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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글로벌 기업 '혁신'을 배워라] ⑩ 애플

등록 2016.01.15 06:00:00수정 2016.12.28 16: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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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상주 기자 = 기술혁신(innovation)이라는 말은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조지프 슘페터(1883 ~1950년)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였던 그는 기술혁신을 장기적인 경기변동의 주요한 변수로 파악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술혁신은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핵심변수로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증시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인 애플의 역사는 곧 'IT 혁신의 역사'였다. 애플은 경쟁업체에 기술이 밀릴 때마다 경영위기에 몰렸고, 매번 새로운 기술 개발을 통해 이를 돌파해냈다. 애플을 세계 최대기업으로 키워낸 원동력 역시 끊임없는 기술혁신이었다.

 애플의 모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있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이다. 컴퓨터 취미를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었던 이곳에서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났다. 리드대학 중퇴자였던 잡스와 버클리대학에 다니던 워즈니악은 이곳에서 만나 어울리면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1974년 두 사람은 컴퓨터를 만들어 팔기로 의기투합한다.

 1976년 4월 1일 잡스와 워즈니악은 자본을 대는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창업하게 된다. 그해 6월 세 사람은 첫 제품인 애플I을 만들어 대당 666.66달러에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반 판매는 순조롭지 못했다. 실망한 웨인은 회사를 떠나게 된다.

 웨인이 떠난 뒤 얼마 후 입소문을 타고 ‘애플1’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애플1은 키보드와 단말기를 갖춘 개인 컴퓨터의 기본 형식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카세트 레코더 등 주변기기까지 이용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장치였다. 애플의 첫 제품인 ‘애플1’은 10개월 동안 200여대가 팔려나가면서 두 사람에게 짭짤한 수익을 안겼다.

 탄력을 받은 두 사람은 1976년 8월 애플2 컴퓨터를 새롭게 내놓았다. 애플2의 인기는 선풍적이었다. 1978년에 7600대 팔리던 것이 1980년 10배인 7만8100대, 1982년엔 무려 30만대가 팔려 나갔다. 1980년 애플은 여세를 몰아 애플2의 본체를 줄이고 기능을 추가한 애플3를 출시했다.

 시장이 커지면 반드시 경쟁자가 뛰어들게 마련이다. 1981년 당시 세계 최대의 컴퓨터 업체였던 IBM이 ‘IBM PC’를 내놓았다. IBM PC는 애플과는 달리 PC 본체 및 주변기기,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설계, 생산하도록 한 공개형이었다.

 애플과 IBM의 한판 승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결과는 애플의 완패였다. 애플3는 오류가 잦고 발열도 심했을 뿐 아니라 가격도 지나치게 비쌌다. 1983년 부랴부랴 문제점을 개선한 ‘애플3 플러스’를 내놓았지만 시장의 신뢰는 도무지 회복되지 않았다.

 위기였다. 잡스는 마케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잡스는 다짜고짜 펩시콜라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존 스컬리를 찾아갔다. 경쟁사인 코카콜라와의 ‘블라인드 테스트’ 과감하게 도입한 인물이었다. 당시 스컬리는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통해 펩시를 음료업계 ‘만년 2인자’에서 코카콜라와 대등한 경쟁자의 위치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잡스는 스컬리에게 애플의 최고경영자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젊은 중소기업 사장이 대기업 사장을 찾아가 영입 제의를 한 것이었다.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던 스컬리를 움직인 것 잡스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낭비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꿔보고 싶습니까?”

 이 말에 감동을 한 스컬리는 1983년 애플의 최고경영자로 자리를 옮긴다. ‘정보기술(IT) 천재’인 잡스와 ‘마케팅 천재’인 스컬리가 한 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든든한 원군을 확보한 잡스는 이듬해 1월 야심작인 매킨토시 컴퓨터를 출시한다. 16비트와 32비트짜리 매킨토시는 아이콘과 메뉴, 마우스 등 동작 목록을 통해 컴퓨터를 작동할 수 있도록 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갖추고 있었다. 컴퓨터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인간과 기계 간 인터페이스를 중시한 제품이었다. 그전 까지만 해도 컴퓨터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도스로 된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다. 컴퓨터 작동은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매킨토시는 이를 아이콘, 메뉴, 마우스 등으로 대체시켜 일반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획기적인 컴퓨터였다.

 처음엔 사용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이에 고무된 잡스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다량의 매킨토시를 제작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IBM PC와는 달리 매킨토시는 호환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결국 막대한 매킨토시 재고를 떠안으면서 애플은 경영위기를 맡게 된다.

 ‘정보기술(IT) 천재’인 잡스와 ‘마케팅 천재’인 스컬리를 함께 거느리고 있는 애플이 힘든 경영위기를 만난 것이었다.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제품 기획자인 잡스와 판매자인 스컬리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스컬리는 실용성은 무시한 채 혁신만 강조하는 잡스에게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괴팍한 옹고집으로 유명했던 잡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창업자인 잡스와 최고경영자인 스컬리 간 일대격돌이 벌어진 것이었다. 두 사람은 “회사가 누구를 더 신임하는지 투표로 결정하자”며 이사회를 소집했다.

 이사회 임원들은 스컬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1985년 잡스는 애플에서 퇴출된다. 잡스는 매킨토시 이외에도 애플III와 애플 리사 등 연이은 실패로 입지가 크게 좁아진 상태였다. 어쨌든 잡스는 자신의 손으로 영입한 스컬리에 의해 애플을 떠나게 된다. 애플에서 물러난 잡스는 ‘넥스트(NeXT)’사를 세워 워크스테이션 컴퓨터 및 워크스테이션용 운영체제를 개발하며 재기를 노리게 된다.

 애플의 실권을 쥐게 된 스컬리는 제품의 다양화를 추진한다. 1987년 고화질 컬러 그래픽을 지원하는 ‘매킨토시2I’와 보급형 제품인 ‘매킨토시 SE’를 동시에 출시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최상위 기종인 ‘매킨토시 쿼드라’, 중상급형인 ‘매킨토시 센트리스’, 보급형인 ‘매킨토시 클래식’, 저가형인 ‘매킨토시 LC’ 등으로 라인업을 넓혔다.

 그러나 스컬리의 이런 시도들은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결국 1993년 스컬리는 애플의 CEO 자리를 마이클 스핀들러에게 넘기고 물러나게 된다.

 스핀들러의 손에서도 애플의 경영은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IBM PC와 IBM 호환 PC들이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애플은 두 가지 전략을 추진했다.

 하나는 고급화 전략으로 전문가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제조사에게도 매킨토시 호환 기종을 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었다.그 결과 1994년 ‘파워 매킨토시’가 출시됐다. 1995년부터 파워컴퓨팅, 파이오니아, 모토로라 등의 업체에서 매킨토시 호환 기종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조금씩 기운을 얻어가던 애플에 다시 한 번 결정타를 날린 것은 경쟁업체의 새로운 기술이었다. 1995년 8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우95를 출시했다. IBM PC가 윈도우95를 탑재하면서 매킨토시 못지않은 GUI 운영체제 환경을 갖추게 된다. 매킨토시를 쓰던 사용자들마저 호환성은 물론 GUI까지 갖춘 IBM PC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1995년 4분기에 애플은 8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스핀들러가 물러나고, 후임으로 길버트 F. 아멜리오가 새로운 경영자로 취임했다. 그러나 애플은 여전히 최악의 경영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IBM과 선 마이크로시스템, AT&T 등과 매각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번번이 결렬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의 ‘구원 투수’로 등장한 사람은 바로 10년 전 회사를 떠난 잡스였다. 1996년 애플 이사회는 잡스 복귀와 넥스트 사의 인수를 결의한다. 당시 애플은 잡스의 기술혁신 및 경영능력과 함께 넥스트 사에서 개발한 ‘넥스트스텝(NeXTSTEP)’ 운영체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잡스의 처방은 한 마디로 ‘라인업 간략화’와 ‘기술혁신’ 이었다. 그는 매킨토시의 다양한 호환 기종 출시를 중단시켰다. 또 신들린 듯 새로운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1998년 개인용 컴퓨터인 ‘아이맥(iMac) G3’와 1999년 노트북인 ‘아이북(iBook)’을 연달아 출시했다. 2001년 새로운 매킨토시용 운영체제인 ‘맥 OS-X’를 출시했다. 2001년 휴대용 음악 재생기 아이팟(iPod), 2003년에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내놓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애플을 세계 최정상의 기업으로 올려놓은 것은 아이폰(iPhone)이었다. 2007년 1월 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2007’에서 애플은 휴대전화와 모바일 인터넷, 터치 스크린 등 세 가지 기능을 갖춘 아이폰(iPhone)을 선보이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10년 1월 27일 태블릿 컴퓨터인 아이패드(iPad)를 공개했다. 잡스의 애플이 발표하는 제품들은 곧바로 세계 IT의 역사로 기록될 만한 것들이었다.

 잡스가 복귀한 지 2년 만인 1998년 애플은 다시 흑자로 돌아섰다. 2003년 주당 6달러 선이던 애플의 주식은 3년만인 2006년 80달러를 넘어섰다. 2011년 8월엔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잡스는 죽어가던 애플을 살려놓았지만 자신은 죽어가고 있었다. 잡스는 2004년 이후 췌장암과 싸우고 있었다.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을 미 증시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려놓은 지 두 달만인 2011년 10월 5일 만 5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사람만 죽는 게 아니다. 기업도 세대교체를 한다. 2015년 애플의 주가는 7년 만에 처음 하락세로 마감을 했다. 중국의 화웨이와 샤오미 등 후발주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서 휴대전화 시장의 지각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IT 산업 분야는 경쟁업체를 앞서는 기술뿐 아니라 생활의 편리함을 더하는 작은 아이디어, 디자인 감성의 변화만으로 시장 점유율이 출렁거리는 예민한 시장이다. 업계 최정상에 서 있는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기술과 품질, 디자인 경쟁에서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하루아침에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 애플은 어떤 새로운 기술혁신으로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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