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인간 대 AI]'로봇 사피엔스 시대' 개막?

등록 2016.03.09 00:00:00수정 2016.12.28 16:43:25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이세돌 9단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VS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 대국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6.03.08.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이세돌 9단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VS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 대국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6.03.0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상주 기자 =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세계 바둑 최고수인 이세돌 9단을 이기면 어떤 일이 이어질까? '호모 사피엔스'를 대체하는 '로봇 사피엔스 시대'라도 오게 되는 걸까?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SF 영화 ‘엑스 마키나’(알렉스 가랜드 감독)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인간의 지능과 감정을 지닌 로봇이 등장할 수 있을까? 인간을 닮은 ‘로봇 사피엔스’는 과연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이제까지 '엑스 마키나'와 유사한 질문을 던진 영화는 한 둘이 아니다. 1999년 개봉된 ‘매트릭스’는 인공지능 컴퓨터들이 자체 진화를 거듭한 끝에 인간을 가상현실 프로그램 속에 가두어 놓는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이 설계한 프로그램 속에 갇혀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영국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향후 100년 안에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컴퓨터가 인간은 알지도 못하는 무기를 이용해 우리를 정복할 것이라는 경고다.

  '로봇 사피엔스'의 단초들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글 딥마인드사가 만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그 주인공이다. 알파고가 인간의 자존심인 정신적 능력의 분야에 도전장을 던졌다. 한국의 이세돌 9단과 알파고는 9~15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를 벌인다. 총 다섯 번의 대국이다.

 인간과 기계가 벌이는 세기의 대결을 취재하고 있는 뉴욕타임즈(NYT)는 8일 서울발 기사를 통해 “인공지능이 언젠가 (인간을) 이길 것이다. 그러나 수 천 년 간 인간을 매혹시켜온 바둑의 아름다움은 남을 것”이라는 이세돌 9단의 말을 전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사고하는 능력이다. 인간을 지칭하는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제까지 기계는 사고하는 능력이 없었다. 그런데 최신 컴퓨터들은 인간의 뇌와 신경을 닮은 장치들을 갖추면서 인간의 정신적 능력과 비슷한 기능도 하기 시작했다.

 알파고가 바로 인간의 사고 영역을 넘보기 시작한 ‘로봇 사피엔스’의 맹아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의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직관력까지 갖춘 인공지능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대국을 하루 앞둔 8일 포시즌즈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개회식에서 "알파고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스스로 학습을 통해 무엇이 좋고 나쁜 상황인지를 판단해 최적의 수를 둔다. 인간의 판단력과 직관력까지 모방하도록 연습을 시켰다"고 말했다.

 하사비스는 "3000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바둑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게임"이라며 "규칙은 언뜻 단순해보여도 복잡하다, 수를 읽는 계산 능력뿐 아니라 특유의 직관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고 말했다.

 알파고의 핵심은 ‘딥 러닝(deep learning)’ 기능이다. 딥 러닝이란 인간 두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인공지능에 적용한 기술이다. 인간 신경세포의 생물학적 정보처리와 전달 과정을 모방해 모델링한 것이다. 기존의 컴퓨터는 사전에 인간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정해진 연산 등을 수행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외부 환경을 인식하고 이를 학습한 뒤 적절한 다음 작업을 수행한다. 어떠한 데이터를 입력했을 때 연산 작업을 통해 최적의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이세돌(오른쪽) 9단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VS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 대국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 2016.03.08.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이세돌(오른쪽) 9단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VS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 대국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 2016.03.08.  [email protected]

 알파고의 3대 무기는 인공신경망 기술을 적용한 ‘가치망(the value network)’과 ‘정책망(the policy network)’, ‘몬테카를로 트리탐색’ 등이다. 가치망은 경우의 수 탐색하고, 정책망은 가치망이 찾아낸 경우의 수를 좁혀 준다. 마지막으로 몬테카를로가 여러 경우의 수 중 가장 유리한 전략지점을 선택한다. 구글 딥마인드 관계자는 알파고가 이미 인터넷 바둑 소프트웨어 업계를 제패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세돌 9단은 5-0 내지 4-1 정도로 자신의 승리를 장담해 왔다. 인간의 직관과 판단력을 기계가 모방할 수 없다고 믿어온 것이다. 그러나 알파고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한 발 물러섰다.

 이세돌 9단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실수를 한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질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 대 인간의 대국에서는 상대방의 에너지와 힘을 읽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에서는 그런 걸 읽을 수 없다. 마치 나 홀로 바둑을 두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NYT는 하사비스의 말을 인용, “바둑판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개수보다 많다고 한다. 바둑 고수들은 자신의 직관에 의존한다”며 “때문에 바둑이 가장 복잡한 게임으로 자리매김을 했으며,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궁극적으로 도전하는 목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인공지능이 프로 바둑기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앞으로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하사비스는 “알파고의 강점은 전혀 피곤을 모를 뿐 아니라 겁을 집어먹지도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은 자신이 바둑에서 인간만의 특질을 컴퓨터로부터 막아내는 소임을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승리만이 게임의 모든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물론 내가 질 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가 바둑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면서 대국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할 일은 바둑의 멋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7일 이세돌 9단은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진보한 기술이 유용하게 쓰이기를 희망한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두렵다”며 “나는 인간의 직관처럼 가치 판단을 내리는 일은 인간의 특질에 속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일 기계가 나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 그러나 우리 모두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는 진정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알파고는 '호모 사피엔스'의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영역을 허물려 하고 있다. '로봇 사피엔스'들이 활보하는 세상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