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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통일 후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에 대한 제언

등록 2020.04.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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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후서에 기록된 정음 28자의 창제시기 ‘계해년 겨울’은 세종실록에선 음력 12월로 나온다. 음력 12월25일엔 세종이 정인지를 하삼도에 보내 1월4일까지 정인지는 도성에 없었으므로, 훈민정음 창제일은 그 이전이다.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후서에 기록된 정음 28자의 창제시기 ‘계해년 겨울’은 세종실록에선 음력 12월로 나온다. 음력 12월25일엔 세종이 정인지를 하삼도에 보내 1월4일까지 정인지는 도성에 없었으므로, 훈민정음 창제일은 그 이전이다.

[서울=뉴시스]  지난 <한글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것은 ‘정음’> 편에서 말한 것처럼, 통일이 되면 그 명칭과 철자법 등에서 ‘한글’에 여러 변화가 있을 것이다. 민족 문화의 통합은 지극히 중요하여, 현재 아래와 같이 셋으로 분열된 훈민정음 기념일 또한 하나로 통일될 것이다.

①남한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관련한 1446년 음력 9월10일을 양력 환산한 10월9일을 ‘한글날’로, ②북한은 세종실록의 계해년 음력 12월30일자 “이달에 주상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창제하였다”는 기록을 근거로 음력 12월을 양력 1444년 1월로 보고 그 중간인 1월15일을 ‘조선글날’로, ③중국의 조선족 동포들은 2014년부터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일 전날인 9월2일을 ‘조선언어문자의 날’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지난주 <훈민정음 ‘해례본’은 ‘해석례의 번본’이다> 편에서 밝힌 것처럼, 해례본 이전 1444년 1월에 그것의 간략본인 ‘훈민정음 예의본’이란 것이 이미 있었다. 조선왕조실록과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증언하는 그 ‘훈민정음 예의 간본’이 세상에 등장한 1444년 1월이 곧 훈민정음 28자의 ‘창제달’이다.

따라서 통일이 되면 생일이란 관점에서 볼 때,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예의 번본)’이 완성된 날짜보다는, 1444년 1월의 ‘훈민정음 예의 간본’이 태어난 날을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로 삼는 것이 사리에 합당할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정인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는, 그 예의(例義: 용례와 의미)들을 간략히 들어 보여주시면서,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세종실록 양력 1444년 1월19일(음력 12월30일)자 기록엔 위 ‘계해년 겨울’이 보다 구체적으로 “이달(是月: 계해년 음력 12월)에 주상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창제하였다”라고 나온다.

이처럼 실록에는 ‘계해년 음력 12월’이라고만 나와 있지 날짜는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훈민정음 창제일, 곧 ‘훈민정음 예의 간본’의 탄생일을 알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북한에서 지정한 1444년 1월15일은 아니다. 그 날은 음력으로 12월26일인데, 정인지가 음력 12월25일부터 음력 1월4일까지는 한양도성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음력 12월25(乙巳)일 도순찰사 정인지를 하삼도에 보내어 전품(田品)을 나누게 하였다.

훈민정음 창제일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종으로부터 훈민정음 예의 간략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에 대해 보다 상세한 해석을 가하라는 명을 받은 정인지의 행보를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실록을 보면 계해년 음력 11월 세종의 주된 관심은 전제 정리에 있었다. 음력 11월13일 세종은 전제상정소(田制詳定所)를 설치하고, 그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 정인지를 임명했다. 그리고 음력 11월14일 정인지 등에게 명하여 경기 안산으로 가서 양전(量田: 경작 상황을 알기 위해 토지의 넓이를 측량하던 일)을 하게 하였다.

이후 정인지가 다시 실록에 등장하는 때는 음력 12월13일이다. 하지만 이 날도 세종은 정인지에게 서교(西敎)에 가서 전품을 나누어 시험하도록 명했다. 나흘 후 12월17일 드디어 토지와는 다른 관복을 청하는 주문 건으로 왕은 정인지 등과 만나 의논한다. 따라서 정인지는 왕과 대면한 음력 12월17일부터 하삼도에 내려가기 전인 12월24일 사이에, 왕에게 훈민정음 관련 설명을 듣고 예의본을 보다 상세히 해석하라는 명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로, 실록을 통해 세종과 정인지의 대면 사실이 입증되는 양력 1444년 1월6일을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인 ‘정음날’로 삼고, 1월6일부터 1주일 동안을 창제주간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이와는 별도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완성일인 1446년 양력 9월21일~30일까지의 열흘간에 대해서도 해례본 반포를 감사하는 주간으로 삼기를 제안한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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