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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3시간30분, 이렇게 짧았던가…연극 '그을린 사랑'

등록 2021.05.28 16: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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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그을린 사랑'. 2021.05.28.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그을린 사랑'. 2021.05.28.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3시간30분(인터미션 15분 제외)이 이렇게 짧았던가. 아니, 거대한 인생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나.

최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연극 '그을린 사랑'은 관객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선사한다. 앉아 있기에 만만치 않은 러닝타임은 처음엔 부담이다. 하지만 막이 내리면, 그 시간의 가치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이후 힘찬 기립박수가 이어진다. 

레바논 태생 캐나다 작가 겸 연출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이 원작. 전쟁과 폭력에 마음과 몸이 찢긴 '나왈'이 주인공이다. 그녀의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가 죽은 뒤 그녀의 과거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그들은 어머니의 삶을 통해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의 모티브와 맞닿은 자신들의 근원과 만나게 된다. 팔레스타인 난민과 레바논 민병대의 역사적 아픔에서 비롯된 근친상간의 비극의 비밀이 하나둘씩 벗겨질 때 관객은 속절없다.

[서울=뉴시스] 연극 '그을린 사랑'. 2021.05.28.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그을린 사랑'. 2021.05.28.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하지만 극 중 인물들은 버텨낸다. 뫼비우스 띠처럼 자신들을 둘러싼 가혹한 운명에 견딘다. 비극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잔느와 시몽이 어머니의 침묵에 분노하고 답답해하다, 그 침묵의 이유를 발굴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다.

희곡은 캐나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동명영화로도 유명하다. 영상이 주는 압도적 스케일, 담담하지만 세세한 감정 묘사, 미스터리한 구성으로 팬이 많은 영화다.

신유청 연출의 '그을린 사랑'은 연극적인 것으로, 마음을 파고든다. 그건 일종의 제의(祭儀)에 가깝다. 의자 몇 개, 책상, 양동이, 무대를 가로지르는 조명 등 최소한의 제기(祭器)만 두고 배우들은 제사 지내듯, 인물들과 영접한다.

[서울=뉴시스] 연극 '그을린 사랑'. 2021.05.28.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그을린 사랑'. 2021.05.28.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이 연극이 더 높게 평가 받는 건 비극이 파국으로 번지지 않기 때문이다. 삶과 생명에 대한 찬미로 이어진다. 악에 단호한 단죄, 그리고 그걸 덮는 용서와 사랑 그리고 화해. 깨어남은 잠을 자야만 가능하고, 희망은 비극 속에서 피어오른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나왈의 사랑이다. 그녀는 비극적 영웅 '안티고네'에 가깝다. 삶에 대한 의무로 모든 고통을 기꺼이 감당한다. 숭고하다. '그을린 사랑'의 불어 대본 원제는 '엥셍디(Incendies)'다. 화염이라는 뜻이다.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붉은빛의 기운이다.

나왈 역의 이주영을 비롯해 잔느 역 황은후, 시몽 역 이원석 그리고 남명렬, 백석광 등 배우 열연만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오는 30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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