으로 입대할 때만 해도 군대의 부조리에 문제의식을 가지지만 병장이 되면 본인이 혜택의 최정점에 서기 때문에 그 부조리한 구조가 바뀌지 않길 바란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군필과 미필을 다른 시선으로 대한다. 회사 들어가서 느낀 게 여기는 또 다른 군대고, 난 또 이등병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살아남아서 내 밥그릇 지키려면 책임 회피하고 상명하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이미 군대서 다 배웠다. 일반회사에서는 여직원을 결코 동급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군필이 아니니까.”
◇ “직장만화는 제 야심작 될 것”
- 회사원 만화를 아직 안 그렸는데?

김보통 작가의 '내 멋대로 고민상담'(사진=레진코믹스)
- '미생'과 '송곳' 그 중간쯤이란 어떤 의미인가?
"장그래가 회사란 체제를 긍정적으로 본다면 ‘송곳’은 시쳇말로 노측이다. 제가 그릴 주인공은 이도저도 아닌 그저 회식이 언제 끝날지 생각하면서 탬버린 치는 사람? 딱히 회사에 불만도 만족도 하지 않는 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 사람의 시선으로 회사를 떠나는 사람, 남는 사람, 그리고 조직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그려보고 싶다. 톱니바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소모되는지, 각자 인생을 걸고 웃고 울지만 위에서 보면 장기 말 중의 하나일 뿐이다. 여자는 존재하지 않거나 유리천정에 부딪혀 주변인이 되는 경우로 등장할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중후반 제가 입사할 당시 신입사원 500명 중 달랑 9명만 여자였다. 진짜 충격받았다. 제 생각에 최고의 취업 스펙은 남자라는 점이 아닌가 싶다.”
- 직장 다닐 때와 비교해 벌이는 어떤가?
“작년까지는 근근이 살았다. 운이 좋아 상을 받았지만 책도 별로 안 팔렸다. ‘아만자’는 해외에서 오히려 반응이 좋다. 일본에서 연재 중인데 조회수가 국내의 4,5배다. (미국에서는 호스피스협회가 교육용으로 쓰고 있다). ‘D.P’는 8월부터 조회수가 확 늘어서 레진코믹스 내부에서도 고무적인 분위기다. 덕분에 올해부터는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벌고 있다. 다만 일은 고되다. 고정 연재와 외주 일 등 매일 바쁘다."
- 앞서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더 좋나?
“육체적 피곤도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높다. ‘아만자’ 연재 당시 멋도 모르고 1주일에 2회 연재하는 바람에 죽을 뻔했다. 몸살을 1년 내내 달고 살면서 매일 아침 진통제, 근육이완제 등을 먹었다. 2,3시간 자고 이 미친 짓을 주말 휴일 공휴일 없이 하면서 살줄 몰랐다. 그런데도 이 일이 더 좋은 이유는 회사 다닐 때는 내가 그냥 수많은 일개미 중의 하나 같았지만 지금은 열심히 하면 재미있다고 반응이 오니까 내가 일하는 의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 ‘내 멋대로 고민상담’이 레진코믹스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인데, 질문이 6000개가 넘는다고.
“장난처럼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너무 고통스럽더라. 잠도 못 자겠고 숨도 못 쉬겠고 질문을 보는 것조차 싫었다. 지금까지 한 200개 정도 답을 달았는데 고맙다는 메일을 받고 내가 도움이 된다니 좀 편안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몰랐던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여자로서 고통, 동성애자로서 고통, 가정불화의 고통 등 그야말로 고통의 바다다. 그런 고통을 알게 돼 만화가로서 좋은 거 같다. (스누피 캐릭터로 유명한) ‘피너츠’처럼 한 40년 하고 싶다”
김보통 작가는 고민 상담을 연재하면서 알게 된 한 청각장애인과 ‘음악회’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휘자가 꿈인 청각장애인이 꿈을 포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해서 “꿈을 포기하고 현실로 만들자”고 답했기 때문. 현재 스폰서를 모집 중이라며 관심을 당부한 그는 이날도 마감에 늦었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말했다. '직장인이란 사소한 희망에서 시작해 거대한 절망으로 끝나는 존재'라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다수가 지향하는 안정된 길을 버리고 마음의 소리를 따른 그가 ‘보통’이란 필명을 쓴 것은 그의 선택이 ‘특이’한 게 아니라 ‘보통’인 세상을 꿈꾸는 의지의 발현이 아닐까.
김보통 작가에 대한 한 네티즌의 댓글을 옮겨본다. "보통이지만 보통이 아닌 사람, 비정상인 사회에서 정상을 이야기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로만 가득찬 사회가 되면 우리도 모두 행복한 보통들이 되어 살 수 있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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